한국에서 주최한 스포츠클라이밍대회에 히잡을 쓰지 않은 채 출전했다가 ‘실종설’, ‘강제귀국설’ 등에 휩싸였던 이란 선수 엘나즈 레카비(34)가 출국 금지를 당했다고 이란 여성운동가이자 언론인 마시흐 알리네자드가 31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혔다.
알리네자드는 “레카비는 전날 올림픽 준비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떠날 계획이었다”며 “그러나 공항 당국이 출국을 막고 선수의 여권을 압수했다”고 전했다.

레카비는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2022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 아시아선수권대회에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출전한 뒤 이란 정부로부터 각종 압박에 시달렸다.
당시 영국 BBC방송 페르시아어 뉴스는 레카비가 대회 직후 여권 및 휴대전화를 압수당했으며, 출국 예정일보다 2일 앞서 서울에서 머물던 호텔을 떠났다고 전했다. 12월엔 선수의 가족 주택이 철거됐다며 폐허가 된 주택과 함께 레카비의 오빠 다부드 레카비(35)가 울부짖는 모습을 미국 CNN방송이 보도하기도 했다.
이란에선 지난해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에 체포됐던 여성 마흐사 아미니(22)가 의문사한 후 반정부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레카비가 대회 당시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것을 두고 ”장비를 챙기느라 깜빡했다”고 설명했으나, 시위를 지지하는 의미 아니었느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란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히잡으로 완전히 가리고 팔다리 역시 헐렁한 옷으로 가려야 한다. 이를 어기면 처벌받을 수 있다.
이런 복장 규정은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도 적용돼 히잡을 벗은 채 국제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들은 여전히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히잡 없이 대회에 나갔다가 신변에 위협을 느껴 스페인에서 망명 생활 중인 체스 선수 사라 카뎀(25)이 대표적 사례다. 이란의 한 체스 심판은 2년 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여성 체스 선수권대회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 찍혀 이란 국영언론에 보도된 뒤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그는 결국 귀국을 포기하고 영국에 망명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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