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품 제작·양산 지원 등 역할
‘메이커 스페이스’ 예산 40% ‘뚝’
“지원금으로 인건비도 빠듯”… 단순 공간 임대 역할 그쳐
자부담률 매해 올라… 2022년 10%P ↑
2023년 64곳 5년 지원 종료 ‘가시밭길’
‘위워크’ 등 민간 공유오피스 대비
모임 기능 등 SW 경쟁력도 뒤처져
文정권 때 문 연 통일분야 창업센터
예산 못 받아 현판식 이후 ‘백지화’ 상>
윤석열정부 들어 오프라인 창업 인프라 예산이 큰 폭으로 축소되면서 부실 운영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1년도 안 돼 사업이 백지화된 사례도 확인됐다.
창업 인프라 가운데 눈에 띄게 예산이 축소된 사업은 2018년 본격화한 메이커 스페이스다.

전국 227곳에 구축된 메이커 스페이스는 3D프린터, 레이저 가공기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할 수 있는 제조 창업 지원 공간이다. 일반랩과 전문랩으로 나뉘는데, 일반랩에서는 학생·일반인의 창업을 지원하고, 전문랩은 시제품 제작부터 양산까지 할 수 있는 창작 거점 역할을 한다.
메이커 스페이스의 올해 예산은 263억원으로 전년 대비 40%가량 줄면서 센터의 운영 애로가 커지고 있다. 이 사업은 2019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해 첫 경제 일정으로 서울 중구의 메이커 스페이스를 방문할 정도로 전임 정부의 의지가 담긴 사업이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애초 목표는 2022년까지 367곳으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오프라인 창업 지원 공간인 만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았다.
12일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실이 중기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메이커 스페이스 장비와 시설 이용자는 2020년 45만3000여명에서 2021년 38만8000여명으로 6만명가량 줄었다. 시제품 제작 지원 건수도 220년 13만2000여건에서 2021년 10만6000여건으로 2만5000건가량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국에 17곳이 추가 지정됐는데도 운영 실적은 뒷걸음질 쳤다.
코로나19 영향이 줄어든 지난해 이용자와 지원 건수 실적은 반등했지만, 올해 예산이 크게 줄면서 센터 운영이 위협받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중기부 지원 예산 대비 센터 자부담 비율도 매해 오르고 있다. 자부담 예산은 2021년 30%에서 지난해 40%로 10%포인트 일괄 상향했다. 중기부에서 연간 6000만원을 지원받으면 4000만원을 투입해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지원 예산은 매년 성과 평가에 따른 등급으로 차등 지급 되는데, 지난해 기준 일반랩은 평균 6000만원, 전문랩은 6억원을 지원받았다.

◆예산 줄어 현장서 불만 폭발
중기부는 2018년부터 지원받은 64곳의 지원 기한(5년)이 끝나면서 전체 메이커 스페이스 개소가 줄어 예산이 축소한 영향이라고 했다. 이 같은 해명과 달리 지난해부터 현장에서는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충남 지역의 한 메이커 스페이스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중기부 산하 창업진흥원이 주관한 메이커 스페이스 워크숍 행사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센터별 지원 예산 감소에 관한 토로가 이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창업진흥원에서는 자부담으로 운영하라는 이야기만 반복하는데 대학이나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 등이 그만큼 돈을 들여가며 운영하기 쉽겠냐”며 “지원되는 운영비로는 인건비 충당도 어렵다”고 했다.
올해 5년 지원이 끝나는 64곳이 제대로 자립하지 못할 경우 부실 운영 위험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19년부터 선정돼 내년부터 지원이 종료되는 한 메이커 스페이스 관계자는 “운영 주체가 대학교이기 때문에 바로 메이커 스페이스를 없애진 않겠지만, 정부 예산이 ‘0’이 되면 실속 있게 운영하지 못할 것”이라며 “대학도 학생들에게 직접 큰 혜택이 돌아간다고 보지 않는 상황에서 억 단위씩 들여가며 운영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기부는 올해 자율운영에 들어간 64곳을 민간 메이커 스페이스와 협업형으로 만들어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올해 총 5개 내외의 협업형 주관 기관을 신규로 모집해 사업비 최대 6억원을 평가 결과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자율 운영에 돌입하면서 운영을 중단하겠다는 곳에는 중기부 예산으로 투입된 장비를 일차적으로 환수할 예정이다.

◆“공간 임대만으론 경쟁력 없어”
메이커 스페이스를 포함해 1인창조기업 지원센터(48곳), 창업보육센터(BI·269곳) 등 전국에 구축된 오프라인 창업 인프라가 단순 공간 임대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마저도 인테리어가 세련된 위워크나 패스트파이브 같은 공유 오피스와 비교하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1인창조기업 지원센터는 2009년부터, BI는 1998년부터 구축되기 시작했다. 1인창조기업 지원센터는 올해 기준 센터당 최대 1억500만원, 최소 6000만원을 지원받으며, BI는 올해 평균 운영비로 2000만원 정도가 지원된다.
스타트업 민간단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최성진 대표는 “(중기부의 창업 인프라가) 공간만 갖고 있다고 경쟁력이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민간 공유 오피스만 하더라도 공간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모임이나 네트워크 기능 등 무형적인 요소를 잘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간을 무료로 혹은 저렴하게 쓸 수 있다는 것 외에, 즉 하드웨어 측면이 아닌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없으면 큰 매력도가 없다”고 덧붙였다.
중기부는 이미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효율적인 운영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박용순 중기부 창업정책관은 “메이커 스페이스는 코로나19 영향이 컸고, 나머지 창업 인프라의 경우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며 “단순히 고민만 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개선 방안 도출을 위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관 사진만 찍고 사업은 백지화
정권이 바뀌면서 전 정권 시절 문을 연 창업 인프라가 이유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생겨났다. 통일부 산하 기타 공공기관인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는 지난해 2월15일 “국내외 창업 지원 기관, 민간투자사 등과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통일·북한 분야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서 ‘Uni청년창업지원센터’를 개소했다. 창업 아이디어 발굴부터 사업화·성장·도약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지원으로 통일·북한 관련 청년 창업 기업을 육성할 것이라는 큰 포부로 출발한 이 센터는 현재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췄다.
당시 서울 중구 남북협회에서 진행된 센터 현판식에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권칠승 중기부 장관이 참석했고, 통일·북한 관련 청년 창업가인 스타트업 대표들까지 동원됐다. 해당 센터 개소는 아랍권 최대 방송인 알자지라에서도 보도할 정도로 주목받았다. 중기부는 센터 개소를 계기로 통일·북한 청년 창업자를 중기부 창업정책과 연계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협회 측은 센터 개소 뒤 통일부로부터 예산을 받고자 노력했으나 끝내 예산을 배정받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예산 공백 탓에 공모전 등 청년 창업 지원 사업은 첫발을 떼지도 못했다.
통일부 대변인실은 이와 관련해 “2023년도 예산을 확보하려고 했으나 여러 사업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했다. 중기부 역시 청년지원센터 내용이 포함돼 장관이 현판식엔 참석했지만, 이후 사업 내용은 통일부와 협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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