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피해 대학생 절반 “극단선택 생각”
피해 경험 없는 사람보다 2.6배↑
극단 선택 시도도 13% 나타나
우울감·현기증·호흡 곤란 호소
“‘회복’ 제대로 안하면 평생 고통”
처벌만 집중, 피해자 관리 소홀
상담교사 초·중·고 40%만 배치
“학교폭력 피해자도 잘살 수 있을까요.”
본인을 학교폭력 피해자라고 밝힌 A씨는 “십년이 넘었지만 계속 생각난다”며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그는 “몸이 떨리고 정신적으로도 힘들다”며 “살 이유가 없는 것 같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학교폭력을 경험한 대학생의 절반 이상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본 적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어릴 적 학교폭력을 겪은 학생들의 고통이 성인이 돼서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폭력 관련 대책은 대체로 폭력을 막는 ‘수단’인 처벌에만 집중돼 있고, 피해 학생에 대한 사후 회복 과정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한국청소년학회의 ‘청소년학연구’ 최신호에 실린 박애리 순천대 교수와 김유나 유한대 교수 연구팀의 논문 ‘아동기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초기 성인기 심리정서적 어려움 및 자살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학교폭력을 겪은 대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가능성은 피해를 경험하지 않은 이들보다 2.6배 높았다. 연구팀은 2020년 9월 만 19세 이상 27세 미만 대학생 10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학교폭력에는 주위 아이들에게 신체적 폭행이나 놀림, 위협을 당하거나 금품을 빼앗긴 경험 등이 포함된다.
연구팀에 따르면 학교폭력을 경험한 대학생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가능성은 1.92배, 실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가능성은 2.55배 높았다. 설문 대상자의 34.3%(353명)는 만 18세 이전 학교에서 언어·신체적 폭력과 괴롭힘을 경험했다. 학교폭력을 경험한 대학생의 54.4%(192명)는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고, 13%(46명)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학교폭력을 겪지 않은 대학생(677명)의 경우 극단적 선택 생각을 했거나, 시도해봤다는 응답이 각각 36.2%(245명), 5.2%(35명)였다.

학교폭력 피해 대학생의 우울 점수도 유의미하게 높았고, 뚜렷한 이유 없이 현기증이 나거나 가슴이 아프고, 숨쉬기가 거북하다고 호소하는 등의 신체화 증상도 더 많았다. 학교폭력 전문교사인 박정현 인천 만수북중 교사는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트라우마가 남아서 계속 고통을 호소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며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처벌로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없앨 수 없다”고 강조했다.
푸른나무재단의 ‘2022 전국 학교·사이버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에서도 피해 학생의 20.7%가 학교폭력 문제 해결에 불만족하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로는 ‘처벌은 만족하나 사과와 반성이 느껴지지 않아서’가 가장 많이 꼽혔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심리적 안정을 돕는 전문상담교사는 초·중·고등학교 10곳 중 4곳에만 배치돼 피해 학생에 대한 상담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문상담교사는 가해 학생에 대한 초기 상담도 맡아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도 한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초·중·고등학교 1만1794곳 중 정규직 전문상담교사가 배치된 학교는 4193곳(35.5%)에 그쳤다. 비정규직 등 전체 전문상담교사로 확대해도 배치율은 41.8%에 불과하다. ‘위(Wee) 센터’ 등에서 상담 인력이 파견 오기도 하지만 파견교사 특성상 장기적인 상담을 충분히 제공하기 어렵다.
박 교사는 “피해 학생에 대한 상담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체계적이지도 않다”며 “다양해진 학교폭력 유형에 맞는 상담을 지원하고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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