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배 집을 방문한 날은 희뿌연 미세먼지에 날씨조차 흐렸다. 그래서인지 선배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전등불을 켰다. 그런데 선배의 초등학생 손자가 재빨리 스위치를 내려 불을 끄는 게 아닌가? 아직 저녁시간이 안 되었다는 게 이유였다. 며칠 전 아파트 전체가 정전이 되는 바람에 1시간 남짓 암흑 속에 갇힌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부터 손자가 소중한 건 아껴야 된다며 집 안의 전등불을 끄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손자의 단호함 때문에 촛불 켜고 차 마셔야겠다며 선배는 웃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소중한 대상에 대해서는 늘 무심하고 그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그 존재 가치를 깨닫는다. 집 근처 산책로 중간쯤에 아주 오래된 나무 벤치가 놓여 있었는데, 나무가 부식돼서 어느 날 치워졌다. 벤치가 사라지고 난 다음부터 동네 사람들은 벤치 이야기를 하며 그리워했다. 산책로를 걷다가 숨이 차오르고 좀 쉬고 싶다 하며 두리번거릴 때 딱 알맞은 지점에 놓여 있던 벤치. 그러나 그동안 누구도 벤치를 고마워하거나 소중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정말 소중한데 무심하게 지나치는 게 바로 건강과 시간이다. 어느 날 덜컥 병에 걸려서야 비로소 건강의 소중함을 느낀다. 사실 그 전에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힘들어요. 제발 좀 쉬어요.” 그러나 우리는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무엇인가 마련하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는 중이라 쉽게 멈출 수가 없다. 내 몸의 아주 작은 신호라도 무시하면 안 된다. 시간 역시 늘 바닷물처럼 마르지 않고 넘치게 있다고 방심한다. 돈의 낭비는 철저히 경계하면서 시간은 쉽게 허비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끝이 있다. 제대로 잘 써야만 행복한 삶으로 마무리된다.
인간관계에서도 착오를 범한다. 내 곁에 있으면서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한테는 대부분 무심하다. 반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고 애를 쓴다. 세상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 물론 다 좋아할 수도 없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나도 귀하게 대접해야 한다. 같이 사는 큰며느리보다 손님처럼 가끔 와서 용돈봉투 내밀고 한두 시간 머물다 가는 작은며느리가 더 예쁘다. 큰며느리가 하는 건 당연하고 작은며느리가 어쩌다 하는 건 기특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잔칫집에 가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식사하는 손님들 사이를 누비면서 “많이 드세요” 하며 앞에 나서는 사람도 있고, 하루 종일 부엌에서 묵묵히 음식 만들며 설거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칭찬은 앞에 나서는 사람이 받는다. 소중한 사람이 소중한 대접을 받아야 살맛 나는 세상이 된다.
어머니, 아버지는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하는 소중한 분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를 자주 잊는다. 전화 한 통화도 인색하다. 회사 상사나 새로 만난 연인은 노력해야 사랑을 얻을 수 있지만 부모는 어떤 경우라도 우리를 사랑한다. 그게 그렇게 마음 턱 놓을 일인가? 늙은 부모의 내일은 기약할 수 없다. 소중한 대상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야 안타까운 후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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