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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태원 참사 때 ‘비상벨’ 작동 50분간 ‘쩔쩔’… 소집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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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2-07 17:30:20 수정 : 2023-02-07 22:07:46
정지혜·채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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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신속출동 혼선 정황

용산서장, 전 직원 비상근무 명령
당직자, 매뉴얼 몰라 전달 늦어져

“지구대 복귀해 근무복 입고 집결”
명령과 다른 핫라인 내용도 문제

이태원 압사 참사 당시 경찰의 ‘비상동보(ARS 비상소집) 작동 미숙’으로 비상소집이 지연됐고, 현장으로 달려가도 모자랄 시간에 “지구대로 와 근무복을 갈아입고 가라”는 명령이 내려지는 등 신속한 출동에 혼선을 빚은 정황이 드러났다. 비상동보란 대간첩작전, 참사 등 비상상황 시 모든 경찰관 휴대전화에 ARS로 명령을 하달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7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용산경찰서와 일선 지구대·파출소 관계자 다수가 사고 당일 경찰의 병력 운용에 석연찮은 점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10·29 이태원 압사 참사가 남긴 시스템의 실패, 안전불감증의 한 단면이 또 한번 드러난 것이다. 이번 참사의 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으로 관계 기관의 신속한 보고 체계 작동 실패가 지목된 데 이어 경찰이 현장 인력에 이를 전파하는 과정에서도 허점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경찰이 이번 참사를 계기로 시스템 혁신을 하겠다며 지난 3일 발표한 ‘경찰 대혁신 TF’ 제안서에는 “중요·긴급상황 보고가 지연·누락되지 않도록 차상위자 직보체계를 도입하고, 112신고 자동전파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6일 간담회에서 이태원 압사 참사 대응을 언급하며 “과장들이 돌아가면서 당직 책임자가 되면서 비전문성이 문제가 됐다”며 “총경급 과장을 4부제로 돌려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상황실 책임자를 상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시스템 있는데도 훈련 부족…실전서 ‘우왕좌왕’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이 한창 아수라장일 때인 지난해 10월 30일 오전 1시 35분 용산서 112상황실에서 발령된 비상동보에 대해 용산서 관계자 A씨는 “당직자가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해 명령 전달이 늦어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비상근무 발령서는 이날 오전 0시 45분 하달됐는데, 무려 50분이 지난 시간에야 비상동보가 발령된 이유가 다름 아닌 ‘훈련 부족’ 때문이라는 내부 고발이다. 

 

또 다른 직원 B씨도 “시스템을 갖춰 놓고도 근무자들이 매뉴얼 숙지가 안 돼 있어 제대로 운용되지 않은 것”이라며 “큰 희생을 치른 이번 기회에 시스템의 실패를 제대로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ARS로 전 직원에 비상 소집을 통보하는 비상동보는 서장의 비상근무가 발령되면 지체 없이 울려야 한다. 통상 경비과에서 관리하지만, 당직자들이 근무하는 야간에는 112상황실에서 단독으로 운용한다. 이를 위한 매뉴얼은 있으나 따로 훈련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실전에서 제때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경찰 병력이 모이는 시간이 늦춰지면서 인명 피해 규모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물론 서장 명의의 전 직원 비상 소집 명령이 내려진 것부터가 사고가 난 지 두 시간여 지난 시점(0시 45분)이긴 했다. 소방당국이 전날 오후 10시 43분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30분 뒤 2단계, 다시 37분 뒤 3단계로 대응 수준을 빠르게 격상한 것과 비교된다.

 

그러나 이미 상당수 희생자를 막을 수 없었던 때라고 하더라도 이번 참사의 이례적인 피해 규모 등을 고려할 때 “명령 지연에 따른 희생자 증가가 있었을 수도 있는 만큼 분명 문제”라는 게 현장 경찰들의 견해다. 1분 1초에도 시민의 생명이 좌우될 수 있는데, 비상 소집 통보까지 1시간 가까이 지체된 점을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규환 용산서 경비과장은 “경비과 재난담당이 비상동보를 관리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참사 당일 비상벨이 늦게 울린 이유’에 대해서는 “그 밖의 내용은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로 위급 상황에 대비한 실전 훈련 부족 문제를 꼽았다. 현재 시행되는 비상상황훈련은 분기별로 이뤄지는 비상소집에 대한 ‘전화 응소 훈련’과 1년에 한 번 실제상황처럼 실시하는 ‘을지훈련’이 있다. 그러나 야간 당직자 근무 때처럼 경비과 없이 112상황실이 단독으로 비상동보를 작동하는 경우를 대비한 훈련이나 교육은 별도로 없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원래 시나리오를 상정해 실제상황과 동일하게 비상대응 훈련을 자주 해줘야 하는데, 최근에는 그 빈도 수가 너무 적었고, 그 결과 상황실 인원들의 매뉴얼 숙지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돌발 상황 대응에 대한 경찰조직의 대대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1초 아쉬운 상황에 명령 ‘이원화’…혼란 가중

 

내부 관계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비상동보 명령과 일제전화(경찰서와 각 지구대·파출소의 명령 핫라인) 내용이 달랐던 점도 추가 혼란을 초래했다. 비상동보는 “전 경찰관은 즉시 이태원 파출소 앞으로 집결하라”고 했지만, 비슷한 시각 상황실에서 일선 지구대·파출소에 건 전화는 “주간근무자와 연가, 병가를 제외한 병력은 소속 지구대로 복귀해 근무복 착용 후 이태원 파출소로 집결하라”고 한 것이다.

 

그 결과 “이태원으로 간 인원과 소속 파출소로 복귀한 인원이 반반 정도였다”고 참사 당일 근무했던 순경 C씨는 말했다.

 

용산서 관할 지구대·파출소 팀장 D씨는 “비상동보를 듣고 집에서 가까워 바로 (현장으로) 가려고 했는데, 전화로는 근무복을 갈아입으러 소속 지구대로 오라고 해 발길을 돌렸다”며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현장에 가야지 근무복이 뭐가 중요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대간첩작전 같이 피아식별을 해야하고, 무기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무복을 반드시 입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으며, 특히 참사 상황에는 더더욱 그렇다”고 설명했다. 휴가자 등을 제외한 비상소집은 훈련 때만 편의상 그렇게 하는 것인데, 실전에서도 그런 명령이 떨어진 점은 문제라고도 덧붙였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5분, 10분을 다투는 상황에 당연히 현장으로 투입됐어야 맞다. 이런 명령 혼재가 발생하는 이유는 결국 훈련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비상 소집에 응한 인원 자체도 한 지구대의 경우 절반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훈련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 비상동보가 떨어지면 휴가자나 비번 관계 없이 필수요원(지휘관)은 1시간 이내, 일반요원(직원)은 2시간 이내 소집 장소로 도착해야 한다. 적절한 사유가 없을 경우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 현재 특별한 언급이나 처벌 등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찰 관계자는 “오지 않은 인원이 너무 많아 처벌이 부담스럽고, 파급 효과가 클 것 같아 미적거린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용산서 관계자 B씨는 “참사 당일 과장급 3명과 이태원 파출소장 등 지휘관급이 4명이나 현장에 있었는데 당시 지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비상동보가 늦게 떨어진 것 등은 내부에서도 의문”이라며 “애초에 서장실과 상황실에도 연락이 한참 지난 후에야 갔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편, 참사 당시 이태원 현장에 있던 상황관리관 정현우(53) 용산서 여성청소년과장(경정)과 현장에 나간 상황관리관을 대신해 112상황실을 지휘하던 박모 팀장(경감)은 현재 불구속기소된 상태다. 세계일보 취재 결과 박모 팀장은 참사 이후 용산치안센터로 보내졌다가 지난달 말쯤 대기발령 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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