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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소련 범죄 응징해야" vs 러 "혐오 조장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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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1-24 10:12:26 수정 : 2023-01-24 1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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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정부 "에스토니아 대사 추방… 러에 적대적"
러시아·소련에 잇따라 국권 빼앗긴 에스토니아
소련은 2차대전 '전승국'인가, '전쟁범죄자'인가

“나치는 패전과 전범재판을 통해 처단됐고 독일은 지난 과오를 반성했다. 그런데 소비에트의 범죄는 왜 응징도, 제대로 된 평가도 이뤄지지 않는가.”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지난해 7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루마니아 4개국 정상과 공동으로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들한테 보낸 서한의 내용이다. ‘유럽의 기억(European memory)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붙은 이 서한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전후한 유럽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그간 연합국의 주축으로서 나치 독일을 무너뜨리고 유럽을 파시즘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칭송 뒤에 가려져 온 소련(현 러시아), 그리고 스탈린 정권의 죄악을 낱낱이 드러내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다.

에스토니아의 카야 칼라스 총리가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복속시키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유 진영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무기를 보내야 한다고 호소하는 모습. 칼라스 총리 SNS 캡처

◆러시아·소련에 잇따라 국권 빼앗긴 에스토니아

 

23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자국 주재 에스토니아 대사에게 ‘추방’을 명령하면서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의 역사적 ‘악연’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스웨덴, 독일, 제정 러시아 등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어 오랫동안 시련을 겪은 에스토니아는 18세기 초 러시아에 점령돼 약 200년간 그 지배를 받았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 제국이 패망하며 가까스로 독립국이 되었으나, 2차대전 때 나치 독일과 소련의 각축장으로 전락했다가 결국 소련에 병합되고 만다. 소련 치하 공산정권 시절은 에스토니아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였다. 1991년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해체되며 비로소 광복을 맞이했다.

 

공산주의와 러시아에 대한 강한 불신은 에스토니아를 일찌감치 서방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덕분에 2004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는 개가를 올린다. 오늘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에스토니아에는 영국군을 필두로 나토 동맹국들 군대가 주둔하며 이 나라 안보를 떠받치고 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에스토니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사회의 군사적·경제적 지원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 칼라스 총리는 나토 및 EU 회원국들을 향해 “러시아의 잘못을 응징하는 방법은 우크라이나의 승리뿐”이라며 더 많은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내라고 독려했다. 우크라이나가 간절히 원하는 레오파르트2 전차의 제공을 주저하는 독일을 겨냥해 “유럽의 맹주로서 책임을 다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주러 에스토니아 대사관 건물에 에스토니아 국기(왼쪽)와 유럽연합(EU) 깃발이 나란히 내걸려 있다. 이날 러시아 정부는 에스토니아 대사에게 “2월7일까지 러시아를 떠나라”고 추방령을 내렸다. 모스크바=AFP연합뉴스

이날 사실상 ‘외교관계 단절’로 가는 수순인 대사 추방을 단행하며 러시아는 “에스토니아가 완전한 러시아 혐오, 우리나라에 대한 적대감을 키운 데 따른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맞서 에스토니아는 물론 이웃나라 라트비아도 자국 주재 러시아 대사의 추방으로 맞대응하며 우크라이나와 멀리 떨어진 북유럽에서도 러시아와 인접국들 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소련은 2차대전 '전승국'인가, '전쟁범죄자'인가

 

에스토니아에 대한 러시아의 이같은 강경 조치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앞서 소개한 대로 칼라스 총리는 2차대전을 전후한 시기 소련이 저지른 범죄를 널리 알리고 가능하면 처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2차대전 때 나치 독일에 맞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르며 유럽을 파시즘으로부터 해방시킨 주역이 바로 소련’이라고 자부하는 러시아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소련은 2차대전 발발 직전인 1939년 8월 독일과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이는 동유럽과 북유럽의 약소국들을 히틀러와 스탈린이 나눠 지배하자는 내용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소련은 독일이 폴란드 서부를 침공하며 2차대전을 일으키자 덩달아 폴란드 동부를 침략해 그 일부를 점령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3국에 “주권을 내놓지 않으면 쳐들어가겠다”고 협박해 결국 국권을 강제로 빼앗았다. 루마니아도 비슷한 강요를 받고 북부 베사라비아와 부코비나 땅을 소련에 할양하고 말았다.

지난해 8월 에스토니아·러시아 접경지역에 있는 에스토니아 도시 나르바에서 공산주의 소련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는 소련제 탱크 등 전시물들이 중장비에 의해 철거되는 모습. 에스토니아는 “2차대전을 전후해 소련과 스탈린 정권이 저지른 범죄를 기억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르바=AP연합뉴스

이처럼 나치 독일과 사실상 ‘동맹’을 맺고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됐던 소련은 1941년 6월 독일의 공격을 받으며 갑자기 태도가 바뀐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옛말처럼 독일과 싸우던 영국, 미국과 나란히 연합군에 합류한 것이다. 그리고 엄청난 희생을 치른 끝에 1945년 5월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 전승국 반열에 올랐다. 영국, 미국의 양보 아래 소련은 그때까지 동유럽 및 북유럽에서 불법으로 획득한 영토를 고스란히 보장받은 것은 물론 동유럽 국가들에 공산주의를 퍼뜨리고 이들을 위성국으로 삼았다.

 

에스토니아, 폴란드 등은 2차대전 초반 소련이 나치 독일과 다름없는 ‘침략자’였다는 점에 주목하고 소련이 전승국이 되면서 의도적으로 은폐된 이 시기 역사를 되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러시아는 2차대전에서 제일 많은 희생을 치른 것도, 나치 독일 타도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도 소련이라며 “소련이 위대한 전승국이란 역사는 결코 부정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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