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레드라인 넘었다”…미국 핵타격 노리는 북한, 막을 수 있나 [박수찬의 軍]

관련이슈 박수찬의 軍

입력 : 2022-12-17 06:00:00 수정 : 2022-12-17 13:21:5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1992년 10월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제2국제공항. 북한 평양행 비행기를 타려던 2명을 러시아 정보요원들이 저지했다. 

 

이들의 이름은 유리 베사로보프와 블라디미르 유사체프. 베사로보프는 미사일 설계를 담당하던 마케예프 설계국 소속으로 북한 무수단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의 원형인 R27 미사일 개발 주역이었다.

 

유사체프는 엔진 설계 전문이던 이사예프 설계국에서 근무했다. 이들은 출국하지 못했지만, 미사일 관련 자료는 북한으로 넘어간 뒤였다.

 

1992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옛소련의 미사일 기술과 자료, 인력은 하루아침에 주인을 잃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던 평양은 이같은 혼란을 틈타 이들 모두를 손에 넣었다.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북한은 실패를 반복하면서 기술을 개발했다. 관련 소재와 기술, 장비 등을 확보하려고 세계 곳곳에서 밀수와 절취를 거듭했다. 그 결과는 16일 북한 매체가 공개한 ‘대출력 고체연료엔진 지상시험 성공’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이 개발한 신형 대출력 고체연료 로켓엔진이 화염을 뿜으며 연소되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2000년대 고체연료 전술미사일 KN-02를 시작으로 20년 가까운 세월을 투자해 개발을 진행해온 북한의 고체연료 미사일 기술이 이제 미국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궁극의 미사일’로 불리는 고체연료 추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가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무력시위 대신 ‘실질적 전투력 갖추기’

 

북한 국방과학원의 중요연구소는 “지난 15일 오전 서해위성발사장에서 140tf(톤포스:중량을 밀어올리는 추력) 추진력 대출력 고체연료발동기(엔진) 첫 지상분출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16일 전했다.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140tf 추력의 대출력 고체연료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에 처음으로 성공했다는 것이다. 통신은 “중대시험을 통하여 또 다른 신형전략무기체계개발에 대한 확고한 과학기술적담보를 가지게 되었다”고 평가, 전략무기 개발에 쓰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로 개발한 대출력 고체연료 로켓엔진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AP통신

액체연료를 쓰는 3.18 엔진을 탑재한 ‘괴물 ICBM’ 화성-17형과 화성-15형으로 미국과 일본을 사정권에 넣은 북한이 고체연료 ICBM을 만들려는 이유는 뭘까.

 

화성-17형은 실질적인 전투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화성-17형의 길이는 24m로 추정된다. 이 정도 길이를 지닌 ‘괴물 ICBM’은 러시아의 토폴-M(23m), RS-28(36m) 등이 있다.

 

이들 미사일은 대부분 지하에 건설된 사일로에서 발사된다. 이동을 하지 않아 크기가 커도 문제는 없다.

 

반면 화성-17형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러시아처럼 ‘괴물 ICBM’을 보유했다는 무력시위와 기술적 과시 효과는 있지만, 길이가 23m에 이르면서 화성-17형을 탑재한 이동식발사차량(TEL)은 커브길에서 회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거워서 일반 도로나 산길 운행도 어렵다.

 

화성-17형 발사가 평양 순안 남쪽 신리 미사일 지원시설 인근에서 이뤄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러시아처럼 사일로에 배치하는 방법도 있지만, 국토 면적이 좁은 북한의 특성상 미국 정찰자산에 사일로가 쉽게 노출된다. 액체연료는 급유에 많은 시간이 걸려 한미 연합군의 감시정찰활동에 포착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화성-17형 발사를 준비하기 위해 이동식발사차량(TEL)에 모여있는 군인들에게로 다가가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TEL 탑재가 가능한, 길이가 짧고 미 본토 공격이 가능한 고체연료 ICBM.’ 북한은 화성-17형보다 핵 억제력이 더 강하고 실질적인 전투력 발휘가 가능하며 크기는 작은 현대적 ICBM을 얻고자 했다. 새로 개발한 대출력 고체연료 로켓엔진은 이를 가능케 하는 디딤돌이다.

 

북한이 만들 고체연료 ICBM의 모습은 어떨까.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북한이 공개한 신형 고체연료 엔진을 쓴다면 직경 2m, 길이 17m 정도의 ICBM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화성-14형(19m)보다 짧으며, 중국 최초의 고체연료 ICBM인 DF-31(13m)보다는 조금 길다. 

 

일반적으로 고체연료 ICBM은 3단으로 구성된다. 이 경우 신형 엔진으로 1단 추진체를 구성하고, 북극성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2단 추진체를 만들며, KN-23 등의 고체연료 단거리탄도미사일로 3단 추진체를 제작하면 1만㎞ 이상을 날아갈 ICBM을 제작할 수 있다. 

 

길이도 짧아지면서 이동 가능한 도로가 늘어나고, 활용할 수 있는 TEL도 많아진다. 발사 전 연료 주입 과정도 생략할 수 있다. 연료 공급 지원부대의 필요성이 사라져 운용 병력 규모도 줄어든다. 

 

이는 미 본토를 겨누는 북한의 핵 타격 능력이 미국 감시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다. 미 본토 전역에 대한 기습 핵공격이 가능해진다. 미국으로선 심각한 사안이다.

 

사용될 TEL로는 2017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5주년 열병식에 등장했던, 중국 DF-31과 유사한 방식의 트럭 견인 트레일러형 TEL과 러시아 토폴M과 비슷한 TEL이 거론된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이 지상에서 발사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과거보다 한 차원 높아진 엔진 기술은 이같은 관측에 무게를 더 한다. 고체연료를 사용한 대출력 로켓엔진 제작은 난도가 높다. 

 

연료와 산화제를 혼합해 고형화하는 과정에서 이물질이 섞이면 연소 시 의도치 않은 폭발이 발생하거나 불완전 연소가 발생할 수 있다. 거품이나 불순물이 전혀 없어야 한다. 

 

엔진의 크기와 추력을 늘리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론적으로 고체연료는 유사한 부피와 질량의 액체연료보다 출력이 낮다. 

 

같은 크기 미사일이라면 액체연료를 사용할 때 사거리가 30% 이상 사거리가 길다. 엑체연료와 동등한 성능을 내려면, 엔진 크기와 추력을 더욱 높여야 한다. 이는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요구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로 개발한 대출력 고체연료 로켓엔진 앞에서 관계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북한은 이 모든 어려움을 돌파하면서 기술적 진보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기존 백두산 엔진 출력(80톤포스)보다 약 2배 높은 추력을 고체연료로 달성했다는 것은 북한 엔진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로켓이나 항공기 엔진 개발 성공까지는 최소 10여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고체연료 엔진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엔진 기술의 정교함도 더해졌다는 평가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기존 미사일은 엔진 노즐핀 4개로 추진력이 조종되는 단점이 있었으나, 신형 고체연료 엔진은 노즐핀 없이 엔진 효율을 유지하고 추진력 전환이 가능한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열병식 공개→시험발사’ 패턴 재현 가능성

 

북한은 15일 진행했던 신형 대출력 고체연료 로켓엔진 시험을 16일 공개하면서 “최단기간 내에 또 다른 신형전략무기의 출현을 기대한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언급도 함께 공개했다. 신형 전략무기를 가까운 시일 내에 드러내겠다는 의도를 밝힌 셈이다.

 

이에 대해 ‘엔진 공개→열병식서 미사일 공개→시험발사 공개’가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2017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05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트레일러형 TEL. 세계일보 자료사진

북한은 지난 2017년 3월 신형 액체연료 엔진인 ‘3.18 엔진’을 공개했다. 이후 2017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5주년 열병식에서 해당 엔진을 탑재한 화성-12형 IRBM이 처음 공개됐다.

 

화성-12형은 같은해 5월 14일 시험발사 성공 사실이 공개됐고, 7월4일과 28일 화성-14형 ICBM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같은해 11월 29일 화성-15형 ICBM 시험발사도 이뤄졌다. 모두 3.18 엔진이 쓰인 미사일이다.

 

이같은 패턴이 재현된다면, 내년 2월 8일이 주목된다. 이날은 북한군 창설을 기리는 건군절 75주년이다. 정주년에 열병식을 개최하는 북한 특성상 건군절 75주년 열병식이 개최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화염을 뿜으며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는 민간 상업위성업체 플래닛랩스 사진을 근거로 평양 미림비행장에서 수천명의 군인들이 열병식을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앞서 2018년 2월 8일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에서 KN-23이 처음 등장했고, 2019년 5월 첫 발사가 이뤄졌다. 75주년 열병식에서도 신형 고체연료 엔진을 탑재한 중장거리 미사일이 공개되고, 이후 시험발사가 단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가 장기화하고, 미국과의 관계가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그동안 깊숙한 곳에 감춰뒀던 카드를 꺼냈다. 미 본토를 기습 타격할 고체연료 ICBM 개발로 이어지는 신형 고체연료 로켓엔진이 그것이다. 

북한이 개발한 신형 대출력 고체연료 로켓엔진이 흰 연기를 내면서 연소되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미사일 ‘끝판왕’인 고체연료 ICBM 개발을 향해 질주하는 북한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택할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남는 의문은 단 하나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카드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핵능력 고도화를 향해 질주하는 북한에 우려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여자)이이들 미연 '순백의 여신'
  • 전소니 '따뜻한 미소'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