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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막는 규제… 韓선 글로벌 유니콘 절반은 사업 못한다 [연중기획-국가 대개조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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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2-07 06:00:00 수정 : 2022-12-06 21: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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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하기 좋은 환경 ‘공염불’

정쟁에 밀려 규제개혁 법개정 ‘낮잠’
韓 유니콘 12개뿐… 전체 1.14% 수준
스타트업 4곳 중 1곳 해외 이전 고려

中企 55% “규제로 신사업 진출 애로”
일괄 주52시간 등 고용·노동 부담 커
“정부컨트롤타워 신설… 강한 개혁을”

#1. A사는 국내 법인이 가지고 있는 여유 자금으로 해외 현지 법인이 추가로 필요로 하는 자금을 빌려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외국환거래 자금통합관리한도 규제’(외국환거래 규정)로 국내와 해외 법인 간 거래할 수 있는 자금통합관리한도가 5000만달러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에 빌릴 수 있는 돈을 불가피하게 현지 은행으로부터 차입하느라 추가 이자 부담까지 떠안고 있다.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이자 비용 부담은 더욱 커졌다.

 

#2. 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제조업 B사는 최근 한국수자원공사의 해수담수화 사업이 지연되고, 농어촌공사와 계약해서 공급받을 수 있는 용수도 더 이상 공급받을 수 없게 됐다. 더군다나 폐수를 재활용해 용수로 활용할 수 있음에도, ‘산업단지 폐수 재이용 규제’(물환경보전법 시행규칙)로 폐수의 재이용마저 어려워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 업체들과도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겹겹이 둘러싸인 규제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재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역대 정부뿐 아니라 현 정부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여당과 야당이 대립하는 정치권의 상황 때문에 규제개선을 위한 법 개정은 좀처럼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최근 발표한 ‘중소기업 규제혁신을 위한 정책 지원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9월 중소기업 352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44.6%는 규제로 애로 사항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기업에 가장 부담이 큰 규제로는 고용·노동 분야 규제라는 응답이 38.2%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자금 조달(15.6%), 기술 개발·사업화(11.6%), 환경(7.4%), 세제(6.1%) 등 순이었다.

기업들은 규제혁신을 위해 필요한 대책으로 비용·행정 부담 완화(31.4%), 과도한 규제 신설 방지(27.7%), 덩어리 규제·신산업 분야 규제 개선(18.0%) 등을 많이 꼽았다. 응답 기업의 절반을 넘는 55.1%는 규제로 신규 사업 진출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주된 요인으로는 법률·정책상 명시된 사항 외에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31.0%), 중복된 행정규제 부담(25.0%), 적용기준 미비로 인한 제품 개발과 시장 진입 불가능(23.0%) 등을 꼽았다.

우리나라는 노동, 안전·보건, 환경, 공정거래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 규제가 산재해 있어 기업의 혁신과 신산업 탄생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9년 우리나라 국가경쟁력 순위를 141개국 중 13위로 평가했으나, 규제로 인한 기업 부담은 87위로 중국(19위)·인도(26위)·일본(31위)보다 낮은 점수를 줬다.

미국, 중국, 영국 등 주요국에서는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이 꾸준히 탄생하지만 우리나라는 12개에 불과하다.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체 유니콘 기업(1051개사)의 1.14% 수준이다.

아산나눔재단이 지난 9월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아마존웹서비스(AWS),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과 함께 발표한 ‘2022 스타트업 코리아!’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 중 국내에서 사업이 가능한 기업은 45개사에 불과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촘촘한 규제가 기업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승차공유, 원격의료, 공유숙박 등 12개사는 사업을 할 수 없고, 나머지 43개사는 제한적으로 사업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무역협회(KITA)가 스타트업 256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스타트업 4곳 중 1곳(25%)이 국내 규제로 인해 해외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획일적인 ‘주 52시간제’도 현장의 애로를 야기하고 있다. 항만은 주 52시간제 특례업종으로 노사 합의에 의한 추가 연장근로가 가능하지만 배후단지에 입주한 창고업체는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고 있어 유기적 운영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대체인력 투입이 어려운 연구개발(R&D) 직무의 경우 근로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하지만 획일적 규제로 R&D·신제품 개발 등이 지연돼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정부가 강한 규제개혁 의지를 갖고 규제개혁 총괄 컨트롤타워와 부처별 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를 효율적으로 연계·운영해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올해 2월 발표한 ‘2022년 기업규제 전망조사’에서 정부에 바라는 규제개혁 정책과제로 응답 기업의 절반을 넘는 52.0%가 ‘총괄 컨트롤타워 신설’을 꼽은 바 있다.

양준석 한국규제학회 회장은 지난 10월 KITA의 포럼에서 ‘한국 무역과 규제’에 대해 논의하면서 “규제개혁은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과제로 한국의 낮은 생산성은 제도, 법, 규제에 기인한다”며 “WEF,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연례 국제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등수가 가장 낮은 분야는 법, 규제, 제도에 관련된 분야”라고 지적했다. 이어 “비효율적인 법과 규제, 중복규제와 덩어리 규제가 산적해 단순 규제 완화나 제거로는 개혁이 어렵다”며 “규제개혁을 강력히 추진할 수 있는 정부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지난 4일 회원사 의견 수렴을 거쳐 155건의 규제개혁 과제를 정리해 기획재정부에 건의했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세계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향후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는 ‘신발 속 돌멩이 규제’를 해소해 기업이 어려운 경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원입법도 규제영향 분석 필요”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규제가 과도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의원입법을 막아야 하고, 규제 방식도 꼭 필요한 것만 제한하는 ‘네거티브’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행정부가 새로운 규제를 만들려고 하면 규제영향평가를 거치게 돼 있어 까다롭다”며 “하지만 의원입법은 그렇게 걸러내는 절차가 없어 국회를 통과하면 그냥 법이 돼 버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정부가 규제를 신설하기는 힘드니까 우회전략으로 국회의원을 통해 입법을 하는 사례가 종종 있을 것으로 의심된다”고 덧붙였다.

 

이해관계자가 다수 얽혀 있는 규제는 일단 생기고 나면 개선되기 어렵다. 따라서 의원입법도 사전에 면밀한 규제영향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석준 국민의힘 규제개혁추진단장은 최근 국회의원이 입법안을 낼 때 규제 관련 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입법권 제한이라는 시각도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민단체 등이 하는 의원평가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단체가 법안 발의 건수와 가결 건수 등 정량지표로 의원을 평가하기 때문에 과잉 의원입법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규제 방식을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김주찬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는 ‘해야 한다’고 돼 있는 법안을 가능한 만큼 ‘하면 안 된다’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려면 기존 규제를 평가하는 과정이 필수인데, 사후평가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김 교수는 “규제를 만들고 나면 목적대로 잘 작동하는지,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는지 등 사후검토가 필수인데 거의 안 이뤄지고 있다”며 “조사분석에 드는 비용은 필수 지출인데, 이 돈을 아끼려고 하면 규제개혁은 못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상규 기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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