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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 애신아씨 머물던 일두고택에 가을 오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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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23 16:12:20 수정 : 2022-10-23 16: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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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개평한옥마을 수백년 고택 60여채 옹기종기/조상이 물려준 고택서 대를 이어 자손들 살아가/1570년에 지은 일두고택 인기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 무대/3박4일 ‘함양 온데이’하며 솔송주빚기·압화체험

 

일두고택 안채

아주 못생겼다. 바닥에 깔린 박석은 크기도 모양도 같은 돌이 하나 없다. 그런 삐뚤빼뚤한 돌을 넣어 투박하게 쌓은 흙담과 그 위에 얹은 기와. 그리고 원래 나무 모양을 그대로 살린 솟을대문과 고고한 소나무까지 집은 주인을 닮았다. 자연에 녹아든 개평한옥마을 일두고택의 소박한 사랑채 툇마루에 앉으니 번뇌는 사라지고 마음은 고요하다.

 

개평한옥마을

◆개평한옥마을에 가을이 깊어가네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한옥마을로 들어서자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수백 년 된 고택 60여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은 관광지로 만든 한옥마을이 아니다. 약 500년 전 형성된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의 집성촌으로 조상이 물려준 한옥의 마당을 쓸고 툇마루를 닦으며 지금도 후손들이 살아간다. 1880년에 지은 하동 정씨 고가, 1838년에 건축한 오담고택 등 골목길을 따라 옛집들이 즐비한데 개평마을을 대표하는 곳은 일두고택으로 1570년에 지어졌다. 긴 골목을 따라 양쪽으로 돌담이 이어지고 바닥에는 박석이 깔렸다. 두께가 고르지 않고 촘촘하지 않아 사이사이 흙이 드러난다. 말을 타고 박석을 지나면 ‘또각또각’ 소리를 내 집주인이 손님이 왔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단다.  

 

일두고택 입구 박석
일두고택 대문 정려패

길 끝의 솔송주 문화관을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일두고택이다. 대문에 걸린 붉은색 편액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충신·효자에게 내린 정려패. 전국에서 가장 많은 5개가 걸려 고택을 대대로 지킨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전한다. 이곳은 조선 5현 중 한 명인 문헌공 일두 정여창(1450∼1504) 선생의 생가. 그는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조선 5현 중 한 명으로 성균관 등 전국의 향교 234곳과 남계서원 등 서원 9곳에 제향된 성리학의 대가다. 하지만 1498년(연산군 4년) 무오사화 때 사초에 기록된 내용을 제대로 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돼 유배됐다. 또 죽은 뒤에도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돼 부관참시까지 당했다니 참 기구하다. 

 

일두고택 사랑채
일두고택 사랑채 편액

솟을대문을 들어서자 한눈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사랑채가 펼쳐졌고 오른쪽 누각 옆에는 이리저리 휘어지며 자란 소나무가 하늘 높이 가지를 펼쳤다.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자주 등장한 고택이다. 여자 주인공 애신(김태리 분)의 조부로 대쪽 같은 성품을 보인 고사흥 대감이 늘 이곳에 서서 손님을 맞는다. 남자 주인공 유진(이병헌 분)이 말발굽 소리를 내며 골목을 지나다 애신을 훔쳐보던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드라마 ‘토지’와 ‘다모’에서도 일두고택이 등장한다. 사랑채에는 충효절의(忠孝節義), 문헌세가(文獻世家), 백세청풍(白世淸風) 등의 편액이 걸렸다. 고증되지는 않았지만 충효절의는 흥선대원군의 필체, 백세청풍은 김정희의 글씨로 전해진다.

 

일두고택 안채
일두고택 안사랑채 애신아씨 방

사랑채 왼쪽 중문을 지나면 안채가 등장한다. 마당 한쪽 나무에는 빨갛게 익어가는 석류가 주렁주렁 매달렸고 한가운데 우물이 놓여 예스러움을 더한다. 1만㎡ 규모의 일두고택은 행랑채, 사랑채, 안사랑채, 중문간채, 안채, 아래채, 광채, 사당 등 11개 건물로 이뤄졌다. 18세기 개축된 사랑채를 제외하면 모두 16∼17세기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옛 양반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다. 고택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사랑채로 돌아 나오기 직전에 만나는 안사랑채가 바로 애신이 기거하던 방. 남친은 여친이 애신이라도 된 듯, 최고로 예쁜 샷을 찍느라 손놀림이 바빠진다.   

 

솔송주 담솔 칵테일 만들기 체험
솔송주 소줏고리

◆‘함양온데이’로 즐기는 시간여행

 

개평한옥마을의 매력에 좀 더 푹 빠지고 싶다면 ‘함양 온데이(On Day)’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멀리 갈 필요 없이 3박4일 한옥에 머물며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기 좋다. 재미있는 체험이 많은 덕분이다. 일두고택과 가까운 솔송주 문화관에선 박흥선 명인이 직접 솔송주 빚기와 칵테일 만들기를 진행한다. 530년 전통이 깃든 솔송주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오른 우리나라 대표 명주. 조선 정종의 손녀이자 정여창 선생의 부인이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기 위해 품질 좋은 햅쌀과 송순, 솔잎을 넣어 직접 빚던 술로 하동 정씨 문중에 대대로 전해진다. 문화관으로 들어서자 구수한 누룩 냄새가 가을바람을 타고 풍긴다. 훨훨 타는 장작 위에 올린 소줏고리에서는 방울방울 솔송주가 떨어진다. 명인의 안내에 따라 잔에 라임을 넣어 즙을 내고 담솔과 토닉워터를 섞은 뒤 얼음을 넣고 바질 몇 장 올리자 아주 쉽게 맛있는 칵테일이 완성된다. 한 모금 마시자 알싸한 허브향과 은은한 솔향이 비강을 채우고 구수한 누룩향이 여행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는다.

 

압화체험
개평한옥마을 코스모스

압화체험도 인기. 엽서나 부채에 말린 꽃을 붙여 꾸미기에 함양의 예쁜 들꽃들을 온전하게 내 방으로 가져갈 수 있다. 제각각 다르게 완성된 압화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스타일이 나온다. 돌아가면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시간도 함께 나눈다. 더울 때 압화로 꾸민 부채를 흔들면 꽃바람에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겠다. 

 

옥계유수전
옥계유수전

노 참판 댁으로 들어서자 종부가 마당의 평상에서 빨간 고추를 말리는 중이다. 마을에서 직접 만든 비건 빵과 수제 잼을 웰컴 푸드로 즐기고 고추장 만들기를 체험하는 곳. 노 참판 댁에 대대로 전해지는 비법으로 담은 씨간장과 천일염, 가마솥에 푹 고아 만든 조청을 활용해 함양에서 난 고춧가루와 메줏가루로 고추장을 만들어볼 수 있다. 고택은 풍천 노씨 가문 노석규가 개평마을로 이주했을 때 지었고 아들 노광두가 참판을 지냈기에 노 참판 댁으로 불린다. 노광두의 증손 사초 노근영이 태어나 자란 곳으로 그는 일제강점기 많은 일화를 남긴 바둑계의 전설이다. 풍천 노씨 대종가에 들어서니 가을 하늘 색으로 꾸민 예쁜 커피잔 등 자기 공예품들이 마당을 장식하고 있다. 이달 23일까지 ‘옥계류수 - 오면 가려 하고 풍류전’이 열려 서예, 도예, 캘리그래피, 서각, 한국화, 석채화, 문인화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함양=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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