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르펜 “느슨한 이민정책에 목숨 잃은 것” 비판
이민자 대거 늘린 스웨덴, 극우 약진으로 정권 교체
언론·평론가 “이민정책 반감 높아, 제2 스웨덴 되나”
프랑스 파리에서 12세 소녀가 불법체류 이주민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이 벌어져 프랑스가 충격에 빠졌다. 우파 정치인들이 “느슨한 이민정책이 끔찍한 범죄를 불렀다”고 비판하면서 프랑스의 이민정책 논쟁에 또 다시 불이 붙었다. 일각에선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극우파 지지율을 끌어올려 최근 극우 정당이 약진하고 있는 스웨덴의 전철을 밟게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끔찍한 범죄에…프랑스 애도 물결”
18일(현지시간) BBC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 당국은 지난 14일 파리 19구의 한 아파트 단지의 뜰에서 수습된 12세 소녀 롤라를 살해한 혐의로 24세 알제리 출신 여성을 붙잡아 조사 중이다.
이 여성은 당일 오후 시신이 든 여행가방이 발견된 아파트의 입구에서 롤라와 함께 있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몇시간 뒤 이 여행가방을 비롯해 무거운 짐을 나르는 모습이 또다시 CCTV에 포착됐다. 이 여성은 살인 뿐만 아니라, 성폭행, 고문 등 혐의도 받고 있다. 시신을 옮기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40대 남성도 함께 체포됐다.

조사당국은 롤라의 사인이 경부압박 등에 따른 질식사로, 부검 결과 소녀의 얼굴과 등, 목 등 신체 곳곳에 고문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가 나 있었다고 밝혔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당국은 용의자가 숨진 소녀의 어머니와 과거에 아파트 출입을 둘러싸고 언쟁을 벌인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을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끔찍한 사건에 분노한 파리 시민들은 사건 현장에 꽃과 양초를 놓으며 숨진 소녀를 추모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엘리제궁으로 소녀의 부모를 불러 위로하고 향후 지원을 약속했다.
용의자는 6년 전 학생 신분으로 프랑스에 입국했다가 체류증이 만료돼 지난달까지 출국 명령을 받은 상태로 알려졌다. 용의자가 불법체류자로 밝혀지면서 사건은 이민 정책에 대한 정치권 공방으로 확대됐다.

극우진영을 포함한 우파 정치인들은 이번 사건이 정부의 느슨한 이민 정책과 치안력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며 공격하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대표는 “이런 야만적인 짓을 한 용의자를 프랑스에 둬서는 안됐다. 너무나 많은 범죄가 불법 이주민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며 “통제받지 않고, 은밀히 이뤄지는 이주를 왜 중단시키지 못하고있느냐”고 비판했다. 지난 대선에 후보로 나섰던 극우인사 에리크 제무르 역시 이번 사건을 ‘프랑스인 살해’로 규정하며 정부가 소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민정책 반감…극우 정당 지지율 높여
프랑스에서 이민 정책은 첨예하게 갈리는 정치 이슈다. 좌파 이마뉘엘 마크롱 정권은 노동인구 확보 등을 위해 선별적으로라도 이민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우파 정당들은 이민자들에 의한 범죄 등 사회 혼란 문제가 심각하다며 국경을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각료회의에서 내년 초 새로운 이민법에 대해 논의할 계획을 밝혔다. 난민 캠프에서 범죄자 등 바람직하지 않은 이들은 신속히 추방하되, 나머지는 인구 감소로 소멸되어가는 프랑스 각 지방으로 이주시킨다는 계획이다. 우파 정당들은 이런 방침을 강하게 비판했다. 지역민들이 원하지 않는 이민자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언론과 평론가들은 최근 고조되는 이민정책에 대한 반감이 우파 세력을 더욱 키워 프랑스가 제2의 스웨덴이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치러진 스웨덴 총선에서는 2014년부터 장기집권하던 좌파 연합이 물러나고 우파 연합이 승리했다. 특히 개별정당 지지율에서 좌파 사민당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극우정당 스웨덴민주당은 이 선거의 최대 승자로 꼽힌다.
소수였던 극우 지지자들이 이처럼 대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민 정책 때문이었다. 스웨덴은 2015년 이민자 16만명을 받아들였는데 이후 전례없는 수준의 폭력과, 이민자 갱단의 활동이 나타났다. 스웨덴민주당은 이민자 숫자 줄이기, 이민자 출신 범죄자 강제 추방, 이민자 다수 지역에 경찰 배치 확대 등 정책을 내세워 기존 정책에 불만을 품은 스웨덴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프랑스도 최근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지난 10년동안 이민자 숫자가 크게 늘었고, 이민자 갱단이 형성돼 폭력이 증가했다. 프랑스 교도소 수감자의 25%가량은 이민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커지며서 이민자 반대, 인종차별 철폐에 반대하는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늘었다.
RN은 지난 6월 국민의회 선거에서 89석을 확보하면서 단일 정당으로는 2위를 차지했으며, 당수인 르펜은 앞서 4월 대선 결선투표에 올라 마크롱(58.5%)에 졌지만 41.4%로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
프랑스 정치학자 도미니크 레이니에는 파리지앵 인터뷰에서 “EU 회원국들이 이민 완화에 대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 우익 세력의 확장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영국 주간 더 스펙테이터는 프랑스가 스웨덴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며 “르펜은 프랑스가 제2의 스웨덴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스펙테이터는 “2015년 이민자를 대거 받아들인 스테판 뢰프벤 스웨덴 총리는 ‘유럽은 벽을 쌓지 않는다’고 말했고 7년 뒤 스웨덴은 다른 선택을 했다”면서 “프랑스가 그 발자취를 따를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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