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작곡가 중 바흐는 가장 위대하면서도 가장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인물입니다. 악기로 표현해 내는 음악(기악)에서도 신을 향한 그의 믿음이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연주할 때만큼은 그의 마음과 같아야 합니다.”

4년 만에 내한공연을 하는 피아노 거장 안드라스 시프(69)에게 ‘바흐는 어떤 음악가인가’라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다음달 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 이어 10일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공연을 앞두고 19일 진행한 세계일보 서면 인터뷰에서다. ‘바흐 해석의 권위자’로 불리는 그는 “바흐는 무신론자가 아니다. 그는 매우 겸손하였고, 자기 중심적이지 않았다”며 “그는 우리와 공동체를 위해 작품을 써 내려 간 것이지 결코 자신의 영광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시프는 매일 1시간 이상 바흐 작품을 연주하면서 아침을 시작하는 이유에 대해 “하루를 바흐의 음악과 시작하는 것은 마치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과 같다”며 “마음을 정갈히 하고, 영혼과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한 것인데 매우 완벽한 일상”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첫 내한공연 이후 꾸준히 한국을 찾다가 코로나19 탓에 4년 만에 오게 된 그는 이번 방문에 큰 기대감을 표시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언제나 커다란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서울과 서울의 영혼은 늘 감동을 주었어요. 여러 아름다운 박물관에서 한국의 도자기를 보는 것을 사랑합니다. (한국) 관객들도 환상적이에요.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열광적인 데다 젊은 관객이 많습니다. 부산은 바닷가에 있는 아름다운 도시라고 들었는데 아직까지 부산에서 연주해 본 적은 없어서 새로운 관객을 만날 기대가 큽니다.”
시프는 이번 공연에서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에 이르는 고전 음악을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짠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곡을 연주할지 밝히지 않아 팬들의 궁금증을 사고 있다. 이와 관련, 그는 일부러 의도한 것임을 내비쳤다. “나는 자유와 즉흥의 힘을 믿습니다. 놀라움도 공연의 한 요소 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을 통해 나는 훨씬 큰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관객들에게는 공연이 더욱 새로워지고요.”

실제 최근 시프의 공연을 보면 특정 곡목을 미리 발표해 두고 순서대로 연주하는 일반적인 클래식 공연 방식이 아니다. 대신 그는 당일 공연장의 음향과 피아노의 상황, 관중을 고려하여 연주 직전 현장에서 선택된 레퍼토리를 소개한 뒤 연주하고 있다. 시프는 이런 방식이 결과적으로 청중에게 더 나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내한 공연 외에도 연주를 앞둔 파리 필하모니 홀, 도쿄 오페라 시티 홀 등에도 같은 방식으로 안내돼 있다.
아울러 ‘Lecture & Concert(강의를 겸한 콘서트)’를 자주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객들이 음악을 보다 친근하게 여기고 집중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임을 시사했다. “오늘날의 청중은 50년 전에 비해 음악에 대한 교육과 정보가 더 적은 세대이지요. 학교에서 음악적인 훈련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고, 가정에서도 매우 적은 음악을 경험하고 자랍니다. 예를 들어 처음 베토벤 소나타를 끝까지 듣는 것은 어려운 여정일 수 있고 그저 편히 앉아 즐길 수 만은 없습니다. ‘아, 아름다운 곡 이군요’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이러한 감상은 어느 정도 안내와 정보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연주자가 직접 이러한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프로그램북 속의 해설가에 의지하는 것 보다 나을 거예요. 공연 중에 관객은 프로그램북의 해설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5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시프는 리스트 음악원에서 팔 카도사, 죄르지 쿠르탁, 페렌츠 라도스에게, 영국 런던에서 조지 말콤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 및 지휘자들과 협업하고 있는 그는 현재 솔로 리사이틀, 연주 디렉팅, 지휘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그의 바흐 공연은 BBC프롬스(매년 7∼9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는 국제 클래식 음악 축제)의 연간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또 유명 클래식음악 축제인 베르비에(스위스)·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바덴바덴(독일) 페스티벌에서 정기적으로 연주하고, 위그모어 홀, 무지크페라인, 필하모니 드 파리 무대에 오르고 있다.

시프는 국제 모차르테움 재단에서 수여하는 금메달(2012), 독일연방공화국이 수여하는 대십자 공로훈장(2012), 로열 필하모닉 협회 금메달(2013) 등 저명한 상을 다수 수상하고, 2014년에는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2018년에는 왕립음악원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