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득세… 트럼프 당선·브렉시트 초래
시민들 무력감에 정치 신뢰 갈수록 낮아져
이상 모델로 꼽는 獨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단점만 합쳐진 ‘혼합 견종’ 비유하며 비판
“정당정치 강화해야 유권자에 가장 이익”
규율 잡힌 ‘영국식 양당제’ 대안으로 꼽아
책임 정당/프랜시스 매컬 로젠블루스, 이언 샤피로/노시내 옮김/후마니타스/2만원
지금 국민이 목도하고 있는 여의도 정가 혼탁한 모습은 과연 이 땅에서 정당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대한민국 정당 역사가 70여년에 이르지만 제대로 착근했는지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이러한 고민이 우리만의 모습은 아니다.

1960년대 이후 민주주의 세계 전역에서 예비선거와 같은 분권화된 후보 선출 방식이 채택되고, 비례대표제의 경우 유권자의 선택권을 늘리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루어져 왔다. 이는 시민에게 더 큰 결정권을 주고, 피대표자인 유권자와 좀 더 가까이 있는 정치인이 선출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증진으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유권자가 정치에서 소외되는 현상 또한 극적으로 증가했다. 미국에서 실시된 설문조사 등에 따르면 정치인, 정당, 정치제도에 대한 시민 신뢰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포퓰리즘 정치인이 지도자로 선출되며, 기성 체제에 대항하는 극우 정당과 후보의 득표가 급증했다. 미국에서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이런 문제는 극적으로 부각됐다.

“통념을 반박한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민주주의 세계에서 증가하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의 병리 현상을 진단한다. 예일대 정치학과 교수인 두 저자 프랜시스 매컬 로젠블루스, 이언 샤피로는 특히 “시민에게 권력을 돌려주자”는 오랜 구호가 어떤 병폐를 일으켰는지 지적한다. 예비선거와 당원대회는 극렬 소수파가 후보를 선출할 수 있게끔 만든다. 미국 공화당 의원들에 대한 티 파티의 영향력, 2015∼2016년 예비선거에서 대표성이 극히 부족한 5%의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이 본보기다. 식자층에선 찬성을 찾기 힘들었던 영국 유럽연합 탈퇴도 같은 맥락이다. 만약 전통적 방식으로 유럽연합 탈퇴 문제를 영국 의회에서 다뤘다면 2016년 국민투표로 탈퇴를 결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의사 결정과 정치인에 대해 유권자의 직접 통제를 강화하면 민주적 책임성이 증가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원리는 실제로는 반대 효과, 즉 유권자 소외 현상을 키운다는 것이 저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인기로 뽑힌 사람들은 금방 인기를 잃기도 한다. 분노한 유권자들은 무력감 속에서, 자신들이 선출한 정치인을 상대로 반영구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에서 활동 중인 저자들은 만일 영국이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국가였다면 2015년 선거에서 영국독립당이 1석이 아니라 100석 가까이 차지해서 집권 연정 파트너 후보로 진지하게 고려됐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비례대표제에서는 과격 세력이 자신들의 호소를 온건하게 조정할 유인이 적고, 대중을 극렬 소수와 고도로 양극화된 정치의 볼모로 잡을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된다. 예비선거를 시행하는 소선거구제와 마찬가지로, 비례대표제는 극렬 소수에 봉사하는 정치인에게 너무 쉽게 보답한다. 그리고 불만스러운 유권자들이 중도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강경한 해결 방안을 원하는 것은 다수대표제나 비례대표제나 같지만, 비례대표제에서는 그들이 의석을 얻는다.
이 책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하거나 실제로 도입하고 있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비판 도마에 올린다. 이를 견종 래브라도와 푸들이 교배된 ‘래브라두들(labradoodle)’에 비유한다. 래브라도처럼 성품이 순하고 푸들처럼 털이 많이 안 빠지는 견종이 목표인데 때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형질이 우세하게 나타난다. 성격도 까칠하고 털만 빠지는 ‘푸들도(poodledor)’다.
저자들은 선거제도 설계자들이 비례대표제의 장점(상대적으로 높은 대표성)과 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가 갖는 장점(상대적으로 높은 책임성)을 결합해 하나의 제도를 만들고자 했지만 독일을 제외한 많은 나라에서 래브라두들이 아니라 푸들도, 더 나쁜 경우는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그 사례로 뉴질랜드·이탈리아·일본·멕시코 등이 거론된다. 전부 독일 체제를 변형해 도입했으나 이를 옮겨 오는 과정에서 양당제의 중요성, 하향식 정당 운영 방식, 그리고 연정 합의에서 공공복지를 희생하는 결탁을 금지하는 것 등 일부 핵심 요소가 상실됐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풀뿌리 분권화가 유권자 소외 현상을 키운다는 역설을 해결할 열쇠는, 정당이야말로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 기관임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즉 강한 정당, 내구성 있는 정당 연합끼리 경쟁하는 것이 대다수 유권자 이익에 가장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규율 잡힌 두 개의 정당제도, 즉 영국식 양당제를 모범답안으로 제시한다. 이들에게 미국식 양당제도는 ‘크지만 약한 정당’으로 비판받는다.
“(영국식 양당제는)미국처럼 정당이 내부적으로 약해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기 일쑤인 제도보다 우수하다. 유럽 대다수 국가에서 볼 수 있듯이, 개별적으로는 강하나 지향점이 다른 정당들이 유권자의 투표와 상관없이 선거 후 연합해 버리는 것보다 낫다. 그리고 중남미나 동유럽의 여러 국가처럼 대통령이 공공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지워 가며, 상대하기 쉬운 의원들을 하나씩 친히 골라 가며 거래를 통해 입법적 교착 상태를 우회하려 드는 것보다 성장과 복지를 위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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