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폭군과 명군 사이/김순남/푸른역사/2만원
우리 역사에서 조선 7대 임금 세조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군주도 드물다. 그러기에 세조의 즉위 과정, 공신과 훈척 중심의 권력 행사, 부국강병책과 그 성과 등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이뤄졌다. 심지어 영화로도 다뤄졌다. 2013년에 개봉해 913만명이나 동원한 영화 ‘관상’이 그것이다. 배우 이정재가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는 대사를 하면서 유명했던 수양대군 이유가 바로 세조다.

세조는 능력자였다. 귀화 야인들 사이에 ‘큰호랑이’라 불릴 정도로 무에 뛰어났고, 공법 제정이나 한글 창제에도 관여했을 만큼 나랏일에도 능했다. “권세를 혼자 쥐고 흔들며” 아우 안평에게 반역을 재촉하는 김종서 등 권신의 전횡과 견제에 대해 칼을 뽑았던 것은 그의 입장에선 어쩌면 당연했다.
왕좌에 오른 세조는 단호하면서도 유능했다. 친동생 둘이 죽임을 당하고, 조카가 스스로 목을 매도록 했으며, 성삼문 등을 처형하는 등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들에 대한 ‘단죄’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 한편 각 고을이 스스로 싸우고 스스로 지키는(自戰自守) 진관체제 확립, 국가 운영의 만세성법인 ‘경국대전’과 단군으로 시작되는 한국사의 정통을 세우는 ‘동국통감’의 편찬, 검약을 기치로 국가 세출의 표준화를 도모한 ‘횡간’ 제정 등 조선 500년의 토대를 굳건히 했다.
조선 전기 정치사를 전공한 저자는 ‘세조실록’을 바탕으로 세조의 ‘정치적 삶’을 온전히 그려냈다. 그는 세조를 계유정난을 계기로 왕의 아들에서 아버지 세종의 ‘예치’를 넘어서는 초월적 절대 군주로 자리매김하려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던 정치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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