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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묵은 숙제’ 푼 거장 백건우… 화가 고야 그림에서 영감받은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 앨범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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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19 18:08:48 수정 : 2022-09-19 18: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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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담고 있는 세계를 시각적으로 그려볼 수 있도록 연주하는 피아노 거장 백건우(76)가 유명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엔리크 그라나도스(1867∼1916, 스페인)의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스(Goyescas)’를 들려준다. 백건우는 최근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 녹음한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 음반 발매를 기념해 오는 23일부터 10월19일까지 강릉, 경기 광주·부평, 서울, 울산, 제주에서 7차례 공연한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최근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 녹음한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 음반 발매를 기념해19일 서울 서초구 스타인웨이 갤러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한 때 사진사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 백건우는 앨범 커버 사진을 비롯해 스페인 여행 당시 찍은 사진들을 이번 앨범에 실었다. 빈체로 제공 

백건우는 19일 서울 서초구 스타인웨이 갤러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젊은 시절 미국 뉴욕에 머물 때부터 꿈이었던 ‘고예스카스’ 앨범 제작을 40년이 지나 이루게 됐다고 밝혔다. 전설적인 여성 피아니스트 알리시아 데 라로차(1923∼2009, 스페인)가 뉴욕 카네기홀 데뷔 무대에서 연주한 ‘고예스카스’를 듣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음악을 공부하다 보면 인생에서 음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 있어요. 그 당시 카네기홀에서 듣는데 ‘정말로 음악이 이럴 수 있구나’를 체험한 기회였습니다. 늦가을인가 초겨울로 추웠는데 카네기홀에 햇볕의 따스함이 느껴지면 온기가 감돌았고 음악을 통해 다른 세계로 가는 경험을 했어요. 음악이 너무 화려하고 훌륭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언젠가 내가 이곡을 연주하고 싶다’는 숙제로 갖고 있었습니다. 40년이 넘은 것 같네요.”

 

‘고예스카스’는 마누엘 데 파야(1876∼1946), 이사크 알베니스(1860∼1909)와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클래식 작곡가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그라나도스가 고야의 그림 전시회를 본 후 영감을 받아 작곡한 대표적인 피아노 모음곡이다. △사랑의 속삭임 △창가의 대화 △등불 옆의 판당고 △비탄, 또는 처녀, 그리고 나이팅게일 △사랑과 죽음: 발라드 △에필로그: 유령의 세레나데 △지푸라기 인형 7개 곡으로 구성됐다. 마치 미술 작품을 감사하는 것처럼 스페인 특유의 열정과 사랑, 슬픔, 우아함 등 다양한 색채를 느낄 수 있다. 그라나도스는 이 곡을 지은 의도에 대해 “고예스카스에는 슬픔과 우아함이 뒤섞여 있고, 나는 슬픔과 우아함이 어느 쪽도 우위를 차지하지 않으면서 시적인 분위기 속에 표현되도록 노력했다”며 “사랑스럽고 열정적인 음이, 곧 격정적이고 비극적인 음으로 변하는데 이것은 고야의 그림들에서 느껴지는 것들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백건우는 “나는 한번 연주를 시작하면 30분이고 40분이고 (긴 시간) 그 음악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는데, 스페인 음악(곡)은 길어야 5분인 소품들의 연속이라 빠지지가 않는다”며 그런 이유로 스페인 음악을 특별히 연주한 적이 없는데 ‘고예스카스’는 다르다고 했다. “다른 스페인 음악과 달리 7개 곡이 다 한 작품으로 쓰여 느낌이 전혀 다르고, 나로선 스페인 음악을 처음하는 것과 같아 그 자체로 새롭습니다.” 그가 과거 스페인 음악을 연주해 본 건 파야가 작곡한 ‘스페인 정원의 밤’ 정도라고. 

 

이번 앨범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음악이 다른 차원으로 걸어가는 이정표 같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관련, 백건우는 지금까지 음악인으로서 살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자유롭게 음악을 즐겨보자는 마음에 택한 것이 ‘고예스카스’ 앨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뉴욕 활동 초기에는 한국이란 나라의 위상이 낮았던 데다 한 개인으로 세계 음악계와 싸우기에는 굉장히 벅찼습니다. (동양의 변방 국가에서 온) 음악인으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나의 음악을 쌓아가고 발표하는 게 결코 쉬운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우리(음악가)가 찾는 건 그 작품에 가장 충실하고 최대한 노력해서 훌륭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만 이제부턴 나도 음악을 좀 즐기고 싶어요. (그동안) 음악과 싸움해온 거나 마찬가지인데 나이가 들면서 음악과 친해지는 것을 느껴요. 서로 좀더 후해져서 음악이 나를 받아주는 느낌도 들고. 어느 정도 마음의 자유를 찾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더이상 음악가로서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할 필요가 없어 홀가분하다는 점도 피력했다. “예전에는 커리어를 만들기 위해 음악회를 열거나 짧은 시간에 새 곡도 배워야 하고, 잘 맞지 않는 지휘자와 연주도 해야 했습니다. 또 스케줄이 불가능한데도 멀리 비행기타고 가서 해야 되는 등 (내키지 않아도) 받아들여야 할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좀 여유롭게 하고 싶은 곡 할 수 있게 됐어요.“

 

1956년 불과 열 살 때 김생려가 지휘하는 해군교향악단(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피아노 협주곡을 선보여 데뷔한 지 66년이나 된 백건우는 자신의 데뷔 년도를 다르게 소개하면서 연주자의 생명은 음악성과 노력이 조화를 이뤄야 오래 간다고 강조했다. “(1972년에) 내가 직접 프로그램을 구상해 뉴욕 카네기홀에서 라벨(1875∼1937,프랑스) 전곡을 연주한 게 피아니스트로서 공식 발표회고 데뷔 같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사실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음악성을 갖고 태어나야 합니다. 음악성이 얼마만큼 진지하고 깊이가 있느냐에 따라 연주자 생명이 짧을 수도 길 수도 있고, 그 다음에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좋은 음악성을 가졌다고 키우지 않으면 발전이 없어요.”

 

그는 최근 한국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국제 콩쿠르 잇단 우승 등 세계 클래식 무대 활약상에 대해선 연주 테크닉 등 실력이 굉장한 수준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다만 음악은 테크닉이 다가 아니라면서 “음악의 언어라고 하는 건 굉장히 폭이 넓다.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만 보고 만족할지 모르지만 연주자나 청중 모두 그 음악 자체가 추구하는 게 뭔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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