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는 19일(현지시간) 엄수되는 국장을 앞두고 전쟁을 치르듯 외교·의전·경호 준비를 해왔다. 윤석열 대통령 등 전 세계 각국 정부·왕실 대표 500명가량이 참석해 ‘역대급’으로 치러지는 장례식이기 때문이다.
장례식에 참석하는 해외 귀빈에는 윤 대통령 외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 각국 정상 및 국제기구 수장들이 포함됐다. 마이클 마틴 아일랜드 총리도 참석하는데, 2011년 아일랜드를 국빈 방문해 북아일랜드를 둘러싼 수십년간의 긴장을 해소하는 데 기여한 여왕에게 경의를 표시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수 세기 동안 혼맥으로 얽힌 유럽 국가 왕족들도 장례식장을 찾는다. 빌렘 알렉산더 네덜란드 국왕 부부, 필립 벨기에 국왕,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부부 등이다. 여왕의 서거로 유럽 최장수 군주가 된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82) 여왕도 몸소 웨스터민스터 사원을 찾는다. 일본에서는 나루히토 국왕 부부가, 중국에서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초청을 거절해 왕치산 부주석이 대신 참석한다.
외신들은 “영국과 외교관계가 있는 거의 모든 나라가 초대됐지만, 러시아·벨라루스·미얀마 등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권 유린 등 이유로 명단에서 빠졌다”며 “이란, 북한, 니카라과 등에는 국가원수가 아닌 대사에게 초청장을 보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가 참석한다. 이들은 의전 규정에 따라 23명의 왕실 구성원 뒷줄에 앉아 장례식을 지켜본다.
해외 귀빈이 대거 참석하기로 하면서 며칠 전부터 영국 외무부는 각국과 치열한 물밑 협상을 벌였다. 주치의, 개인 비서를 대동할 수 있게 해달라거나 별도 휴식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WP)에 “열 번 중 아홉 번은 ‘안 됩니다’(No)라고 했다”고 말했다. 다만 왕치산 중국 부주석,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등을 위한 통역 요청은 일부 허용됐는데, 이는 찰스 3세 국왕 주최 리셉션을 위한 것으로 공간이 비좁은 장례식장에서는 불허됐다고 WP는 덧붙였다. 영국 외무부는 ‘세기의 장례식’이 불상사로 얼룩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귀빈 의전에만 공무원 300명을 투입했다
영국 정부는 공항과 장례식장 주변 혼잡을 우려해 참석 귀빈들에게 가급적 민항기를 이용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대부분 전용기를 타고 왔다. 다만 장례식장까지 셔틀 버스를 이용해 달라는 요청에는 나루히토 일왕 등 상당수가 선뜻 응해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용차 이용은 바이든 대통령, 아이작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 등 소수에게만 예외적으로 허용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전용차 이용 요청이 거절되자 외무장관을 대신 보냈다.
해외 각국 수장이 한 곳에 대거 모인 만큼 중요하고 내밀한 대화가 오갔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미국의 의전장이었던 카프리시아 마샬은 “정상들이 보좌관이나 기록하는 사람 없이 모이는 건 드문 기회”라며 “다른 나라 정상 말고는 딱히 대화할 상대도 없는 만큼 이 기회를 적극 이용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왕의 장례식을 위한 정부 계획인 ‘런던 브리지 작전’은 경찰이 주도했다. 지난 8일부터 런던 전역에서 장례식 대비 훈련을 해온 경찰은 100만명이 주변에 운집할 것으로 예상된 장례식을 위해 사상 최대의 치안 인력을 투입했다. 스튜어트 콘데 메트로폴리탄 경찰 부국장은 “단일 행사로서 이번 장례식은 2012년 런던올림픽보다도, 플래티넘 주빌리(여왕의 즉위 70주년 기념행사)보다도 더 크다”고 말했다.
공식 응급으료망과 별도로 ‘세인트 존 앰뷸런스 협회’가 24시간 응급의료 지원을 위해 1000명을 현장에 보내는 등 응급서비스, 소방, 교통에서도 당국은 만전을 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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