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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협상 대신 고소·고발… 사법에 기대 ‘사생결단식 정치’ [심층기획 - '정치의 사법화'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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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19 06:00:00 수정 : 2022-09-19 07: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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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때 인적 청산 위주 적폐 청산
국민의힘 당권 놓고 당·이준석 전쟁
국회 아닌 법원·검찰서 혈투 악순환
“檢 힘 빼야 한다면서 檢에 운명 맡겨”

팬덤 정치 등장으로 정치력도 약화
“경쟁 대신 진영 정치… 그건 정치 아냐”
문재인정부의 ‘적폐 청산’에서 국민의힘 당권을 둘러싼 당과 이준석 전 대표 간 ‘가처분 전쟁’까지…. 지난 정부에서 현재까지 특정 진영 또는 정치인이 영향력을 유지, 확대하기 위해 ‘전장’을 수사기관과 법정까지 확대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 사건들이다. 적폐 청산을 오로지 ‘인적 청산’으로만 해결하고자 했던 문재인정부는 임기 절반을 지나도록 적폐 수사를 이어갔다. 정권교체에 성공한 국민의힘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줄곧 당권을 둘러싸고 ‘자중지란’을 벌이고 있다. 당권에서 밀려난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일부 인용되면서 주호영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직무 정지되고, 비대위가 해산 수순을 밟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집권여당이 사법부 판단에 자신들 운명을 맡긴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갈수록 심화하는 ‘정치의 사법화’를 두고 정치권의 한 원로는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은데, 말문이 막혀서 나오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정치와 사법의 경계 실종

18일 각계 인사들은 정치가 우리 사회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더욱 증폭시키는 상황을 우려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문제 해결 능력이야말로 정치권의 제일 중요한 능력인데, 그것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정치도 제 역할을 못 하니 정치의 사법화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의 사법화가 누적되다 보니 이제 사법의 정치화까지 초래하게 됐다”며 “일차적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고 했다.

정치권이 갈등을 수사기관과 법원으로 가져간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그 정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점에 각계는 우려하고 있다. 정계에서 은퇴한 한 인사는 “우리 때도 여야가 문제 해결을 못 해 검찰청에 고발장을 들고 가는 일이 가끔 있었다”면서도 “그건 정치인들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하나의 수단으로 썼던 것이다. 지금처럼 전부 다 (정치가) 사법화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결국 정치권의 갈등 조정 능력 상실로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하고, 나아가 사법의 정치화를 유발, 두 현상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결과적으로 정치와 사법 간 경계선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이찬희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정치적 감각과 포용력을 갖춘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 점점 드물어지고, 오로지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법조인들이 정치권에서 다수를 차지하면서 생기는 문제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전 협회장은 “정치권이 ‘사회통합을 위한 법치’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오로지 ‘승패를 나누는 법치’를 하며 정치가 실종되고 말았다”고 했다.

◆‘정쟁의 장’으로 전락한 법원·검찰

정치의 사법화는 ‘적대 관계’를 형성한 인사, 혹은 세력의 ‘정치 생명’을 단절시킴으로써 정치적 우위를 점하려는 ‘혈투’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 싸움은 여의도 정치판을 넘어 법원과 검찰청사로 확대돼 결과적으로 형사사법시스템 전반의 정치 중립성과 신뢰를 저하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후곤 전 서울고검장은 정치권을 향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이전에 정치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일을 고소·고발장으로 만들어 검찰청 입구에서 사진 찍는 일을 멈춰 달라”며 “검수완박 되면 경찰청 입구에 가서 사진 찍을 것인가”라고 했다.

김 전 고검장은 “국회에서 해결할 일, 정부 내에서 해결할 일, 시민사회에서 우선 해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 등을 일단 검찰에 고발하고 보자는 문화와 관행도 타파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치권이 검찰에 의존하거나, 검찰을 이용하려는 행태는 검찰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검찰의) 힘을 빼야 한다고 하며 왜 자신들의 운명을 검찰에 맡기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의원은 “(정치의 사법화가) 과거보다 더 심해지고 있다”며 “예전엔 양측이 아무리 감정적으로 충돌했어도, 선거가 끝나면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구원을 풀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위 ‘동물국회’라고 하던 때도 가능하면 고소·고발을 자제했는데, ‘국회 선진화법’이 도입됐는데도 정치가 사법에 의지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치의 빈자리 채운 ‘진영논리’와 ‘팬덤’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한 원인으로 한 현역 의원은 “진영논리의 심화”를 꼽았다. 그는 “이명박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극에 달한 진영 간 갈등이 여태 봉합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진영논리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기도 하다.

이에 더한 ‘팬덤 정치’의 등장은 현역 정치인들의 정치력 약화를 유발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채진원 교수는 “정치인들이 국민과의 관계에 있어 평균적인 국민들을 대변하기보다는, 자신을 지지하는 특정 강성 팬덤을 대변하려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채 교수는 “굳이 정치인으로서 정치력을 발휘할 필요도 없고, 정치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고, 상대방을 설득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팬층을 두텁게 가지면 그것 자체가 파워가 되니, 정치인 입장에선 많은 시간과 인내가 요구되는 대화와 타협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밀어붙이기식 막가파 정치’라는 손쉬운 길을 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채 교수는 “정치인은 국민의 대표로서 지지를 받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 본질인데, 팬덤 조직과 협업파만 끌고 가고 있다”며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을 벌이는 대신 팬덤 정치, 진영 정치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정치가 아니다”라고 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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