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없는 서민적 면모에 국민들 지지 높아
젊은 시절 청바지를 즐겨 입는 등 소탈한 행보로 인기를 얻은 덴마크 여왕이 어느새 즉위 50주년을 맞았다. 그는 최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로 유럽에서 재위 기간이 가장 긴 군주 자리를 넘겨받았다.
1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1972년 여성으로는 처음 덴마크 국가원수 자리에 오른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기념하는 의식이 수도 코펜하겐에서 열렸다. 마르그레테 2세는 1972년 1월에 국왕이 되었기 때문에 원래 올해 1월 축하행사가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연기됐다.

여왕은 제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0년 4월에 태어나 올해 82세다. 덴마크는 영국과 달리 남성만 국왕이 될 수 있다는 규정을 오랫동안 지켜왔다. 그런데 마르그레테 2세의 부친인 프레데릭 9세는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을 뒀다. 그러자 1947년 법을 고쳐 ‘국왕에게 아들이 없으면 딸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는 취지의 조항을 추가했다. 이에 따라 1972년 프레데릭 9세가 타계한 직후 장녀인 마르그레테 2세가 덴마크 역사상 최초의 여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후계자 수업을 착실히 받고 32세의 젊은 나이에 왕좌에 오른 여왕은 사적인 자리에서 청바지 차림을 즐기는 소탈한 면모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1988년 그가 청바지를 입고 코펜하겐 시내 서점에 들린 것은 한국 언론에 소개될 정도로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여왕이 50세 생일을 맞은 1990년 4월 국내 한 언론은 덴마크의 축제 분위기를 전하며 “평소에는 청바지를 즐겨 입는 서민적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왕의 일을 착실히 해내고 있어 국민의 칭송이 자자하다”고 보도했다.
덕분에 덴마크는 국민의 80% 이상이 “군주제를 지지한다”고 말할 정도로 왕실의 지위가 탄탄하다. 왕실을 둘러싼 온갖 스캔들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 서거 직후 ‘군주제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영국과는 여러 모로 대조된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이날 여왕의 즉위 50주년 기념식에서 “지난 50년 동안 덴마크에는 24개의 정부와 9명의 총리가 있었지만 여왕은 한 분뿐”이라며 “당신(여왕)은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완전히 얻었다”고 찬사를 바쳤다.

여왕은 1967년 결혼해 50년 넘게 해로하고 2018년 사별한 남편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았다. 젊은 시절 영국과 프랑스에서 유학해 영어·프랑스어 등 5개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미술에 조예가 깊어 직접 삽화를 그릴 정도의 실력을 뽐내는데 지난 2007년 덴마크 국가원수로는 처음 한국을 국빈방문했을 당시 창경궁을 둘러보고 “몹시 아름답다”고 감탄했으며 우리 도자기에도 애정을 드러냈다.
유럽의 군주국들은 왕실끼리 결혼 등으로 긴밀히 엮여 있어 서로 친인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르그레테 2세도 촌수로 따지면 엘리자베스 2세와 그리 멀지 않은 친척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여왕은 엘리자베스 2세 서거 직후 치르는 자신의 즉위 50주년 행사를 대폭 축소하도록 했다. 덴마크와 역사 및 문화를 공유하는 이웃나라 스웨덴, 그리고 노르웨이의 국왕 부부 등이 코펜하겐을 방문해 축하의 뜻을 전하는 것으로 간소하게 의식을 진행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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