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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지는 ‘3고’ 현상에 지갑 닫는 서민들… 경기 침체 악순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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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10 10:59:31 수정 : 2022-09-10 10: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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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화곡동에 살고 있는 직장인 A씨는 최근 지출을 평소의 절반가량으로 줄이고 있다. 최근 아이가 태어난 상황에서 육아 관련 비용이 많이 늘어나는 데다 물가마저 뛰고 있어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출퇴근도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점심도 회사에서 해결하는 등 사적인 만남도 줄이고 있다. A씨는 “물가가 내년에도 뛸 것이란 말이 나오고 경제 상황도 쉽게 좋아질 것 같지 않아서 지출을 줄이고 있다”면서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 모란민속5일장을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는 모습. 연합뉴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 현상이 서민들의 지갑을 닫게 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서 비롯된 고물가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고강도 긴축에 따른 고환율이 물가를 추가로 밀어 올리고 있다. 고물가는 기준금리 인상을 부추겨 가계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여기에 우리 경제 성장을 견인했던 수출 시장마저 사정이 나빠지는 등 경기 침체 우려마저 커지고 있어 소비가 더욱 얼어붙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 분기 대비 1.3% 감소했다. 실질 GNI는 일정 기간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임금, 이자 등 각종 소득을 합한 것으로 실제적인 구매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실질 임금도 악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6월 전체 근로자의 명목임금은 평균 366만3000원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4.9% 증가했다. 하지만 물가를 고려한 실질임금은 338만5000원으로 1.1% 감소했다. 4월(-2.0%), 5월(-0.3%)에 이어 석 달 연속 줄었는데, 이는 201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소비자물가는 최근 둔화세를 보이고 있지만 장기간 높은 수준이 유지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온 상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7%로 7월(6.3%)보다 둔화됐다. 하지만 서민들의 생활과 관련된 지표들은 고공행진하는 추세가 이어졌다. 신선채소, 과일 등으로 구성된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4.9% 올랐고, 외식 등 개인서비스 부문도 6.1% 올라 상승세가 지속됐다. 소비자원의 가격종합포털 ‘참가격’을 보면 8월 서울 지역 삼겹살 가격(200g)은 평균 1만8364원으로 1년 사이에 8.7% 올랐다. 1인분 기준 냉면은 1만500원으로 9.6%, 자장면은 6300원으로 15.3% 올랐다. 추석 이후에는 라면 가격 인상도 예고돼 있다. 농심은 오는 15일부터 주요 라면가격을 평균 11.3%, 팔도는 내달 1일부터 12개 브랜드 라면 제품 가격을 평균 9.8% 올릴 계획이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례적인 고환율도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384.2원) 보다 3.4원 내린 1380.8원에 마감했다. 지난 1일부터 5거래일 연속 연고점을 경신한 뒤 하락했지만 여전히 1380원대에 머물렀다. 고환율은 수입 물가에 영향을 미쳐 물가가 상승하는 원인이 된다. 한은에 따르면 올 상반기 환율 급등이 국내 소비자물가를 0.5%포인트 가까이 끌어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세계적인 에너지 수급 문제에 더해 고환율 현상이 영향을 미쳐 한은은 물가 정점이 당초 예상됐던 9~10월에서 더 지연될 수 있다고 지난 8일 언급하기도 했다. 한은은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향후 국제유가 전망, 기저효과 등을 고려할 때 물가 오름세는 올해 하반기 중 정점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나 상방 리스크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정점이 지연되거나 고물가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밝혔다.

 

고물가는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여기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고위 인사들은 9일 일제히 3연속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한은이 연준보다 먼저 금리 인상을 시작했지만, 먼저 종료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난달 27일 이창용 한은 총재의 말을 고려하면 한은의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란 분석이다.

 

금리 인상으로 가계 금융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6월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이 1869조4000억원으로 3월말 대비 6조4000억원 증가했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 보험사 등 금융회사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신용카드 사용금액을 더한 것으로 가계부채의 총량을 의미한다.

 

문제는 향후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전망도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경제동향 9월호’를 통해 “설비투자와 소매판매가 감소세를 보였으며, 중국과 정보기술(IT) 부문을 중심으로 수출도 증가폭이 축소되고 있다”면서 “아울러 대내외 금리인상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의 주요 도시에 봉쇄조치가 내려지는 등 경기하방 압력이 증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7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현재 대내외 상황을 종합해보면 복합위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물가와 그에 따른 금리 인상, 경기 침체 우려는 소비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이달 초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전환되면서 보복 소비를 기대했지만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가계의 실질 구매력 감소가 우려된다”며 “고금리·고물가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소비 부진이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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