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대비 원화가치가 10% 넘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달러’ 현상은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유로·엔·위안화 등주요국 통화와 비교해봐도 원화의 낙폭은 크고 가파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잇따라 연고점을 경신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 4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1360원대까지 치솟았다. 1400원대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우려섞인 관측도 나온다. 전세계 경기 둔화 속 원화가치 하락은 수출 증대라는 호재보다는 수입물가 상승이라는 악재를 더욱 강화시킨다. 당분간 고환율이 예고되면서 재계안에서 정부가 통화스와프, 원유 관세 인하등 적극적 대책에 나서달라는 제안이 나온다.
4일 블룸버그가 주요 통화의 달러화 대비 등락률을 집계한 결과 원화는 올해 들어 지난 2일까지 12.75%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낙폭은 블룸버그가 집계한 31개 주요 통화 중 8번째다. 한국보다 자국통화 가치가 많이 하락한 국가들 중 터키 리라화(-26.87%)와 아르헨티나 페소화(-26.17%)는 사실상 경제위기가 진행중이고, 헝가리 포린트화(-19.68%), 폴란드 즈워티화(-14.94%)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원화는 일본 엔화(-17.92%), 스웨덴 크로나화(-16.04%), 영국 파운드화(-14.95%)에 이어 4번째로 가치 하락이 큰 셈이 된다.
특히 원화가치 하락은 최근 일주일 동안 두드러졌다.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 의장이 단호한 긴축의지를 드러낸 지난달 26일 ‘잭슨홀 미팅’ 발언 이후 원·달러 환율은 1331.3원에서 1362.6원으로 31.3원(2.35%)이나 뛰어올랐다. 그만큼 원화가치가 하락했다. 이 시기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0.7% 상승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환율 급등에서도 지난달 한국 주식시장(코스피·코스닥·코넥스)에서 4조원(3조9837억원) 가까이 순매수를 기록했지만, 이번달 들어서는 이틀에 거쳐 6748억원을 순매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달러가치 상승에 따른 국내 시장 투자 감소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오름세는 국내 경제 문제보다는 주요국 긴축 움직임, 중국발 경기둔화, 원자재 가격 상승과 같은 대외 변수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 원인들이 단기간에 사라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에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이날 보고서에서 “(달러화 강세) 현상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달러화 강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는 원·달러 환율 고점을 1380원대로 잡았다. 일각에서는 1400원를 전망하기도 한다. 현재로서는 가장 큰 변수는 이달 개최는 미 연준의 공개시장위원회(FOMC)다. FOMC가 다시 한번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할 경우 달러가치가 더 오를 공산이 크다.
일반적으로 원화가치 하락은 수출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경기둔화가 임박한 상황에서는 수출효과보다는 수입물가가 오르는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지난 7월 보고서에서 원자재가격과 환율 변동이 수출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원자재 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각각 10% 상승하는 경우 수입은 3.6% 증가하는 반면 수출은 0.03% 늘어나는 데 그친다고 분석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8월 무역수지는 94억7000만 달러 적자였는데, 수출이 전년동기 대비 6.6% 늘어난 566억700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수입은 28.2% 늘어난 661억5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높은 원자재 가격에 환율 변수까지 더해진 결과다. 장기간 고환율이 예고된 만큼, 향후 상황도 녹록치 않다. 특히 외화결제 비율이 높은 항공업과 반도체, 원유를 수입해 가공하는 정유업계 등은 환율 상승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중국발 경기둔화에 따른 반도체 수출 둔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장기화도 한국 경제에 악재다.
대한상의는 “다른 국가와의 상품·서비스 및 자본 거래의 결과로 발생하는 외환의 유출이 유입보다 크게 돼 국제수지가 악화될 경우 환율이 상승할 수 있다”며 ”최근과 같이 환율 상승이 원자재 수입 부담을 가중시키는 영향이 지속할 경우, 무역수지 적자가 누적되면서 환율이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상의는 환율 상승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 등 주요국과의 통화 스와프를 통한 외화자금 공급 확대, △수출 기업 금리 등 기업 금융 비용 경감 및 환율 변동 보험 한도 확대, △소비·투자·수출 진작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한상의는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비(非)산유국 가운데 유일하게 수입산 원유에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며 원유 관세 인하를 제안했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실장은 “환율 상승이 경제 전반의 활력 저하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면 소득세 및 법인세 인하, 기업 투자세액 공제 확대, 수출금융지원 확대 등 고비용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는 대책들이 적기에 시행돼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의 협력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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