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선배 이한동과 정치적 입장 늘 함께해
이한동 총리 때 비서실장… JP와 갈라서기도
국민의정부 시절 김대중(DJ) 대통령과 김종필(JP) 전 국무총리 간의 이른바 ‘DJP연합’이 깨진 뒤에도 JP를 따르는 대신 자신이 모시던 이한동 당시 총리와 진퇴를 함께하는 등 평생 이 전 총리와 의리를 지킨 이택석 전 국회의원이 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1937년 경기 고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명문 경복중, 경복고를 거쳐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고인은 50세까지 재계에서 일하며 동양고속 이사 등을 지냈는데 19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가 이뤄지자 JP가 만든 공화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투신했다. 이듬해인 1988년 13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 공화당 후보로 고향인 고양에 출마해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이후 같은 지역구에서 14대(민자당 소속)와 15대(신한국당 소속)까지 내리 3선을 기록하며 유력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고인은 정계에서 활동하며 당시 잠재적 대권주자로 분류되던 이한동 전 국회부의장과 가까워졌다. 고인과 마찬가지로 이 전 부의장도 경기 북부에 지역구(연천·포천)를 두고 있었다. 이 전 부의장은 고인의 경복고 선배이기도 했다.
1997년 대선에서 DJ가 승리한 뒤 당시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 중심으로 급속히 개편됐다. DJP연합으로 ‘공동여당’이 된 JP의 자민련은 이 총재와 갈등하던 세력에 ‘러브콜’을 보냈고 고인은 1998년, 이 전 부의장은 1999년 차례로 자민련에 합류했다.
2000년 6월 ‘총리는 자민련 측에서 맡는다’는 DJP 합의에 따라 이 전 부의장이 총리에 오르자 고인은 총리 비서실장이 되었다. 3선의원을 지낸 중견 정치인이 차관급에 불과한 총리 비서실장 자리를 받아들인 것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인사는 “JP, 그리고 이 총리와 모두 친하면서 가교 역할을 할 사람이 고인 말고는 딱히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듬해인 2001년 9월 DJ가 임명한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공동여당인 자민련의 찬성 속에 가결되며 DJP연합은 붕괴하고 말았다. 당시 자민련 소속으로 장관 등 공직을 맡고 있던 인사들이 일제히 사의를 밝히고 JP 곁으로 돌아갔으나 이 총리는 DJ정부에 잔류하는 쪽을 택했다. 이때 총리 비서실장이던 고인도 자민련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이 총리와 뜻을 같이했다. 이 총리는 DJ정부 마지막 해인 2002년 7월까지 2년1개월간 재임하며 ‘장수 총리’로 기록됐다. 이 총리가 물러나며 비로소 고인도 총리 비서실장직을 내려놨다.

두 사람에 대한 JP의 앙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노무현정부 출범 후 범(凡)보수의 결집 필요성이 커지자 2004년 이 전 총리는 JP와 화해하고 자민련에 복당했다. 고인도 이 전 총리를 따라 자민련에 복귀했다. 이처럼 고인의 정치인생 내내 ‘멘토’ 역할을 한 이 전 총리는 2년 전인 2021년 5월 87세를 일기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정계에서 은퇴한 뒤로는 전직 국회의원들 모임 대한민국헌정회 이사를 지냈다. 유족으로 부인 조용자씨, 아들 이원철(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철(우리은행 잠실본동지점 지점장대우)·준철(미국 거주)·재철씨 등이 있다. 빈소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발인은 9일 오전 8시30분. (031)900-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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