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4년, 1395년 9월에 새 궁궐인 경복궁이 준공됐다. “남문은 광화문이라 했는데, 문 남쪽 좌우에는 의정부·삼군부(三軍府)·육조(六曹)·사헌부 등의 관아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고 했다. 광화문 앞에서 황토현(현재의 광화문 네거리)까지의 길을 사이에 두고 들어선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의 육조 등 권력기관의 고위 관리들이 수시로 입궐해 임금에게 업무를 보고하고 정무 관련 협의를 했다. 국정이 어지러우면 유생들이 모여 상소를 올리고 농성을 벌였다. ‘정치 1번지’ 역할을 한 것이다. 이곳을 ‘육조 거리’라고 불렀다. 오늘날 서울 세종대로의 원형이다.
조선 건국의 설계자 정도전은 문집인 ‘삼봉집’에 남긴 ‘진신도팔경시(進新都八景詩)’에서 육조거리를 이렇게 노래했다. “관청들은 우뚝하게 서로 마주하여/ 별들이 북두칠성에 읍례하는 듯하다./ 달 밝은 새벽 관청 거리는 물같이 반짝이고/ 장식 매단 귀인 수레는 먼지조차 일지 않네.” 새벽부터 바삐 일하는 관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광화문광장이 오늘 재개장한다. 2009년 처음 조성된 광화문광장은 도로 한가운데 섬 같다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2020년 11월 시작된 재구조화 사업으로 기존 광장 서쪽 세종문화회관 앞 차로를 없애 면적(4만300㎡)을 두 배로 넓혔고 4분의 1을 녹지로 만들었다. 공사 중 발굴된 사헌부 터 우물·배수로 등은 유리로 덮어 그대로 전시한다. 정부서울청사 앞 삼군부 터와 세종로공원 앞 병조 터, 세종문화회관 앞 형조 터 등은 흙으로 덮어 보존하고, 상부에 담장·배수로 등을 재현해 육조거리의 흔적을 볼 수 있게 했다. 옛 토목건축의 자취인 유구(遺構)는 광장 밑에 잠들지만 공간의 역사성은 회복됐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후 방치됐던 광화문 월대(月臺·궁궐 앞 넓은 기단)도 내년 12월 복원 공사가 끝나면 길이 50m, 폭 30m의 제 모습을 되찾는다.
서울시는 새 광화문광장의 집회·시위를 규제할 방침이다.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계기로 광화문광장 일대가 역사의 중심으로 되살아나길 바란다. 그것이 수도 서울의 대표적인 광장다운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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