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에는 오래됐지만 알록달록한 3층짜리 상가가 있다.
이 상가 1층과 2층에는 미용실과 예식장이 있는데, 대한민국 국민이면 한번은 들어봤을 정도로 이제는 유명한 곳이다.
마산 신신예식장 대표 백낙삼(90)·최필순(81)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 부부가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건 50년 넘게 이 예식장에서 결혼한 부부가 1만5000쌍이라는 수치 때문만은 아니다.
백낙삼 옹은 지금 병상에 있는 관계로 그의 부인 최씨와 아들 백남문(53)씨의 추억을 토대로 신신예식장의 사연을 풀어보고자 한다.
2일 부인 최씨의 말을 들어보면 남편 백 대표가 처음부터 신신예식장을 운영하지는 않았다.
그가 성년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학비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학비를 벌기 위해 처음 일했던 곳은 차량 정비소였다.

대학생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게 기특해서 정비소 사장이 백 대표에게 사진기를 선물해줬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사진기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좀처럼 형편이 나아지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서울 한강을 찾았다.
거기서 지나가던 한 중년 남성이 그의 어깨를 치며 “젊은이, 나쁜 마음먹지 말고 인생 굳세게 살게나”라고 격려했다.
그 말에 흐르던 눈물을 닦고 정신을 차려보니 한강에 떠 있는 조그만 배 한 척이 보였다.

백 대표는 그 배와 사진기를 이용하면 어떨까 고민하다 배를 빌린 뒤 손님을 태워 사진을 찍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탁월한 수완에 손님들 반응이 좋았던 것이다. 이 때 그가 빌린 배의 이름이 ‘신신호’였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무엇을 하든 ‘신신’이라는 이름을 꼭 새기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백 대표가 처음 자신의 가게를 차린 건 사진관이었다. 지금의 신신예식장 자리인데 이 때 사진관 이름이 ‘신신사진관’이었다.
사진관 치고는 넓어 주변에서 예식장도 한번 같이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예식장이 많이 없어 옷만 차려 입고 사진만 찍고 결혼했다고 알리는 게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2층에 다닥다닥 붙어서면 100명도 들어갈 정도니 예식장도 괜찮겠다고 판단한 백 대표는 1967년 신신예식장 간판을 걸고 운영했다.
백 대표가 힘든 시절을 겪은 탓에 초기에는 사진값 6000원만 받고 예식까지 치러줬다고 했다. 당시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매우 저렴한 결혼식 비용이었다.
그의 이런 선행이 입소문을 타면서 신신예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가 줄을 이을 정도였다.
부인 최씨는 “아이고 말도 마소. 많을 때에는 하루에 17쌍이 우리 예식장에서 식을 올리기도 했어예. 마산에서는 신신예식장에서 결혼 안 한 부부가 없을 정도였어예”라고 회상했다.
개업 후 55년이 지난 지금 최씨는 어림잡아 1만5000쌍 정도가 신신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것으로 계산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을 찾는 이유가 조금 달라졌을 뿐 신신예식장의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최근에 ‘리마인드 결혼식’으로 언론과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면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오래 전 결혼식을 올리고 평생을 함께한 부부가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인데, 손님 대부분이 60~70대 부부다.
신신예식장을 찾은 지난 1일에도 80대 노부부가 리마인드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혼한 지 58년 됐다는 이 노부부는 TV에서 신신예식장을 보고 서울에서 한달음에 내려왔다고 했다.
드레스와 턱시도가 각각 70여벌이 준비돼 있는데 고르는 재미도 쏠쏠해 보였다.
이날 결혼식을 다시 치른 80세 신부는 “면사포를 써보는 게 내 평생 소원이었는데 60년 만에 그 꿈을 이뤘다”며 즐거워했다.

이들 노부부의 아들은 “사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더 좋은 곳에서 할 수 있는데 어른들만의 묘한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며 “다른 곳에서 결혼식해도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저희 어머니가 무조건 신신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해서 여기까지 찾아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날 결혼식은 평소와는 달리 진행됐다.
원래는 백 대표가 사진도 찍고 주례도 진행하는데 지난 4월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병원에서 치료 중에 있다.
그래서 아들과 친척이 그의 빈자리를 채우며 최씨와 함께 예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백 대표가 병상에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변에서는 안타까워하고 있다.
혹여나 추억이 깃든 신신예식장이 문을 닫을까봐 노심초사하며 그의 쾌유를 빌고 있다.
안병오 마산합포구청장은 “1만4000쌍 부부에게 평생의 인연을 이어주고 새 희망을 선물하신 어르신의 병환 소식에 많은 시민께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며 “빨리 건강을 회복하시고 예전처럼 선행을 베풀어주시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마산합포구 40대 주민은 “우연히 신신예식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백낙삼 어르신께서 따뜻한 차와 함께 어려운 이웃들의 눈물겨운 사연들을 이야기 해줘서 상심이 더욱 크다”며 “부디 쾌유하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은 부부 한쌍 결혼식을 치르는데 70만원 정도를 받는다. 주례비와 신랑·신부 화장, 드레스와 턱시도, 신부 도우미 일당 등을 제하면 사실 많이 남는 것도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신신예식장을 운영하는 것은 오로지 남편의 뜻을 이어받기 위함이라고 최씨는 말한다.
또 신신예식장 사훈이 고객 존경, 고객 만족, 고객 감동인 만큼 신신예식장을 찾는 부부가 있다면 힘닿는 데까지 아들과 함께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들 백씨는 “예식장을 운영하면서 힘들 때 무료로 결혼식을 올려준 부부가 나중에 잘 돼서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를 부모님으로부터 종종 들었다”며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뜻을 받들어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최씨는 남편 생각에 잠기자 인터뷰 말미에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최씨는 “신신예식장의 역사를 기록한 신신사기가 있어요. 지금 3권까지 썼는데 1권과 2권은 엄청 두꺼워요. 남편이 3권을 쓰는 중에 쓰러졌다”며 “아들과 제가 신신예식장 마지막까지 함께해 신신사기를 마무리하겠다”고 울먹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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