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정부에서 무상으로 16만달러(1억5100만원)를 받아 내 집 마련.’
싱가포르에서 가능한 인생 시나리오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만 달러 이상인 싱가포르에서는 약혼을 했다면 20대 초반에도 정부 보조를 받아 몇억원 짜리 집을 사고, 몇 년 후 이를 되팔아 재산을 불릴 수 있다. 수십년간 누적된 공공주택 정책 덕분이다.


이관옥 싱가포르 국립대 도시계획전공 교수는 30일(현지시간) 서울시가 싱가포르에서 마련한 주택정책 브리핑에서 “싱가포르는 공공주택 비율이 지난해 기준 74%이고 전체 국민의 78%가 공공주택에 살며 자가 점유율은 88.9%”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 신규 분양하는 공공주택(HDB)의 중위 가격은 5룸(약 110㎡)이 44만∼63만달러(약 4억1600만∼6억원) 수준이다. 15억∼20억원인 민영주택보다 월등히 낮다.
싱가포르 공공주택은 토지임대부 주택으로 99년간 빌릴 수 있다. 월 소득 1만4000달러(약 1300만원) 이하 중산층 가족이나 약혼한 커플이면 평생 2회까지 분양할 수 있다.
임대주택이지만 재산 증식도 할 수 있다. 5년 실거주 후 시장 가격으로 팔 수 있는데 보통 집값이 상승한다. 또 토지임대부이지만, 매월 월세를 내는 방식이 아니다. 이 교수는 “월급의 20%를 떼서 연금계좌에 넣고 처음에 이를 모아 주택을 사며, 이후 일하면서 2.5% 이율로 연금계좌에 집값의 나머지를 납부한다”고 설명했다. 초반에 적은 부담으로 집을 살 수 있고, 일을 하는 한 저리로 집값을 갚을 수 있는 셈이다.


이 교수는 “싱가포르는 90%의 토지를 정부가 소유하고 있으며, HDB는 이를 시장가로 취득해 분양하기에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정부 예산의 2% 정도인 20억 달러 정도를 HDB에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런 구조로 인해 싱가포르의 중위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연봉을 모아서 집을 살 수 있는 기간)은 2020년 기준 4.7년에 불과하다. 보조금과 다양한 유형의 주택 공급도 ‘월급 전부 모아 4.7년이면 내 집 마련’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이 교수는 “싱가포르 정부는 저소득층에 16만달러까지 보조금을 무상 지급한다”며 “소득이 낮을 때 분양 받아야 보조금이 많기에 일찍 분양받을수록 유리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가르치는 싱가포르 국립대 학생들도 학교 다니면서 갑자기 약혼하고 공공주택에 지원하러 간다고 저한테 얘기한다”며 “대학 3, 4학년인데 벌써 결혼하냐고 물으면, 소득이 0인 경우 보조금을 최대한 받을 수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싱가포르는 월 1만4000달러 이상을 버는 ‘샌드위치 가구’를 위해 ‘이규제큐티브 콘도’도 새로 만들었다. 민영과 공공주택의 중간 형태다. 또 공공주택을 분양 받았다가 노년에 집을 줄여가면 정부에서 큰 인센티브를 준다. 작은 집에서 시작해 입지가 좋고 큰 집으로 넓혔다가 노년에 다시 집을 줄이는 ‘토지의 순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주거 부담이 한국보다 적지만 싱가포르 주거정책 역시 과제는 있다. 이 교수는 “싱가포르 중심지는 20년간 주택 공급이 정체됐다”며 “반면 시민들은 소득이 올라갈수록 외곽에 주로 있는 공공주택에서 중심지로 이사하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또 민영주택이 품질·디자인이 월등한 반면 공공주택은 성냥갑 아파트처럼 획일적이다보니, 소득이 늘어날수록 시민의 불만이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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