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듯 총기난사 생중계… 영상 지워도 유령처럼 떠돌며 전파 [뉴스 인사이드-악용되는 스트리밍 플랫폼]

美 10대 지난 5월 ‘카메라 헬멧’ 쓰고 촬영
‘트위치’ 통해 총격 장면 그대로 내보내
2분 만에 영상 송출 중단 발빠른 대처
온라인서 퍼나르기로 수백만회 재생돼

2019년 뉴질랜드선 100명 사상 생중계
‘증오 콘텐츠’ 규제 불구 모방범죄 계속
SNS서 범행 사전고지 해도 파악 못해
“플랫폼 업체 책임있는 자세 필요” 지적

지난달 14일 미국 뉴욕주 버펄로의 한 슈퍼마켓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는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를 통해 생중계됐다. 18세 범인 페이턴 젠드론은 총격 중 방탄헬멧에 동영상 카메라 고프로(GoPro)를 연결해 범행을 생중계했다. 영상은 마치 3차원 가상공간에서 유저가 게임 주인공의 시점에서 적군을 사살하는 1인칭슈팅(FPS·First Person Shooter) 게임을 연상케 했다. 시청자들은 범인이 민간인에게 소총을 무차별 발사하고 시민들이 총격을 피해 슈퍼마켓을 기어 다니는 끔찍한 현장을 그대로 봤다. 트위치 측은 첫 총기 발사 2분 만에 영상을 중지했고 생중계 당시 시청자는 22명에 불과했지만, 녹화 영상은 아직도 인터넷상에서 공유되며 조회수 수백만을 기록 중이다.

지난 5월 14일 미국 뉴욕주 버펄로 슈퍼마켓 총기 난사 사건 당시 범인이 시민에게 소총을 발사하는 끔찍한 장면이 트위치로 생중계되고 있다.

10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친 이 사건은 스트리밍 플랫폼이 범죄에 악용된 대표적 사례다. 누구든지 간단한 장비로 방송 가능한 플랫폼을 통해 범죄를 생중계할 수 있고, 누리꾼은 개인방송 콘텐츠를 소비하듯 지켜봤다. 업체 측이 생방송 송출을 중단했다고는 하나 녹화 영상은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며 웹사이트를 떠돈다.

버펄로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라이브 테러 영상의 문제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특히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을 둘러싼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플랫폼은 라이브 테러 영상을 막지 못하는 것일까.

◆개인방송의 시대, ‘테러 라이브’도 횡행

과거 당국의 규제 하에서 소수 독점 권력으로 인식되던 방송은 이제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다수 대중의 권리가 됐다. 웹캠, 스마트폰 등 디지털 촬영 장비의 보급과 인터넷 발전이 시대 변화를 이끌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위치에서만 하루 약 9만개 계정에서 200만시간이 넘는 생중계가 진행된다. 영상의 시대에 누구나 방송을 켤 수 있게 됐다. 물론 테러범도 예외가 아니다.

2019년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 테러는 라이브 테러 영상이 처음 전 세계에 충격파를 던진 사건이다. 20대 인종차별주의자가 무차별 총격을 가해 51명이 숨지고 49명이 다쳤다. 범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잔혹한 범행 장면을 17분간 생중계했고 세계는 경악했다.

이 사건은 국제사회와 글로벌 기업이 온라인상 증오표현 억제에 나서는 계기로 작용했다. 크라이스트처치 선언이라는 국제적 합의가 그 결실이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AI)을 개발해 증오를 퍼뜨리는 콘텐츠를 규제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뉴질랜드와 프랑스가 주축이 됐고, 영국·독일·일본 등 17개국 정부와 유럽연합(EU)도 동참했다. 구글·페이스북·트위터·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5개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도 참여했다.

이런 규제 노력에도 비슷한 범죄는 계속되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 사건이 발생한 같은 해 10월 독일 작센안할트주 할레 유대교 회당 앞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은 트위치에서 35분간 끊기지 않고 생중계됐다. 이듬해 5월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쇼핑센터 총기 난사도 스냅챗으로 생중계됐다.

지난 2019년 3월 15일 페이스북으로 생중계되고 있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 총기 테러.

지난달 버펄로 총기 난사 사건을 크라이스트처치 테러의 모방 범죄로 보는 분석이 많다. 범인은 범행에 앞서 작성한 문서에서 “공격을 실시간 중계하면 사람들이 나를 응원할 것이라는 사실이 (나에게) 동기를 부여한다”며 “(라이브 스트리밍이) 보도를 늘리고 내 믿음을 전파할 것”이라고 했다.

자극적 영상의 시대, 급진 이슬람 무장 세력의 참형 동영상처럼 범죄자들은 범행 과시와 선전 효과 극대화를 위해 인터넷 생중계라는 손쉬운 수단을 선택하고 있다. 온라인상 정보 전파 과정을 연구하는 애틀랜틱 카운슬의 에머슨 브루킹 선임 연구원은 “테러리즘은 연극이며, 목적은 할 수 있는 한 가장 끔찍한 공격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라며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테러리스트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덜 정교하고 적은 수의 사람을 죽이더라도 수백만명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플랫폼 업체 대응 강화… “어쩔 수 없는 현상” 시각도

플랫폼 업체들도 할 말은 있다. 크라이스트처치(17분)나 할레 유대교 회당(35분) 사건과 달리 이번 버펄로 총기 난사 때 2분 만에 트위치 측이 영상을 중단한 점은 그동안 변화 노력에 성과가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WP가 트위치 측에 비결을 묻자 업체는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이 있다고만 답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앤절라 헤션 트위치 신뢰안전부문 부사장은 이번 조치에 대해 “라이브 콘텐츠 대응의 어려움을 고려하면 매우 좋은 진전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 롭초등학교 앞에서 지난 5월 31일(현지시간) 시민이 추모의 꽃을 들고 있다. 18세 범인은 범행에 앞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총을 쏘겠다고 사전 고지했다. 유밸디=AP연합뉴스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들은 최근 몇 년간 폭력적 콘텐츠와 동영상을 신속히 제거하는 데 진전을 이루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각 업체는 크라이스트처치 선언 이후 영상 내 폭력적 이미지를 자동으로 검출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해 신속히 영상을 삭제할 수 있게 됐다. 버펄로 총기 난사 중계가 조기에 중단된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IT업계 관계자는 NYT에 “2분 만에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며 “그마저도 너무 늦었다는 느낌이 든다면 정말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중계가 중단된 영상이라도 인터넷에서 살아남아 끊임없이 유포된다는 점이다. WP에 따르면 시청자 중 누군가가 버펄로 총기 난사 사건 영상을 공유하면서 사이트 한 곳에서만 조회수 400만을 넘겼다. 페이스북에서는 해당 영상이 담긴 링크가 10시간 이상 지워지지 않았다.

트위터도 영상 링크가 첨부된 게시물이 올라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트위터 측은 NYT가 해당 내용에 대해 질의하자 그제야 “테러와 관련된 모든 비디오를 제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범인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테러를 미리 알렸음에도 범행을 파악하거나 예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24일 21명이 희생된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18세 범인은 범행에 앞서 노인과 초등학생에게 총을 쏘겠다고 사전 고지했다.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는 이 메시지를 참사가 발생한 이후에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 측은 범인이 공개글이 아닌 일대일 개인 메시지로 범행에 대해 언급해서 알 수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관리 주체의 대응이 부실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크라이스트처치 테러 범인도 사전에 페이스북에 범행 계획과 실시간 중계를 예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이 사전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범죄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에벌린 두엑 컬럼비아대학교 선임 연구원은 NYT에 “(이런 범죄의 발생은) 필연적이자 예측 가능한 현실이며, 단지 언제 (범죄가 일어나느냐)의 문제일 뿐”이라면서 “(생방송에서) 폭력적인 콘텐츠를 제거하는 것은 댐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으려는 행동과도 같다”고 짚었다.

정치권에서도 플랫폼 업체에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는 브리핑에서 “법적 책임은 피할지라도 도덕적으로 (플랫폼들이) 범죄의 공범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모니터링에 대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며 “소셜미디어 경영진이 정보 확산을 막는 책임 있는 조치를 하고 있는지 내부 정책을 평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병훈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