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최근 국제무대 고전 속
허구연 총재 국대 문호개방 천명
MLB 데인 더닝·토미 에드먼 등
WBC에서 적극적으로 활용 가능
과거와 달리 빅리거 영입 긍정적
소속구단 허용·대표팀 적응 과제
일각선 영입선수 돌출 행동 우려
한국 야구는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에 이어 2008 베이징올림픽 9전 전승 우승, 그리고 2009 WBC 준우승까지 세계무대를 휩쓸었다. 그 흐름은 2015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우승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 한국 야구는 국제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WBC에서는 2013년에 이어 2017년까지 연거푸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도 졸전 끝에 4위에 그치고 말았다.
세계무대를 휘어잡았던 한국 야구가 조금씩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이유는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경쟁국들이 빠르게 성장한 것 등이 꼽힌다. 특히 몇몇 국가는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 우리처럼 ‘순혈주의’를 표방하기보다는 해외 거주 교포나 혼혈 선수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했다. 그래서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네덜란드, 이스라엘 등에 한국 야구가 고전하고 있다.

◆WBC에서 한국 야구대표팀 순혈주의 탈피하나
이런 가운데 3월 한국야구위원회(KBO) 수장에 취임한 허구연 총재는 2023 WBC에서 한국 야구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가대표 문호 개방을 천명했다. 우리도 이제 순혈주의를 버리고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계 선수를 적극적으로 대표팀으로 영입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WBC는 한국 야구가 순혈주의 타파에 나설 좋은 무대다. MLB 사무국이 주도해 2006년 만들어진 WBC는 2009년 2회 대회 이후 4년 간격으로 열리다 2021년 대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열리지 못했고, 내년 봄 5회 대회가 치러진다. WBC의 매력은 현역 메이저리거가 나서는 유일한 국제대회라는 점이다. MLB 사무국은 올림픽과 프리미어12에는 빅리거 출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WBC의 특징은 국적과 관계없이 혈통으로 대표팀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조부모 때까지 한 명이라도 직계가 있으면 그 국가의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 야구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가들이 주로 이를 적극 활용했다. 이로 인해 유대계 미국인이 이스라엘 대표팀으로 나서는 등 많은 이민자 출신 빅리거들이 유럽과 남미 국가대표로 나서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MLB 무대에 있는 한국 선수는 투수는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뿐이고 야수도 최지만(탬파베이 레이스),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둘에 불과하다. 중남미를 비롯해 유럽까지 빅리거가 대거 포진하게 되면 한국은 내년 WBC에서 또다시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할 수도 있다. 허구연 총재가 한국계 선수 대표팀 발탁을 거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가대표 발탁 가능한 한국계 빅리거들
그래서 당장 MLB에서 활약 중인 한국계 선수에 눈길이 쏠린다. 그중에서도 텍사스 레인저스의 우완 투수 데인 더닝(28)이 주목받고 있다. 주한미군이었던 아버지가 한국에서 어머니 정미수씨와 결혼하면서 더닝이 태어났다. 더닝은 2016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입단해 2020년 빅리그에 데뷔했고, 지난해 텍사스로 이적해 선발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더닝은 류현진, 김광현(SSG), 양현종(KIA) 등 좌완 투수들보다 오른손 선발투수가 적은 대표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양현종과 한솥밥을 먹었던 더닝은 “한국은 내게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한국 음식과 한국 문화를 매우 좋아한다”며 한국 대표팀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직접 밝히기도 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주전 2루수 토미 에드먼(27)도 잘 알려진 한국계다. 에드먼의 정식 이름은 토마스 ‘현수’ 에드먼으로 미들 네임에 한국명이 들어가 있을 정도다. 에드먼의 어머니 곽경아씨가 지어준 것이다. 야구선수였던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에드먼은 2019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공격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지만 스위치히터라는 장점이 있다. 2021년엔 뛰어난 수비로 2루수 골드글러브도 받았다. 여기에 외야수비도 가능한 유틸리티맨이기도 하다. 지난해 김광현과 한솥밥을 먹으며 공수 양면에서 도움을 줬기에 한국팬들에게도 친숙하다.
공격력에서 도움을 줄 만한 선수로는 콜로라도 로키스 1루수 코너 조(30)가 있다. 아버지 피터 조는 중국계 미국인, 어머니 미선 조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2020시즌을 앞두고 고환암 진단을 받아 수술대에 올랐지만 이를 극복하고 다시 복귀해 빅리그로 돌아왔다. 장타력을 가지고 있어 거포 자원이 부족한 한국 대표팀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불펜 투수 자원도 있다. LA 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미치 화이트(28)다. 외모가 비슷해 ‘박찬호 닮은꼴’로 한국팬들에게는 유명하다. 화이트는 한국인 외조부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 시속 98마일(157㎞)의 강속구를 뿌리는 화이트는 2020년 빅리그 데뷔전을 치른 뒤 “(돌아가신)할아버지가 보지 못했지만, 나를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빅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르내리고 있는 선수들도 있다. 한국인 어머니를 두고 한국 이름을 미들 네임으로 쓰고 있는 투수 라일리 ‘준영’ 오브라이언(27·시애틀 매리너스)과 서울에서 태어나 입양된 롬 레프스나이더(31·보스턴 레드삭스, 한국명 김정태) 등도 대표팀에 선발될 수 있는 후보들이다.

◆한국계 선수들 얼마나 합류할 수 있을까
과거에도 한국 대표팀 참여 의사를 드러낸 해외파들이 있었다. 롯데 배터리코치를 지낸 행크 콩거(한국명 최현) 코치가 대표적이다. 한국인 2세인 콩거 코치는 2016년 “WBC에 출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이뤄지진 않았다. 외할머니가 한국인인 투수 타이슨 로스(텍사스 레인저스)도 “한국에서 요청이 온다면 고려해보겠다”고 했으나 불발됐다. 당시에는 우리가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될 수 있으면 많은 빅리거 합류를 원하고 있다. 다만 걸림돌은 적지 않다. 일단 선수 본인의 한국 대표팀 참가 의지가 있어야 한다. 더닝처럼 의사를 표시한 선수도 있지만 다른 선수들의 경우에는 의사 확인이 우선이다.
또 다른 장애물은 소속구단의 대회 출전 허용 여부다. MLB 사무국이 빅리거의 WBC 출전을 허용한다고 해서 소속팀이 출전 허락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비시즌 기간 무리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소속 선수 출장을 막을 수도 있다. 이는 한국계 선수뿐 아니라 류현진 등에게도 해당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은 KBO가 적극적으로 해결해 가야 할 숙제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은 대표팀 내부에서도 이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또한 한국계 선수들이 돌출행동 등으로 대표팀 분위기를 흐리는 등의 부작용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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