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경쟁력 키워드는 ‘사회공헌’
공익재단 세워 사회적 책임 실천
좋은 노동조건 정착에 선도적 역할
우리 기준 ‘족벌’들, 높은 명성 누려

독일 100년 기업 이야기/요시모리 마사루/배원기 외 옮김/한국경제신문/3만원
선진공업국으로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발전의 역사를 지닌 독일과 일본. 1960년대 유럽에서 공부한 일본 학자가 독일의 대표적인 ‘가족기업’ 사례를 분석했다. 이 책에선 ‘가족기업’이라고는 하나 창업자나 그 승계자와 가족이 이사회 임원 선임 시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대기업, 또는 가족이 설립한 공익재단이 지배하는 대기업이다. BMW, 포르쉐, 크루프, 자이스, 보쉬, 베텔스만, 머크 등인데 우리 기준으로는 ‘족벌(族閥)’쯤 된다. 다른 나라에선 대체로 족벌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데 독일은 다르다. 키워드는 ‘사회공헌’이다. 비텐 가족기업연구소가 2010년 조사한 기업 평판 결과에 따르면, 가족기업의 평판이 비가족기업보다 오히려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적인 안목에 기초한 경영, 이에 따른 좋은 노동 조건과 고용 유지에 대한 책임감 등이 그 이유다.
이 책이 전하는 독일의 최근 노동 조건은 이렇다. 연간 24일의 유급휴가와 퇴직금은 없지만 최종월급의 75%가 지급되는 연금, 연말에 1개월분 급여로 나오는 연말수당, 중대한 부정행위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해고 등. 이런 지금의 노동조건이 자리 잡는 데는 19세기 대규모 가족기업이었던 크루프, 자이스, 보쉬 등 족벌이 선도적 역할을 했다. 그중 선도 사례를 만든 곳은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푸거 가문. 1512년 창업해서 신성로마제국 때 전성기를 누렸던 유서 깊은 부호 가문이다. 직물 생산업으로 시작해 도매무역상으로 업종을 성공적으로 전환한 후 대부업으로 사업을 확장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푸거의 유산은 빈곤자들을 위한 주택 ‘푸거라이’다. 독일 남부 아우크스부르크에 1516년부터 1523년 건축된 가장 오래된 빈곤자 주택이다. 현재도 150여명이 살고 있는 푸거라이 연간 임대료는 건축 당시나 지금이나 푼돈 수준의 상징적 임대료만 받는다. 입주 조건은 가난한 지역주민으로서 매일 세 번 기도할 것뿐이다.

자신은 검약한 생활을 했으나 대부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야코프 푸거는 ‘거부(巨富)’를 향한 사회 비판에 고민했다. 이런저런 대책을 찾던 푸거는 결국 정경유착에 쓴 돈에 비하면 푼돈 수준이었던 자금을 투입해서 푸거라이를 건설했다. 이후 푸거 가문의 자산은 부동산만 남기고 대부분 사라졌지만 푸거라이와 푸거 공익재단은 지금도 건재하다.
품질 좋은 철을 만들다가 최강의 대포까지 만들면서 독일을 유럽 군사 강국으로 키우고, 거부를 일군 크루프 가문 역시 독일 기업 사회 공헌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19∼20세기에 걸쳐 종업원 복리후생에서 보인 모범이 독일 재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크루프 특유의 경영 이념이 자리 잡은 건 2세대 경영자 알프레트 크루프 시절이다. 세계 최고 품질 철강을 생산해서 산업 생태계 정점에 올라서면서도 다른 무엇보다 종업원 복지를 제1의 가치로 추구한 것이 크루프 가문과 회사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질병과 사망 보험제도를 자체적으로 만들었고 노령연금도 도입했다. 종업원용 사택을 건설했으며 공장이 직영하는 제빵소 등 사원용 대형 점포를 선보인다. 사택단지가 커지면서 이를 위한 초등학교를 지어 지방자치단체에 기증하고 병원도 만들었다.

이후 인수합병을 거쳐 지금은 티센크루프가 된 이 유서 깊은 기업은 현재 공익재단이 지배한다. 창업자 프리드리히 크루프(1787∼1825) 이후 5세대 경영자인 알프리트 크루프가 1967년 설립한 크루프공익재단이다.
알프리트 크루프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범으로 처벌받고 재산 몰수를 당하는 위기를 겪었으나 ‘독일 부흥’이라는 미·소 냉전의 반사효과로 재기에 성공했다. 경영에 복귀한 알프리트 크루프는 첫 소집한 중역회의에서 기념비적인 선언을 한다. 설비투자 필요성을 강조하는 중역들에게 “종업원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기계다. 그것이 우리의 100년 전통”이라고 다짐했다. 알프리트 크루프는 죽기 석 달 전 공익재단 설립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발표하며 거듭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사회적 복지에 대한 의무는 크루프 가문의 전통이다. 이익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개인 소유권의 사명인 사회적 책임에서 결코 분리해서는 안 된다.” 그의 사후 모든 재산은 공익재단에 귀속된다. 외아들 아른트는 ‘크루프’라는 성도 사용하지 못하고 연간 200만마르크의 종신연금만 받게 된다. 저자는 단언한다. “독일의 가족기업은 사회적으로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으며, 가족기업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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