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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기후공시 의무화 압박… 유럽선 “배출한 만큼 돈 내라” [발등의 불 ‘탄소중립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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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16 08:00:00 수정 : 2022-05-16 08: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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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온실가스 감축이 경쟁력

상장기업 온실가스 배출량 상세 공개
美 증권거래위, 최근 새 규칙 초안 발표
기후 공시 국제회계기준도 연내 확정
국내 관련 규정·기준 없어 대응책 시급
본보, 18일 ‘세계에너지포럼’서 논의

탄소배출권 무상할당 탓 감축 잘 안 돼
EU, 배출량 차이만큼 탄소세 부과 추진
철강·전력·플라스틱 등 9개 품목 대상
‘무상할당’ 2029년 완전 폐지 논의 중
시행 땐 전력소비 세계 7위 韓 ‘직격탄’
결국, 문제는 ‘돈’이다. 그동안 우리가 온실가스를 이렇게 배출할 수 있었던 것도, 앞으로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결국 돈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난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6차 평가보고서 제3실무그룹 보고서에서 지금 이대로면 2100년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3.2도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1.5도는커녕 2도 목표 달성도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1.5도 달성을 위한 여러 정책 대안과 이를 뒷받침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를 중요하게 꼽았는데 바로 거버넌스와 ‘금융’이다.

 

세계일보는 글로벌 에너지·환경 및 금융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오는 18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글로벌 탄소중립 동향 및 산업계 대응방안’을 주제로 ‘2022 세계에너지포럼’을 개최한다. 국가·기업 경쟁력과 온실가스 감축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를 놓치면 다른 쪽도 놓칠 수밖에 없게 된 국내외 현실을 논의한다.

 

◆임박한 기후공시 의무화

 

지난 3월21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모든 상장기업이 기후변화 관련 정보를 반드시 공시하도록 하는 새로운 규칙 초안을 내놨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증권을 발행해 기업 활동을 하는 회사들은 기업 정보를 공시하게 돼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주요 정보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다트)에서 볼 수 있다. 업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사업보고서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 자산과 부채, 영업이익과 증권발행현황같은 ‘재무 정보’로 구성된다. 투자자가 투자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정보는 돈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관련 정보로는 온실가스와 에너지 사용량 정도가 ‘기타 참고사항’에 간단히 등장할 뿐이다.

 

SEC의 기후정보 공개 규칙은 그간 ‘비재무 정보’로 간주돼 온 기후 리스크를 여느 재무 정보와 마찬가지로 정기 보고서(사업보고서 등)에 상세히 밝히도록 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기업 재무에 직접 영향을 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됐다는 방증이다.

공개해야 하는 정보를 보면 기업의 사업장 울타리 안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스코프 1·2)뿐 아니라 기업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스코프3)까지 포함한다. 예컨대 A사가 전기를 쓰거나 공장을 가동하며 나오는 온실가스뿐 아니라 원료를 납품받을 때나 제품을 유통할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 정보까지 모두 제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홍수, 태풍처럼 일시적으로 발생한 극단적인 기상이변이나 해수면 상승, 물부족 심화 같은 점진적인 위험이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미칠 영향도 밝히도록 하고 있다. 분기 단위로 중대 변경 사항은 업데이트 해야 한다. 기후 관련 정책으로 증가하게 될 비용, 탄소 집약적인 제품의 수요가 줄어 발생할 매출 감소, 기업 명성에 미칠 영향까지도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이 같은 초안은 올해 말까지 확정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되면 기업 규모에 따라 2024년 제출 공시 즉, 2023년의 기후·환경 정보부터 순차적으로 기재될 전망이다. 미국에 상장한 국내 기업과 미국 상장기업과 거래하는 국내 기업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국내 기업도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펴 왔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데다 무엇을 어떻게 공개해야 하는지 정해진 기준이 없어 기업의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또 전자공시시스템이 아니라 기업 자체 홈페이지나 한국거래소 ESG포털에 올라와 투자자들의 의사 결정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SEC 초안은 ‘정기 보고서에 의무 공시할 것’과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협의체(TCFD) 프레임워크에 기반한다’는 게 핵심이다.

 

미국에서 기후정보 공시 초안이 발표된 지 열흘 뒤인 지난 3월31일에는 국제회계기준(IFRS) 산하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서 두 가지를 내놨다. 미 SEC와 마찬가지로 스코프 1∼3 배출량을 포함해 온실가스 다량 사업장을 폐쇄할 경우 직원의 일자리 문제와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 등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IFRS 측은 7월29일까지 전 세계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올해 말 최종 기준을 공표할 예정이다.

 

한국 회계기준은 IFRS를 따른다. 당연히 국내 기업이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감사를 받는 방식도 달라지게 된다. 국내 산업과 자본시장에 큰 영향이 예상되는 만큼 금융위원회와 한국회계기준원은 의견수렴을 하고 있다. ISSB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는 KSSB(Korea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 설립도 진행 중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현재 기업은 (국내에) 관련 법이 생기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미 전 세계적으로 지속가능 공시에 대한 요구가 보편화하는 상황을 글로벌 시장에서 맞닥뜨리고 있다”며 “우리 정책 당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배출한 만큼 돈 내라”

 

수십 년 전부터 기후변화 경고등이 켜졌지만 대책이 미진했던 건 우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에 제대로 비용이 책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이산화탄소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외부효과’(금전적 거래 없이 제3자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였다.

 

온실가스를 기업이 비용으로 느끼도록 나라별로 탄소세나 배출권거래제(ETS)라는 제도를 마련했지만, 한국 ETS는 배출권의 상당량을 기업에 ‘공짜로’ 나눠 준(무상할당) 탓에 실제 감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무늬뿐인 제도로 시늉만 내기가 어려워진다. 탄소에 비용을 물리는 제도가 국경을 넘어 나라 간 거래에도 적용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유럽연합(EU)으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 배출량이 EU 제품보다 많을 때 배출량 차이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EU집행위원회는 지난해 CBAM 초안을 발표했고, 지난해 말 EU의회가 수정안을 공개했다. 수정안은 초안보다 더 강화했다. CBAM 대상 업종에 철강,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전력에 더해 유기화학품, 플라스틱, 수소, 암모니아 4개 품목이 추가됐다. 집행위 안보다 1년 앞당겨 2025년부터 본격 도입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무상할당 기간도 크게 줄었다. EU도 한국처럼 탄소 배출이 많은 업종에 배출권을 무상할당해 왔는데 CBAM 실시와 맞물려 단계적으로 철폐하기로 했다. EU집행위 초안에서는 2026년부터 매년 10%씩 줄여 10년에 걸쳐 무상배출권을 없앤다는 계획이었는데, EU의회는 2025년부터 10%→20%→30%→40%씩 줄여 2029년 완전히 폐지한다고 밝혔다. CBAM이 확정되려면 아직 절차가 더 남았지만, 탄소 배출 산업이 많은 한국으로선 선제 대응이 시급하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발간한 ‘EU의회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수정안 평가와 시사점’에 따르면 집행위 초안 5개 품목의 2019∼2021년 연평균 수출 규모는 30억달러(약 3조9000억원)로 EU로의 총수출액 중 5.4%를 차지했다. 그런데 4개 품목이 추가되면서 해당 품목의 총 수출 규모는 연간 85.1억달러(약 11조원)로 늘어났다. CBAM의 대상 업종인 철강과 기초화학물질은 우리나라 산업 부문 배출량 1·2위를 차지하는 탄소 다배출 업종이다.

더구나 EU의회는 전력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간접 배출량까지 포함하도록 해 이대로 확정되면 화석연료 발전 비중이 높고 산업 부문 전력소비량이 높은 한국은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한국은 2020년 기준 전체 전력소비량 세계 7위이고, 전력 다소비 상위 10개국 가운데 연평균 증가 속도가 중국, 인도 다음으로 빠르다. 전력 1㎾h 생산당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442g으로 EU나 캐나다 등 선진국보다 2∼4배 많다.

 

또 내년부터 시행될 독일의 공급망실사법을 비롯해 다른 EU 회원국도 1∼2년 내 공급망실사 법률을 제·개정해 의무화할 전망이다. 공급망실사법은 EU기업과 거래하는 공급업체가 환경 파괴나 인권 침해 요인을 갖고 있지 않은지 확인하고 감독할 책임을 기업에 부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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