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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나라의 부강, 정치 리더십에 달려… 獨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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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12 15:59:13 수정 : 2022-05-12 15: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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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지도자들의 지독한 팀워크"
독일 ‘운명’ 결정한 아데나워의 선택
대화와 타협의 정치 뿌리 내리려면…
김황식 전 국무총리. 세계일보 자료사진

“사람한테 운이 있듯 나라도 운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서독, 그리고 독일은 확실히 운이 좋았습니다. 훌륭한 정치 지도자들을 계속 맞아들인 점이 그렇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에 ‘독일을 배우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김황식(73) 전 국무총리의 말이다. 올해 초 저서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제1권(21세기북스)을 펴낸 김 전 총리는 연말까지 제2권도 출간할 것이란 각오를 밝혔다. 이처럼 속도를 내는 이유는 단 하나, 대선을 거치며 분열과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진 한국 사회에 독일식 ‘대화’와 ‘타협’의 가치를 뿌리 내리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다.

 

◆"뛰어난 지도자들의 지독한 팀워크"

 

김 전 총리는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서울대 총동창회 주최로 열린 5월 조찬포럼에 참석해 ‘독일에서 배운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는 1970년대 판사 시절 독일에 유학했고, 총리(2010∼2013)를 그만둔 뒤에도 한동안 독일에 머물며 연구한 경력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 독일은 동서로 분단되고 그중 서독은 서방 3대 전승국(미국·영국·프랑스)의 분할 점령통치를 받았다. 김 전 총리는 1949년 서독 의회에서 기민당(CDU)의 콘라트 아데나워가 사민당(SPD)의 쿠르트 슈마허를 단 1표 차이로 누르고 초대 총리로 당선된 시점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풀어갔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지난 1965년 6월 12일 독일 본에서 콘라트 아데나워 전 독일 총리를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적으로 아데나워는 친서방 노선인 반면 슈마허는 동서 양대 진영 사이에서 중립을 취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서방과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선호하던 아데나워와 달리 슈마허는 사회주의 성향이 강했죠. 당시 아데나워 나이가 73세였습니다. 총리를 하기에는 너무 고령이란 우려도 많았으나 그가 아슬아슬하게 총리가 되었죠. 결과적으로 독일이 운이 좋았던 셈입니다.”

 

1949년부터 1963년까지 아데나워가 다스리는 동안 서독의 국력은 무섭게 성장했다. 그 14년 동안 경제장관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훗날 서독 2대 총리) 단 한 사람뿐이었다. 대통령 임기 5년간 장관이 서너 번 바뀌는 한국 현실에선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김 전 총리는 아데나워와 에르하르트를 가리켜 “둘 다 지독한 사람들이고, 정말 지독한 팀워크였다”고 평가했다.

 

◆독일 ‘운명’ 결정한 아데나워의 선택

 

김 전 총리에 따르면 아데나워의 진짜 위대한 점은 동서 냉전 속에서 서독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확고한 비전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는 “당시 소련(현 러시아)의 스탈린이 동서독에 ‘통일 후 중립국화(化)’ 방안을 제시했으나, 아데나워는 이를 단호히 거절한 뒤 서독만의 친서방 노선을 고수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데나워는 소련 제안을 받아들여 동서독이 통일 후 중립국이 되면 말만 중립이지 실은 지정학적으로 소련 영향권에 편입되고 말 것이란 점을 정확히 파악했다”며 “이 경우 독일은 오늘날처럼 세계를 선도하는 공업국가가 되기는커녕 농업국가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명한 지도자가 국가의 운명을 뒤바꿨다는 얘기다.

 

서독 총리는 아데나워, 에르하르트에 이어 쿠르트 키징어(3대), 빌리 브란트(4대), 헬무트 슈미트(5대), 헬무트 콜(6대)로 이어진다. 콜 집권 시기에 동서독 통일이 이뤄졌고 이후 게르하르트 슈뢰더(7대), 앙겔라 메르켈(8대)이 차례로 집권했다. 현 올라프 숄츠 총리 취임 전까지 70여년간 단 8명의 총리만 배출한 셈이다. 그만큼 정치가 안정됐다는 얘기인데 김 전 총리는 이를 독일 정치인의 유능함, 그리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 덕분으로 돌렸다.

 

“한 나라의 부강은 결국 정치 리더십에 달려 있습니다. 그 점에서 독일 역대 총리 8명은 모두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습니다. 또 독일은 권력이 철저히 분산돼 있고, 대화와 타협에 의해 좌우됩니다. 다당제와 비례대표제 때문에 어느 한 정당이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대화와 타협에 기반한 연립정부가 출현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올해 초 펴낸 책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제1권 표지. 독일(서독)의 1∼4대 총리를 다룬 1권에 이어 나머지 5∼8대 총리를 소개한 2권이 연말까지 출간될 예정이다. 출판사 제공

◆대화와 타협의 정치 뿌리 내리려면…

 

김 전 총리의 책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제1권은 아데나워부터 브란트까지 4명의 총리를 다룬다. 연말까지 출간될 제2권이 슈미트부터 메르켈까지 나머지 4명을 소개할 예정이다. 김 전 총리는 “8명을 종합해 한꺼번에 펴낼 수도 있었지만 ‘대선 전에 책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4명만 먼저 서둘러 출간했다”고 설명했다.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로 꼽힌 지난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현 대통령 진영은 물론 이재명 후보 캠프를 향해서도 나란히 대화와 타협의 가치를 설파하고 싶었던 국가 원로의 충정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언제부턴가 국내에서 ‘독일 전문가’ 이미지가 굳어진 김 전 총리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기원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1978년 당시 주독 한국대사관 주선으로 판사 3명을 선발해 서독으로 1년 6개월가량 유학을 보내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는데 제법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신이 선발됐다는 것이다.

 

“그때 독일 유학생으로 뽑힌 법관 3명이 저와 황우여 전 교육부총리, 그리고 손지열 전 대법관 겸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당시 주독 대사님의 면접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선발된 3명 중에서 나중에 총리(김황식), 부총리(황우여), 그리고 대법관 겸 선관위원장(손지열)까지 나왔으니 면접을 담당한 그 대사님 눈썰미도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웃음).”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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