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 판매대는 썰렁…카운터에도 달랑 6통만
고가품 처럼 ‘상품카드’ 제시해야 실물 교환
“한번에 3통 제한…온라인 주문도 1주 걸려”

“재고가 많이 없어서 분유를 카운터로 옮겨 놓고 팔고 있습니다.”
분유 대란이 발생한 미국의 워싱턴 북서쪽 M스트리트에 있는 대형 약국체인 CVS 카운터의 계산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 9일(현지시간) 찾은 CVS의 분유 판매대에 분유는 없었다. 대신에 각 브랜드의 이름과 사진, 가격이 적힌 ‘상품 카드’ 17종이 진열돼 있다. 대형 마트에서 태블릿 PC 등 비싼 물건을 팔 때처럼 상품 실물 대신 상품 카드를 계산대에 가지고 가서 값을 치르고 물건을 받는 방식이다. 분유가 고가품 대접을 받는 것이다. 그나마도 노란색 팻말엔 ‘고객 한 명당 3개까지만 살 수 있다’는 글이 선명했다.
카운터에도 정작 준비된 분유는 6통이 전부다. 계산원은 “분유 판매를 관리하기 위해 카운터로 분유를 옮겼지만 상황이 이렇다”고 혀를 찼다.
한 블록 옆에 있는 또 다른 약국 체인월그린스도 상황은 마찬가지. 분유 판매대에는 1인당 3개씩만 분유를 판매한다고 적혀 있지만, 준비된 분유는 5개도 안 됐다. 매장 직원은 “1∼2달 전쯤부터 판매 개수 제한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며 “계속 물건이 없다”고 미안해했다.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알링턴시의 대형유통체인 타깃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가로 10m 높이 2m 정도의 분유 진열대 전체가 거의 텅 비어 있다시피 했다. 줄지어 늘어선 안내문에는 “업계 전체적인 분유 부족으로 일부 분유는 생산되지 않고 있다”고 적혔다. 매장 직원에게 창고에 재고 없느냐고 묻자 “보이는 물건이 전부”라면서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해 주문하면 1주일 뒤에는 분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글로벌 공급난과 분유 업체 애보트의 리콜 사태로 세계 초강대국 미국에서 벌어진 분유대란이 점입가경이다. 미국 50개 주(州) 중 절반 이상이 분유 구매에 애를 먹고 있다. 분유 품절 비율이 40% 이상인 곳은 코네티컷, 델라웨어, 몬태나, 뉴저지, 로드아일랜드, 텍사스, 워싱턴 7개 주이고, 30~40%인 곳은 20개주에 달한다.
분유 대란은 글로벌 공급난이 심화하는 속에서 대형 분유 업체의 제품 리콜 사태가 터지면서 본격화했다. 지난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조사에서 분유 제조사 애보트의 분유를 먹은 뒤 세균 감염으로 영유아 2명이 사망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애보트의 3개 브랜드(시밀락·앨리멘텀·엘러케어)가 리콜 대상으로 지정됐다.
미국 유통업체들은 분유대란에 고객당 구매량을 제한하고 나섰다. CVS와 또 다른 약국체인 월그린은 온·오프라인에서 한 번에 3통 이상 구매하지 못하게 했고, 타깃은 온라인 구매 시 한 번에 최대 4통만 살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조치에도 분유가 동나자 부모들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제품 입고 소식을 공유하는 부모들 모임도 생겨났다. “애리조나주에서 시밀락 분유를 찾는다. 제발 도와달라”는 긴급한 글도 올라온다.
미국의 저소득층 여성과 영유아를 지원하는 단체인 전미여성영아어린이(IWC)협회 브라이언 디트마이어 공공정책 책임자는 “우리는 매일 화나고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부모들의 소식을 듣는다”며 “심지어는 아이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소식도 들려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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