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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미·중관계사] 미국의 중국 환상을 부추긴 ‘타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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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08 23:16:10 수정 : 2022-05-08 23: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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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일본의 중국 침략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베이징과 상하이가 그해 여름 함락됐다. 12월에 일본군은 난징(南京)까지 거침없이 진격했다. 그리고 이른바 ‘난징 대학살’이 벌어졌다. 중국의 민주화를 염원한 미국은 목전에서 이런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일본을 저지하지 않았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입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는 미국 여론이었다. 이런 여론의 대표적 인물은 헨리 루스와 펄 벅이었다. 루스는 1923년 ‘타임’지를 창간했다. 벅은 소설 ‘대지’로 1932년 퓰리처상과 1938년 노벨문학상을 타면서 당시 미국 내 최고 권위의 ‘중국통’으로 급부상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중국의 참혹한 현실에 한쪽 눈을 감는 대신 다른 한쪽 눈으로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에게 중국에 대한 희망을 끊임없이 불어넣었다. 어찌 보면 중국의 현실을 왜곡하고 호도한 공통된 과오를 과하게 범한 것이다.

중국 장제스 부부를 ‘올해의 부부’로 선정한 1937년 타임지 표지. 출처:타임

가령, 타임지는 난징 대학살의 진상을 외면하려 했다. 잡지는 대신 국민당 정부 장제스 총통과 쑹메이링 영부인 및 그 가족들의 중국 민주화를 위한 개혁 노력을 치하하는 보도에 집중했다. 타임지의 공신력 원천에는 루스의 중국 성장 배경이 있었다. 1898년 상하이에서 출생해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고등교육을 마치고 1932년 다시 중국에 돌아왔다. 대공황 속에서도 미국인 60만명은 그의 잡지를 구독했다.

타임지의 전략은 미국인이 듣고 싶어 하는 소식만 전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민주주의와 기독교 확산 소식으로 도배한 이유다. 장제스 총통의 세례 소식과 영부인 가족의 중국 민주화를 위한 헌신적 노력도 연일 대서특필되었다. 20만명 이상의 무고한 중국인이 난징에서 참혹하게 학살될 때 타임지는 장 총통과 영부인을 ‘올해의 부부’로 선정했다. 잡지가 중국 보도에 얼마나 편파적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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