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팩 수십개 이름표 달고 검사 대기
잔존용량·수명 등 측정 거쳐 등급 분류
기준 미달땐 분해… 니켈 등 금속 재활용
전기차 시장 성장에 폐배터리 발생 급증
전남엔 리사이클링 산업화 센터 구축중
기업들도 금속 추출 등 기술 개발 총력전

“폐배터리 제2의 인생.”
지난 4일 제주의 제주테크노파크에 들어서자 눈에 띈 폐배터리로 만든 ESS(에너지저장시스템)에 적힌 문구다. 제주는 전기차 보급률이 국내에서 가장 높은 도시인 만큼 폐배터리 처리와 활용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달아오르는 가운데 2019년 이곳에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는 전기차 폐배터리를 수거해 평가하고 재자원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작은 단위까지 분리해 성능평가
센터 내부에는 전기차에서 분리된 상태의 배터리팩 수십개가 차량 모델 이름표를 달고 대형 선반 위에 차곡차곡 쌓인 채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고 차량에서 막 분리돼 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는 배터리팩도 눈에 띄었다. 폐배터리에는 남은 전류가 흐르고 있어 ‘감전 위험’이라는 경고 문구도 곳곳에 붙어 있었다.
연구원들은 이들 배터리팩을 분해해 잔존용량(SOC), 잔존수명(SOH), 출력수명(SOP) 등의 성능 측정과 안전검사를 거쳐 등급을 분류한다. 여기서 우수한 등급을 받은 배터리팩은 신재생에너지 연계 ESS나 양식장 UPS(무정전 전원장치) 등 중대형 에너지 저장장치로 재사용된다.
이 외의 등급을 받은 배터리팩은 더 작은 단위인 모듈 여러 개로 분해돼 모듈검사실에서 잔존가치 평가와 등급 분류를 받는다. 모듈 단위에서 우수 등급을 받으면 가정용 ESS와 전기자전거, 전동휠체어, 농기계 등으로 재사용될 수 있다. 성능이 일정 기준에 미달한 배터리라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런 배터리들은 분해돼 코발트, 니켈, 리튬 등 금속으로 재활용된다.


센터는 이처럼 사용 후 배터리의 수거와 수거된 배터리 성능을 측정하기 위한 각종 검사, 등급 분류, 상태별 활용 분야 발굴에 이르기까지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 전주기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대기환경보존법에 따라 2020년 12월까지 보조금이 지급된 차량의 배터리는 환경부 장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배터리를 반납해야 한다.
지금까지 센터에 회수된 전기차 배터리는 약 250개다. 이들 배터리를 이용한 전기차 충전스테이션 연계형 제품, 가로등 연계형 제품, 농업용 운반차 등 8건이 개발돼 실증 운영되고 있다.
이동훈 제주테크노파크 에너지융합센터 활용기술개발팀장은 “공공 회수 대상의 배터리 외에 향후 민간시장에서 활용되는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의 시험평가도 가능하도록 시설을 갖출 예정”이라며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를 활용한 기술지원, 제품개발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내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 핵심 기업 발굴, 육성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커지는 전기차 폐배터리 시장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만큼 사용 후 배터리 분야도 떠오르는 미래 시장으로 꼽힌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폐배터리는 지난해 440개에서 2025년 8321개, 2029년 7만8981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는 오는 2030년 제주에서만 폐배터리가 2만개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수명은 통상적으로 10년가량이다. 2011년부터 환경부가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이후 전기차 보급이 본격화됐기에 폐배터리 배출이 앞으로 본격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자동차용으로 수명을 다했더라도 70∼80% 효율을 유지하고 있을 경우 5∼10년까지 재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새 제품에 비해 가격은 30∼50% 정도 저렴한 데다가 중금속 발생 등의 환경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기준조차 없었던 폐배터리 성능평가 마련과 활용 제품 개발 노력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공공 부문에서는 제주의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 외에도 전남에서는 전기차와 ESS 사용 후 배터리 리사이클링 산업화 센터를 구축 중이다. 또한 경북 포항에서는 사용 후 배터리 종합관리 인프라를, 울산에서는 리튬이차전지 종합지원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기업에서도 폐배터리를 다른 제품으로 재사용하거나 금속으로 추출하는 재활용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폐배터리를 재사용해 만든 전기차용 충전 ESS 시스템을 오창공장에 설치하고 테스트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다. SK온은 한국산업기술시험원과 사용 후 배터리 성능을 검사하는 방법과 체계를 구축하고 있고, 삼성SDI는 폐배터리 재활용 전문기업 피엠그로우에 지분투자를 하는 등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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