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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모자는 왜 80년 넘은 단독주택을 팔지 않았을까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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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4-26 06:00:00 수정 : 2022-04-26 07: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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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숨진 지 한 달 만에 발견된 서울 종로구 창신동 목조 주택

1930년대에 지어진 허름한 목조 주택 한 채를 가졌다는 이유로 기초생계급여 대상이 되지 못한 채 생활고로 숨진 서울 종로구 창신동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2년 전 부동산 매매계약서까지 작성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이들이 생계를 위해 집을 내놨다가 팔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돌연 매매를 포기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생계 위해 집 매매하려다 돌연 포기

 

25일 모자의 단독주택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송모(63)씨는 기자에게 “2년 전 아들(이모씨)이 집을 팔겠다며 찾아왔다”고 말했다. 세계일보가 입수한 모자의 단독주택 매매 계약서에 따르면, 노모 한모(82)씨 명의로 된 해당 주택은 2020년 2월12일 2억5000만원에 계약될 예정이었다. 

 

송씨는 “당시 이씨에게 ‘저 집을 보유했다는 이유로 지자체에서 도움도 못 받으니 집을 팔고,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요양원에 모셔라. 너는 저 집에서 전세 1억원에 살아라. 이사할 다른 집을 찾으면 아무 때나 조건 없이 전세금을 돌려주겠다’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맡겨놓은 인감도장을 찾으러 영등포 이모 집에 다녀온 이씨가 돌연 “개포동 15평 주공아파트는 15억∼17억이라는데, 우리 땅은 21평이니 10억 이상 주지 않으면 안 팔겠다”며 마음을 바꿨다는 것이다. 송씨는 “매수인한테 10억으로 올려달라고는 못하겠어서 ‘매도인 생각이 바뀌어서 못 팔게 됐다’고 둘러댔다”고 설명했다.

 

송씨에 따르면 당시 2억5000만원 수준이던 해당 단독주택은 재개발 기대감으로 현재 4억5000만∼5억원까지 뛰었다. 그는 “지금 살아 있다면 이득을 봤겠지만, 이렇게 됐으니... 차라리 그때 집을 팔았다면 잘 먹고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그들의 죽음을 보니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고 말끝을 흐렸다. 

 

모자가 살던 주택 대문에 6개월 동안 전기요금 26만여원이 체납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유일한 자산 처분에 대한 압박 컸을 것”

 

이씨가 부동산 거래를 망설인 것을 단순히 더 비싸게 팔려는 욕심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등기부 등본 확인 결과, 이들은 1982년부터 40년 동안 이 집에서 살았다. 지어진 지 80년이 넘어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목조 주택이지만, 심근경색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노모와 지병으로 일할 수 없는 아들에겐 유일한 삶의 터전이자 평생 의지해야 할 자산이었다. 

 

6개월간 전기요금 26만원이 연체되고, 생필품조차 외상으로 사야 할 만큼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이들은 기초생계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 당시 이들 소유 주택의 공시지가가 1억7000만원이었기 때문이다. 기초생계급여 지급 기준인 월 소득인정액으로 환산하면 316만원, 2인 가구 기준인 97만원의 3배가 넘었다.

 

두 사람 모두 지병으로 병원비와 약값, 생활비가 지속적으로 들어가는데 직업을 가질 수도, 생계비 지원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더 받고 팔수 있다’는 주변 조언 등에 모자는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집 한 채 말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니, 집을 통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약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40년을 살았으니 주택 매매를 경험한 지 너무 오래된 상황이라 정보도 부족했을 것이고, 살아온 집을 떠나야 하는 불안감도 있었을 것”이라며 “집을 투자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4년 생활고로 숨진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송파 세 모녀법’이 만들어져 생계 지원 기준이 완화됐지만, 이 모자는 끝내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20일 숨진 창신동 모자를 발견한 건 수도검침원이었다. 수도·전기요금이 90만원 넘게 청구된 것을 보고 누수가 의심돼 현장을 방문한 수도검침원이 시신을 발견한 것이다. 경찰은 이들이 한 달 전쯤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글·사진=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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