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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육강식이 판치는 세상… 약자의 폭력은 정당한가

입력 : 2022-03-31 20:05:58 수정 : 2022-03-31 20: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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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드라마로 돌아온 ‘돼지의 왕’

연상호 감독 원작 장편 애니메이션
성인 된 학교폭력 가해자 모습 담아
탁재영 작가 극본 12부작으로 확장

“피해자·가해자 얽히는 상황 치달아
‘복수의 정당성’ 도덕적 딜레마 그려”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 초청을 받았던 ‘돼지의 왕’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티빙 제공

연상호 감독이 만드는 세계, ‘연니버스’에는 늘 죽음이 가까이 있다. 죽음의 길목에 선 인물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부산행’에서는 살기 위해 누군가의 삶을 내던졌고, ‘지옥’은 죽음을 이용해 다른 이 삶을 흔들었다. 좀비와 사자 같은 재앙이 어떻게, 왜 다가왔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애초 재앙은 사회 민낯을 드러낼 장치일 뿐이다. 11년 전 연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역시 학교폭력을 그려내지만 근원에는 계급사회에 대한 서늘한 시선이 자리 잡고 있다.

적나라한 현실 묘사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 초청을 받았던 ‘돼지의 왕’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기초 작업에 원작자인 연 감독이 참여했고, 극본은 탁재영 작가가 집필했다. 96분짜리 원작을 12부작 드라마로 확장하면서 원작의 학교폭력 서사에 스릴러를 더했다. 이야기 몸집은 커졌지만 원작 메시지는 고스란히 가져갔다.

“‘돼지의 왕’은 단순히 학교폭력만을 다루는 작품은 아닙니다. 폭력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다루죠. 세상은 왜 강자와 약자로 나눠지고, 서열화됐으며 폭력이 존재하는가를 다룹니다. 학폭은 그 주제를 다루기 위해 사용한 소재예요.”(탁 작가)

“이성과 감성이 동일한 메시지를 가지고 작동하는 게 좋은 작품입니다. ‘돼지의 왕’은 학폭에 대한 감정적 분노, 계급주의 문제에 대한 이성적 접근 둘 모두를 보여줍니다.”(연 감독)

먹이사슬 맨 위에 있는 ‘사냥개‘와 이들의 먹잇감인 ‘돼지’. 서열에서 벗어나기 위한 돼지의 몸부림은 소용이 없다. 돼지의 왕조차 결국 돼지에 불과하다. 지난달 18일을 시작으로 4화까지 공개된 ‘돼지의 왕’에는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황경민(김동욱 분)이 성인이 돼 연쇄살인을 벌이고,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정종석(김성규 분)이 형사로서 사건 전말을 쫓는 이야기가 담겼다. 아직 ‘돼지의 왕’인 철이는 등장하지 않았다.

탁재영 작가(왼쪽)와 연상호 감독. 티빙 제공

탁 작가에게 드라마 각본 집필을 먼저 제안했다는 연 감독은 “원작을 그대로 드라마로 가져가기에는 내용이 많이 부족했다. 탁 작가와 스릴러 연쇄살인 구성으로 가자고 얘기했고, 탁 작가가 그 구성을 재밌게 만들어줬다”고 했다. 이어 “원작에는 성인이 된 학교 폭력 가해자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데,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드라마는 그에 대한 답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연 감독은 드라마 기본 설정 및 2회까지 대본을 같이 쓰고 이후 스토리엔 관여하지 않았다.

원작처럼 드라마 역시 폭력을 묘사하는 수위가 매우 높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기는 하지만, 잔혹한 복수로 카타르시스를 주는 이야기가 불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탁 작가는 최근 가진 라운드 인터뷰에서 “끔찍한 사건을 겪은 인물들이 트라우마로 인해 현재 하는 행동을 시청자들이 납득하려면 과거 사건을 현실감 있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면서도 복수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탁 작가 말처럼 이 작품은 ‘폭력에 대한 폭력이 정당한가’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를 그린다. “드라마 초반부 가해자에 대한 복수가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느끼게 했다면 중후반으로 갈수록 주인공은 복수의 정당성에 대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며 “시청자도 배신감을 느끼면서 자신이 느꼈던 카타르시스가 잘못됐는지 스스로 고민하고,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 감독 역시 “‘돼지의 왕’은 카타르시스를 통한 대리만족을 목적으로 만든 작품은 아니다. 그런 카타르시스가 정당한가, 피해와 가해를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가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라며 “극이 진행될수록 피해와 가해가 얽히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작이 오래전 나온 만큼 드라마 속 세부 설정은 상당히 바뀌었지만 폭력이 주는 잔혹함과 피폐함은 그대로다. “사회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어떤 의지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의지가 있는지 개인적으론 잘 못 느끼고 있습니다. 11년 전 ‘돼지의 왕’이 보여준 디스토피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폭력은 예전보다 오히려 더 고도화되고 복잡해진 거 아닐까 싶습니다.”(연 감독)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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