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니 엄마가 아파도 이럴 거냐?” “우리 엄만 안 그래!”
종욱(김영민 분)도 몰랐다. 아니, 누군들 알았을까. 내 부모가 이토록 걱정스러운 존재가 될 줄은…. 그 어려운 시대를 다 헤쳐냈건만 세월에 속절없이 무너진 부모를 결국 마주하고 말았다.
종욱은 부단히도 애를 썼다. 퍽퍽한 현실에도 늘 엄마가 먼저다. 마이너스 통장을 끌어다 요양보호사를 데려다 놓고, 입맛 돌게 하는 짭조름한 반찬들도 냉장고에 채워놨다. 혹여 무슨 일이 있을까 CCTV까지 달아놓고 수시로 살폈다.
엄마 말임(김영옥 분)도 안간힘을 썼다. 팔도, 머리도 성한 곳이 없지만 “내 인생은 내가 산다”며 억척같은 모습이다. 종욱이 그저 처자식에게나 잘하며 탈 없이 지내길 바랄 뿐이다. 요양보호사를 미심쩍어하면서도 말임은 끝까지 자식에게 짐 지우지 않으려 한다.
13일 개봉하는 ‘말임씨를 부탁해’(사진)는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영화다. 그저 자식 걱정뿐인 노모와 속마음과는 달리 늘 서툴기만 한 아들. 전형적인 인물들이 그려내는 전형적인 이야기다. 이건 그저 우리네 인생이 이다지도 뻔한 탓이다.
영화는 한국 사회의 쓸쓸한 단면을 고증한다. 서로의 짐이 된 부모와 자식.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의 노인 부양 문제와 이를 둘러싼 가족 공동체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말임과 종욱을 연결하는 인물은 요양보호사 미선(박정연 분)이다. “긴병에 효자 없습니다.” 미선의 대사는 말임을 향하고 있지만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 역시 투병 중인 모친을 홀로 부양하기 위해 다른 이 부양을 대리하는 상황이다. 말임과 미선은 갈등 속에서도 아픔을 보듬고 외로움을 채워주며 서로를 의지해간다.
가족의 모습을 그린 작품답게 ‘밥’은 영화를 관통한다. 말임과 미선이 함께 밥을 먹는 모습이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정작 아들 종욱은 말임의 집에서조차 홀로 밥을 먹는다. 영화의 시작과 끝도 밥이다. 감독은 그중에서도 흔한 클리셰인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를 택했다. 다만 마지막에 등장하는 찌개는 종욱이 아닌 미선을 향한다. 영화 내내 무거웠던 가족이란 존재가 마지막이 돼서야 산뜻하고 푸근해진다. 가족이 별거냐, 식구(食口), 같이 먹고 사는 사이지.
‘말임씨를 부탁해’가 가진 힘은 ‘공감’에 있다. 특히 65년 연기 인생 첫 주연이자 스크린 현역 최고령 주연 배우가 된 김영옥은 다소 단순한 서사에 온기를 꽉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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