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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성희롱 대응법 담았다는데… 선수들 “매뉴얼 있나요?”

입력 : 2022-03-15 20:00:00 수정 : 2022-03-15 18: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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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제정 스포츠인권 헌장·가이드라인 실효성 논란

2명 중 1명 이상 존재 여부 몰라
학교운동부 지도자도 고개 저어
선수 절반 “성폭력 피해 발생 여전”
연구진 “종목·지역 등 특성 맞춰
가이드라인 정비 후 적용시켜야”

“솔직히 스포츠인권 헌장·가이드라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폭력·성폭력 말고 어떤 걸 조심하고 어떤 것이 인권 침해가 되는 건지 잘 모르겠는 게 사실이고, 이걸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다.”(학교운동부 지도자 A씨)

“법률이 개정돼 처벌이 강화되고 교육만 들으라고 하지, 실질적으로 종목단체 입장에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부적인 절차나 진행사항 등을 세세하게 알려주고, 인원이나 예산도 내려 줬으면 좋겠다.”(종목단체 관계자 B씨)

이는 지난해 부경대 산학협력단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진행한 심층면접 조사에서 체육계 관계자들이 스포츠인권 헌장·가이드라인에 대한 인식과 현장 활용 여부에 대해 밝힌 의견이다. 이들은 10여년 전 채택된 현행 스포츠인권 헌장·가이드라인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현장 적용이 용이한 구체적 지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권위가 2010년 제정한 스포츠인권 헌장·가이드라인은 스포츠 활동에서 누려야 할 인권과 함께 정부기관과 체육 조직·선수·지도자, 학부모가 숙지해야 할 인권 침해 대응·예방 기준을 담고 있다.

실제 신체폭력·성폭력 등 피해에 자주 노출되는 운동선수들의 경우 인권 침해 발생 시 그 대응을 위한 매뉴얼이나 절차를 알고 있는 경우가 4명 중 1명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인권위의 연구용역 보고서 ‘스포츠인권 헌장·가이드라인 정비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8∼25일 운동선수 908명 대상으로 ‘관련 소속 조직, 기관의 성희롱(폭력) 사항 발생 시 대응 매뉴얼 및 절차 등이 존재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문항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긍정적인 답변이 25%(‘매우 그렇다’ 15%·‘그렇다’ 10%)에 그쳤다. 반면 매뉴얼·절차 존재를 모른다는 답변은 54%(‘매우 그렇지 않다’ 28%·‘그렇지 않다’ 26%)나 됐다.

신체폭력 대응 매뉴얼·절차에 대한 인지도 역시 비슷했다. ‘폭행 사항 발생 시 대응 매뉴얼 및 절차 등이 존재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문항에 대한 긍정 답변은 25%(‘매우 그렇다’ 13%·‘그렇다’ 12%), 부정 답변은 51%(‘매우 그렇지 않다’ 22%·‘그렇지 않다’ 29%)였다.

연구진은 이 결과에 대해 “스포츠인권 헌장·가이드라인에 따른 체육단체 내부의 행동규범이 지침, 가이드라인 등으로 제대로 마련돼 있는지에 대한 체육계 관계자의 인식 정도나 활용도가 다소 낮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선수 인권 침해는 여전히 개선되지 못한 채 빈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에서 응답자로 참여한 운동선수 절반 가까이가 현재도 성희롱·성폭력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운동을 하면서 성희롱 및 성폭력 피해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는 문항에 대해 동의한 답변 비율이 45%(‘매우 그렇다’ 26%·‘그렇다’ 19%)나 됐다.

실제 본인이나 동료가 신체폭력이나 성폭력을 겪은 적 있다는 운동선수도 10명 중 6명 가까이 됐다. ‘본인이나 동료들이 폭행, 성희롱, 성폭력을 경험한 적 있다’는 문항에 대해서 57%가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다. ‘운동하면서 맞은 적 있다’는 문항에 대해서도 비슷한 수준인 58%가 ‘(맞은 적) 있다’고 답했다. ‘누군가 내게 경기 출전을 조건으로 성관계를 요구한 적 있다’는 문항에 대해서는 약 1% 수준인 7명이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신체폭력·성폭력이 빈번한 상황에서 대응 매뉴얼·절차 미비는 사건 이후 피해 복구나 가해자 처벌 등을 어렵게 하는 데서 나아가 2차 피해를 야기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인권위가 기존 스포츠인권 헌장·가이드라인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개별 체육단체와 협업해 종목이나 지역 등 특성에 맞춰 별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그 적용을 유도하는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연구진은 이와 관련해 “체육단체 경영·성과평가에 인권 증진 부문을 포함해 가이드라인의 현장 적용 등에 대한 이행·점검 사항 등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며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른 직장운동경기부·프로스포츠 표준계약서 도입과 함께 거기에 헌장·가이드라인 준수 의무를 명시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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