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할 때 쓰는 말이 바로 ‘기우(杞憂)’이다. ‘노파심’이 그렇듯이 대개 하나 마나 한 걱정을 늘어놓을 때 상대의 입을 막느라 쓰는 말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꼭 해야 하는 걱정인데도 아무도 하지 않을 때 조심스럽게 꺼내는 일도 없지 않다. “제가 의문을 갖는 게 기우처럼 들리겠지만 한 번만 다시 검토해주십시오” 하는 식으로 말이다.
‘기우’는 말 그대로 ‘기’나라의 걱정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작은 나라인 기나라에는 유난히 근심걱정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심지어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을 걱정한 사람이 있었다. 얼마나 심했던지 식음을 전폐하고 잠을 못 잘 정도였다니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이 걱정하는 게 걱정이었다. 그래서 이웃 사람 하나가 그를 찾아가서 하늘은 기운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이므로 무너지지 않고, 땅은 사방의 흙덩이가 가득 차 있는 것이니 꺼지지 않는다고 일러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비로소 걱정을 그치고 꿈에서라도 깬 것처럼 기뻐하며 생기가 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기우가 쓸데없는 걱정만은 아니다. 멀쩡하던 땅에 싱크홀이 생기는가 하면,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져서 비린내가 진동하더라는 해외 토픽까지 심심찮게 등장한다. 옛날이라고 그런 일이 없었을까 싶긴 하지만, 이런 일은 확실히 요사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물론, 인간의 힘이 닿지 않는 대자연에서도 싱크홀이 생겨왔으며, 회오리바람이 하천을 훑고 간 후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지는 일은 옛 기록에도 나온다. 문제는 그러한 자연적인 수준과 범위를 넘어갈 때이다. 도시에서 지하수를 너무 많이 퍼 쓰거나 물길을 인위적으로 변화시켜 생기는 싱크홀과 지구온난화로 인해 돌변한 기후 탓에 심해진 토네이도 같은 경우 말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까맣게 잊을 때, 쓸데없는 걱정을 진지하게 해야 되는 일이 생기는 것 같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하늘의 관대함을 믿어온 편이었다. 이내 얼어죽을 듯한 추위도 없고, 온 땅을 태워버릴 듯한 사막의 날씨도 없으며, 몇 달씩 지루하게 엇갈리는 우기와 건기도 없어 그저 편안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마구잡이로 자연을 약탈하며 살다가는 하늘의 관대함도 언제 바닥을 드러낼지 모를 일이다. 어디선가 드라마 대사가 들려오는 듯하다. “제발 그만해. 이러다가 우리 다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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