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수온 1∼2도 올라 ‘화들짝’
이파리 가장자리 녹아 죽어요
전복은 먹이 없어 사라질 수도…
해초 줄어 소라 잘 잡혀 고갈 우려
아열대 어종에 화려해진 바닷속
20년 전 가끔 잡히던 어종
올해까지 누적 83종 달해
토종 떠나고 열대어종 늘어
어부들 먼바다로 간대요

올해 제주에서 감태가 사라졌다. 제주 어민들은 처음 목격하는 일이다. 예년 같으면 8∼9월 잦은 태풍으로 풍랑이 조금 거센 날이면 1m도 넘는 감태가 해변까지 밀려왔다. 어민들은 감태가 사라진 이유로 수온 상승을 꼽았다. 지난 8월 제주바다 수온은 28도 내외로 평년보다 1∼2도 높았다.
세계일보는 바닷속에서 벌어지는 기후변화 단면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16일 제주도를 찾았다. 제주도에서 30년째 어업 활동을 하는 송철(48) 선장은 “기존 제주바다는 남해안으로 올라가고 여긴 아열대 바다가 됐다”면서 “옛날에 많이 잡히던 고기는 잘 안 보이고 어획량도 줄었다”고 전했다.
◆“‘이건 무슨 생선이냐’도 20년 된 이야기”
부모를 따라 어부가 된 송 선장이 ‘아열대 현상’을 처음 접한 기억은 15∼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0년간 이 일을 하면서 (아열대화)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 때는 90년대 말쯤”이라고 말문을 뗀 송 선장은 “전에 보지 못한, 무늬가 선명하고 색깔이 화려한 생선을 처음 잡았을 때 (어종이) 너무 생소하고 의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십년을 바다에서 작업하신 어머니, 아버지께서도 생전 못 보던 고기가 잡혀 놀라워했다”고 기억했다.
아열대 어종이란 대만, 동중국해 이남, 일본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서식하는 어종을 일컫는다. 이들 어종이 제주바다에서 보이기 시작한 지 20년이 다 돼가는 사이 포획 빈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처음에 “어쩌다 한 번”이던 체감 빈도는 이제 “걸핏하면”이 됐다. 송 선장은 “요즘은 잡으면 10마리 중 하나는 모르는 아열대 어종 같다”며 “많이 늘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식용이 되는 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2일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44종이 관측됐던 제주도 인근 아열대 어종 수는 올해까지 누적 83종으로 늘었다. 이 중 “먹을 수 있는 어종은 5종뿐”이라고 연구소는 밝혔다. 아열대 어종의 출현율은 훌쩍 뛰었다. 연구소가 어종 조사를 위해 분기별로 실시하는 어획시험조사에서 9년 전 43%이던 이 비율은 최근 2년 사이 50%를 넘어섰다. 잡히는 생선 2마리 중 하나는 아열대 어종이란 얘기다.
요즘 제주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어종은 호박돔과 황갈돔, 쥐돔 등이다. 열대종인 곰취가 보이기도 한다. 예전이면 자리돔, 벵에돔, 용치놀래기가 차지했을 자리다. 쥐돔은 일본 오키나와에 주로 사는 종인데 이제는 제주에서도 어렵지 않게 보인다.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주로 활동하는 송 선장은 “쥐돔은 이 근처에 떼로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소라가 잘 보이는 바다
이런 송 선장이 기후변화의 증거 ‘1순위’로 꼽는 현상은 따로 있다. 바로 해조류의 급감이다. 흔히 해조류라 하면 떠올리는 미역, 다시마, 감태 등의 갈조류는 수온에 매우 예민하다. 갈조류는 가을철에 씨를 뿌리면 씨앗이 암반에 붙어 겨울에 생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봄에 크게 성장했다가 여름에 죽는다. 추워질 때부터 자라기 시작하는 갈조류의 생장패턴이 수온이 오르면서 망가지기 시작했다.
제주수산연구소에 따르면 갈조류 성장에 가장 적합한 겨울철 수온은 15∼17도이다. 17∼18도 수준이던 제주도 연평균 수온이 최근 19∼20도까지 상승했다. 바다는 육지처럼 온도가 급변하지 않는다. 고준철 연구사는 “바다에서 1도 차이는 육지에서 10도 차이”라고까지 추정했다. 고수온에서 해조류는 이파리 가장자리가 녹는 ‘끝녹음 현상’을 보이면서 죽는다.
해조류가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복, 소라, 오분자기 같은 종이 삶의 터전을 잃는다. 암반에 기반해 해조류에 씨앗을 붙여 번식하고 해조류를 먹으면서 사는 이들 생물에게 집과 먹이가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다.

이들 터전이 사라지면서 소라가 ‘너무 잘 보인다’고 한다. 수십년째 물질을 하는 송 선장의 어머니이자 해녀 김이선(76)씨는 “전에는 해조류가 무성히 자라 그 사이에 있는 소라를 찾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소라가 해초를 찾아다니느라 눈에 잘 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남획을 막으려 연간 수확량을 제한했지만 소라가 워낙 잘 보이는 터라 마음만 먹으면 하루 100㎏ 이상도 잡을 수 있다.
김씨는 “할당량을 하루면 채울 수 있어 사나흘씩 쉬기도 한다”며 “자원량이 많아진 게 절대 아니다. 지금처럼 보이는 대로 잡으면 10∼20년 후에 분명히 고갈될 것 같다”고 걱정을 내비쳤다. 제주수산연구소에 따르면 1990년대에 연 2000t 수준이던 소라 생산량은 2000년대 들어 1600t 규모로 줄었다.
수산과학원에 따르면 1986년 173만t으로 정점을 찍은 우리나라 연근해 어획량은 꾸준히 감소한 끝에 2016년부터 100만t 이하로 떨어졌다. 김씨는 “이렇게 바닷속에 해조류가 없기는 처음”이라며 “제주도는 해녀를 유치하고 싶어하는데 어획량이 받쳐주질 못한다. 해녀가 돼도 소득이 부족하고 그래서 새로운 사람도 유입이 힘들다”고 전했다.
송 선장 역시 “수온 상승 문제에다 풍랑주의보, 태풍주의보가 늘면서 바다에 나가는 날이 연간 150~200일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회유성 어종(산란, 월동 등을 위해 떼를 지어 서식지를 이동하는 연어 같은 종)이 겨울에는 남해나 동해까지 올라가고, 여름에는 아열대 어종 비중이 늘어나는 바람에 전에 잡던 대상어종만 잡아서는 돈벌이를 할 수 없다”며 “먼바다로 나가지 않는 이상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온난화 계속 땐 오키나와처럼 산호바다 될 것”
국립수산과학원의 해양기후모델 결과를 보면 지금처럼 온실가스가 배출될 경우 2100년이면 우리나라 표층수온은 약 4~5도 더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주변 해역 수온이 지금의 일본 오키나와 해역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 해양 생태계도 완전히 바뀔 것이란 예측이다.
고준철 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연구사는 지난달 16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평균수온이 18∼20도 수준을 6개월간 지속하는 해역을 아열대 해역이라고 정의한다”며 “제주도는 최근 이 수온대가 최소 8∼9개월은 유지돼 이미 완전히 아열대 해역이 됐다”고 밝혔다. 고 연구사는 “이대로면 어민 생계와 생활양식, 국내 식생활뿐 아니라 문화까지 다방면에서 상당한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2일 제주수산연구소에 따르면 과거 13∼14도까지 내려가던 제주 서귀포 인근 수온이 겨울에도 1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오키나와나 대만 등에서 제주 해역으로 왔다가 겨울철에 복귀하지 못하고 죽는 생선을 ‘사멸회유종’이라고 부른다. 여름 난류를 타고 제주바다까지 왔다가 갑자기 차가워진 수온을 견디지 못해 폐사하는 종을 말한다.

그러나 겨울에도 수온이 15도로 유지되는 요즘은 아열대 어종이 살아남고 있다. 고 연구사는 “이런 종이 한두 개개씩 겨울철 수온을 이겨내고 견디면 여기 서식하게 된다”며 “알을 낳아 번식하고 새 개체가 살아남는 과정이 반복되면 개체수가 늘고 차차 이런 종 수가 늘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렇게 새로운 종의 자원량이 많아지면 어종 지도가 바뀌고 새로운 먹이사슬이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2013년부터 9년째 제주바다에서 어획시험조사 중인 고 연구사는 “바다는 계속 변하는 중이라 아직 얼마만큼 어떻게 변하겠다고 단언할 수 없다”면서도 “제주해역이 완전히 열대 바다로, 오키나와처럼 산호바다로 변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높아진 수온에 해조류가 사라지면 그 자리를 화려한 열대 산호가 덮는 것이다. 고 연구사는 이런 변화가 제주바다에 가장 심하겠지만 우리나라 해역 전반에서 우려되는 변화라고 말했다.
바닷속 변화는 수산업뿐 아니라 사회·경제·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국민생선’으로 분류되던 명태는 씨가 마른 지 오래다. 자리돔이나 한치는 제주도 인근에서 잘 잡히던 종이다. 방어 역시 제주도에서 방어축제를 열 만큼 이곳의 주력 상품이었다.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고 연구사는 “이제 어종의 북방한계선이 높아져 이런 생선은 남해안, 동해안에서 더 많이 잡힌다”며 “축제는 지역 고유문화의 한 부분인데 이런 것들이 차차 훼손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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