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슈라이어 현대차그룹 디자인경영 담당 인터뷰
동서양 경계 넘은 디자인… 현대차 아이덴티티 창조
“디자인은 기업·사회 바꾸는 힘 지녀
전기차 이후 차 디자인 자유도 높아져
디자인은 편안한 마음으로 접근해야”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 현대차그룹 디자인경영담당 사장의 삶과 디자인 철학을 심층적으로 조명한 책(디자인 너머)이 출간됐다. 슈라이어 사장은 2006년 현대차그룹에 합류해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가 독창적인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갖춘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앞서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에서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근무하며 ‘아우디 TT’, ‘골프4’ 등을 디자인하며 독일의 3대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렸다. 지난달 24일 서울 삼성동 파크하얏트 호텔에서 책 출간을 맞이해 슈라이어 사장으로부터 직접 그의 디자인 철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디자인 너머’ 출간에 대한 소회와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동시에 비행기나 차 물건 만드는 것도 좋아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의 작은 시골마을(바이에른주 바트라이헨할) 출신이다. 그때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다. 차 디자인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 당시 내가 아는건 BMW가 좋아하는 차 브랜드라는 정도였다. 나중에 학교(뮌헨응용과학대 산업디자인과)에 들어가서 우연히 산업디자인과 포스터를 보면서 차 디자인에 관심 갖게 됐어. 이후 아우디에서 인턴을 하면서 본격적인 자동차 세계에 진입하게 됐다.”
● 책 제목이 ‘디자인 너머’(독일어판 원제: Roots and Wings)인데, 디자인 너머에는 무엇이 있나.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디자인을 새로운 스타일링을 만드는 정도로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디자인의 힘’이라는 것은 차의 모양에만 국한되지만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이 가진 힘을 활용하면 기업을 바꿀 수 있고, 브랜드 인식을 제고하고, 디자인을 통해서 사내 문화에도 많은 변화주기도 했다.”
“내가 디자인 하는 방식은 직접 디자이너들을 찾아가서 함께 일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들에게 의견을 묻고, 소통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그래야 좋은 디자인 나온다. 그런 분위기 만드는데 시간 필요하다. 그래야 디자인에 자유가 주어지고, 디자이너들이 강한 자신감 가지게 된다.”
●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인으로 평가받는데, 동양의 미학은 무엇인가.
“이 부분은 내가 하는 일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사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 좀 더 독일스러운 것에 몰두돼 있었다. 한국은 다른 문화였다. 사람의 태도도 달랐다. 한국 사람은 의사결정이 빠르고 과감한 부분이 있었다. (그는 인터뷰실에 걸려 있는 경복궁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건축물도 다르다. 한옥에서도 많은 영감 얻었다. 다른 많은 것들이 굉장히 흥미롭고 다른 방식으로 내게 다가왔다. 현대의 한국을 보면 한국사람은 굉장히 창조적이다.”
“산업계를 보더라도 앞을 바라보는 전향적 모습이 보인다. 이런 것들이 저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저는 독일적인 것들과 조화롭게 이루는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다. 독일은 많은 것 보존하고 차근차근 디자인 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디자인을 중요하게 여긴다. 반면 한국은 혁신을 추구하고 빠르게 전진하려는 특성들 있다. 그것들이 중요했다. 이 점이 제 디자인에서 이상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독일과 한국의 두 미학을 합칠 수 있는게 좋은 자산이 됐다. 이런 부분들이 제가 디자인 한 제품에 많이 반영됐다. 현대차나 기아, 제네시스까지도 동서양 어느 한 쪽에 국한되지 않는 특별한 디자인 선보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한국은 내연기관 자동차의 역사가 짧다. 이런 것이 과감한 도전에 도움이 됐나.
“한국을 보면 도로에 다니는 차만 봐도 알 수 있다. 유럽에 있다가 한국 오면 항상 느끼는데 이미 차들이 다르다. 한국에서 보다 미래적 이미지를 주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 역사는 길지 않다. 아마 40∼45년 전이라면, 미국 유럽 따라잡으려 노력했어야 할텐데 이미 그런 시장 따라잡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차 시장은 혁신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이런 점에 관심을 많이 갖고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전기차의 경우 엔지니어링이나 디자인 측면에서 봤을 때 새로운 과제와 가능성 갖고 있다. 새로 출시된 전기차 아이오닉 5나 EV6 보면 알 수 있다. 전기차는 엔진이 없고 구동축이 없어서 레이아웃(배치) 자체를 다르게 가져갈 수 있다. 내연기관차와 다른 플랫폼이라 다른 내장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내부가 평평해서 방 처럼 될 수 있다. 또 배터리 때문에 하부가 높아서 자체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들이 큰 가능성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차의 다양성을 더 부여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연기관차는 배치가 고정이다. 예를 들면 운전석 위치도 정해져 있고, 핸들의 위치도 정해져 있다. 하지만 전기차는 자유롭고 다른 것을 추구할 수 있다. 굉장히 많은 새로운 도전 과제와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 개발에 있어서 디자인이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 현대차그룹 온 뒤에 디자인 한 것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차는 무엇이며 어떤 점 때문에 그러한가. 또한 아쉬운 차량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아쉬운 차에 대해 언급하는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쉽다라는 생각 크게 해본적이 없다. 모든 모델 디자인에 최선을 다한다. 개인적으로 생각 했을 때, 게임체인저가 된 모델은 K5(수출명 옵티마)와 스포티지였다. 기아 컨셉트카 키(KEE)도 좋았는데, 왜냐하면 최초로 새롭게 바뀐 디자인 철학과 언어를 보여줄 수 있었던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그니처가 된 ‘호랑이 코’를 처음 선보인 모델이기도 하다. 당시는 현대차그룹의 아이덴티티를 만드는게 중요했다. 이 차들은 최초로 차 부분에 큰 변화가 시작됐다. 사내에서 디자이너 들 생각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와 영향을 미쳤던 차들이다.”
“디자인 뿐만 아니라 기술과의 조화 측면에서 보면 수소전기차 넥쏘가 인상적이다. 첫 수소전용차였는데, 아이디어 자체에 매료됐다. 그동안 인터뷰에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이동 등에 많은 제약 받으면서 느낀건데 기아의 레이가 굉장히 인상 깊다. 출시된 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최신 디자인을 선보인다고 생각한다. 형태가 독특해서 실험적이고, 차체는 작지만 안 공간은 크다. 당시도 시대를 앞선 디자인 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우디의 A2와도 궤를 같이하는데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디자인과 스타일링, 패키지 자체가 혁신적이었다.
● 미래의 차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하나.
“항상 미래차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에는 전기차 덕분에 차에 많은 자유가 부여될거라고 생각한다. 변화 가능성이 많이 열렸다. 자율주행도 새로운 요소다. 이전과 다른 방식의 인터페이스, 구동 방식, 내장에서도 그런식으로 변화가 시작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에도 자동차의 외형에서 바퀴가 있고 문이 있고 창이 있는 부분들은 유지될 것이다. 인간이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의자나 이런 부분은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차의 운영 방식은 크게 바뀔 것이다. 스마트폰의 사용 방식이 바뀌듯 차도 달라질 것이다. 또한 차를 소유하느냐 공유하느냐 하는 이런 것들은 이미 변화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계에 있어서 중요한 도전 과제 중 하나가 더 있다. 지속가능성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에너지, 연료, 전기, 재활용, 순환경제 구축, 플라스틱을 더 적게 쓰는 것 등의 중요성도 더 증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현대차를 이야기 할 때, 실내 디자인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실내 구성에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차는 두번째 집이다. 처음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내장 디자인을 맡아 특별히 더 애정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내장과 외장은 완벽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처음은 외장 디자인 보고 구매하는데, 아침에 차를 타려고 들어 갔을 때 고객들이 긍정적 경험과 기분 느끼길 바란다. 차는 작고, 저렴하다 하더라도 그 차를 만든 사람들이 섬세하게 신경 써주고 있다고 느끼길 바란다.”
“내장은 몸에 잘 맞는 정장처럼, 장갑처럼 몸에 딱 맞아야 한다. 운전석이나 좌석의 위치도 중요하다. 편안한 기분을 느끼는지, 모든게 손에 닿을 수 있어야 하고, 핸들 잡았을 때 편해야 하고, 설명서 없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직관적이어야 한다. 소형 차에서도 프리미엄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했고, 실제로 그게 현대 기아 차에서 많이 들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에 대한, 품질에 대한 인식이 좋다고 생각한다. 고급스러운 느낌이라는 게 고객들에게 중요한 것이다. 비싼 돈을 주고 차를 구매했는데 차를 탔을 때 보상을 받고 자부심 느끼고, 행복한 느낌 느끼길 바란다. 덧붙여서, 모든 차 내장 디자인을 할 때, 열정적으로 한다. 내가 그 차에 타는 것을 생각하면서 디자인 한다. 차 디자인할 때, 고객이 탄다기 보다, 내가 얼마나 만족감 느끼는지도 동시에 고려하고, 안전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 정의선 회장과의 일화도 책에 많이 담겨 있다. 신형 스포티지(NQ5) 작업에 어떤 영향 주고 받았는지, 평소에 어떤 리더십으로 영향 주나.
“하나의 모델에 관해서 말하기 보다는,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논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정의선 회장은 디자인 하는데 있어서 시간적 자유를 많이 허락해 주는 편이다. 나에게 멘토처럼 지지해준다. 내가 차를 개발하는 방식과 철학을 잘 이해해 준다. 일을 시작했을 때 그 부분은 굉장히 중요했다. 이런 부분이 성공의 비결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 회장은 혁신을 추구한다.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데 굉장히 많은 흥미를 갖고 있다. 디자인에 시간 자유를 허락해 주는데, 동시에 도전 과제도 많이 주고 이는 긍정적 부분이다.”
● 어디에서 디자인 영감을 받는가.
“굉장히 많다. 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있다. 다양한 영향력이 영감이 됐다. 여행도 중요하다. 미국, 한국, 인도 등 다른 문화와 삶의 방식 보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재즈도 빼놓을 수 없다. 음악, 예술 같은 부분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는다. 정의선 회장 같은 멘토 역할 해준 사람도 많았다. 아우디 수석 디자이너 하트무트 바루쿠스가 나에게 디자인 알려줬고, 비율과 완벽한 라인 구성의 중요성을 가르쳐줬다. 바루쿠스는 아우디 혁신 불러 일으켰다.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지금도 활용하는 디자인 지식이나 토대가 돼 줬다. 또 현대차와 기아에서 같이 일했던 많은 디자이너, 우리 가족도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디자인 할 때 차만 보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런 타입은 아니다. 많은 것을 둘러보고 영감을 받으려고 한다. 바루쿠스가 해준 이야기인데, 자신은 예술가로 그 예술적 요소를 갖고 자동차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 책 출간과 관련해 더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우선 책이 출간돼서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책을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 필요한지 알 수 있는 경험이었다. 스스로에게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책에서 밝혀진 부분도 많고, 실제로 책을 만드는 데 있어서 얼마나 많은 일이 있는지 알게 됐다. 나의 어린시절, 청년시절, 공부하던 시절이 책을 통해 연결돼서 지금의 제가 됐다. 과거를 돌아보니 생각보다, 제 삶이 우연에 의해서 결정된 부분이 많더라. 삶의 교차로에서 선택에 따라 달라진 점들이 많았다. 그 기회를 인지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들이 흥미로웠다. 기아에 함께하기로 결정한 것도 내 삶에서 중요한 순간이다. 그 뒤로 15년이 흘렀는다. 그 동안 나를 더 흥미롭게 하고, 변화시키고 한 것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것이 제 삶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행복하고 감사한 경험이었다. 책을 만드는 것은 (차를 만드는 것처럼) 매우 큰 프로젝트였다.
●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있다.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따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편안한 마음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디자이너는 다방면으로 압박을 받는다. 회사라면 경영진이 디자이너를 편안하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 항상 그래왔지만 디자인은 2가지 측면을 강조해야 하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디자인 하는 것, 유연한 사고와 자유로운 사고가 새로운 디자인 창출하는 방법이다. 농구할 때 경직된 스포츠가 아니라 마치 춤추듯 움직여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동시에 디자이너는 진지하게 디자인해야 한다.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회사,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창조를 위한 창조, 창의력 위한 창의력 보다 합리적 디자인도 굉장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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