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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단체 “사죄는커녕 영령들 모독”… 대선주자들 “조문 안 간다”

입력 : 2021-11-24 06:00:00 수정 : 2021-11-24 03: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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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선도공작 의문사규명위
“진실 밝힐 범인들 사과도 없이…”

민주 “조문·조화·국가장 모두 불가”
정의 “심판 안 끝나… 죽음조차 유죄”
尹 “조문 가야” 말했다 뒤늦게 번복
외신 “韓서 가장 비난받는 독재자”

행안부 “예우 결정권자는 대통령”
빈소엔 장세동 등 5공 인사 발길
5·18 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가 23일 광주 5·18 기념재단 오월기억저장소에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죽음으로 5·18 진실을 묻을 수는 없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망에 대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은 물론 광주 시민들의 반응이 싸늘하다. 5·18을 유혈 진압해 정권을 찬탈하고도 사죄나 참회하지 않고 버티면서 구차한 변명과 책임회피로 일관하다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유에서다. 시민사회단체는 전 전 대통령의 범죄 행위를 사후에도 끝까지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와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5·18기념재단 등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4개 단체는 23일 오전 광주 오월기억저장소에서 전 전 대통령의 사망과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은 죽더라도 5·18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5·18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체는 “학살자 전두환은 자신이 5·18과 무관하다며 구차한 변명과 책임회피로 일관해 왔기에 우리는 그의 고백과 참회, 사법부 엄벌을 강력히 촉구해왔다”며 “그동안의 재판이 대한민국 헌정사를 유린하고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책임자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는 ‘역사적 심판’이 되기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3월 1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관련 형사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을 마치고 나서 청사를 나서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단체는 “하지만 전씨는 사죄는커녕 자신의 회고록으로 5·18 영령들을 모독하고 폄훼하면서 역겨운 삶을 살았다”면서 “그는 법정에 서서도 거짓말과 왜곡으로 국민과 대한민국 사법부를 기망하다 재판이 지연되면서 결국 생전에 역사적 심판을 받지 못하고 죄인으로 죽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단체는 “전씨 사후에도 오월학살 주범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 만고의 대역죄인 전두환의 범죄 행위를 명명백백히 밝혀 역사 정의를 바로 세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는 “사죄 한마디 없이 떠난 전두환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이명자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전두환이 생전 어떤 식으로든 광주시민과 국민께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며 “하지만 그가 사죄를 하지 않고 버티다 숨졌기 때문에 우리도 용서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광주 시민들은 전씨가 유혈 진압에 대해 끝내 사과하지 않고 숨진 데 대해 분노하면서도 역사를 바로잡는 노력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5.18 당시 전일빌딩 주변을 선회하는 헬기. 사진=연합뉴스

5·18 당시 전남도청 앞에서 마지막 방송을 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에 처해져 뒤늦게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영순(62·여)씨는 “광주의 얼룩진 피로 얻은 대통령이 지금껏 사과 한마디 없이 사망한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며 “공포의 총소리에 동료 학생들이 현장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공포와 악몽으로 42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약에 의존했지만, 지금도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시민 이태범(51)씨는 “비록 전씨는 숨졌으나, 현재 진행 중인 재판과 역사를 바로잡는 노력 등을 통해 진실을 명확히 밝혀 5·18 영령들의 한을 달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두환정권 당시 군에 끌려갔다 의문사한 피해자의 유족 측은 전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에 “사과 한마디 없이 죽었다”며 억울한 심경을 밝혔다. 이날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대책위원회’가 연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유가족인 최종순 대책위 대표는 “진실을 밝혀야 할 범인들이 사과도 없이 하나둘 죽어가고 있다”며 “군사정권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의문사 진실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두환정권 당시 국군보안사령부가 주도한 녹화·선도사업은 학생운동 관계자를 강제 징집해 이들을 ‘프락치’로 이용했다.

◆대선주자들 “조문 계획 없다”… 靑 “사과 없어 유감”

 

청와대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경미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면서 “청와대 차원의 조화나 조문은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전 대통령’이라고 호칭한 것에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이라고 직접 말씀하진 않았다”고 전했다.

 

여야 지도부와 대선주자들도 싸늘한 반응을 보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디지털 대전환’ 공약 발표 자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전씨는 명백한 내란, 학살사건의 주범”이라며 “사적 욕망을 위해 수백명을 사살하고 국가권력을 찬탈한 범죄를 마지막 순간까지 반성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중대범죄라고 인정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역사와 진실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고도 했다. 송영길 대표는 자신의 SNS에 “민주당은 조화·조문·국가장 모두 불가”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SNS에서 전 대통령이라고 썼다가 ‘전씨’로 표현을 고치는 등 혼선을 빚었다.

 

국민의힘은 조문은 하지 않지만 조화는 보내겠다는 입장이다. 이준석 대표는 SNS에 “조문할 계획이 없다. 당을 대표해서 조화는 보내도록 하겠다”며 “당내 구성원들은 고인과의 인연이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조문 여부를 결정하셔도 된다”고 밝혔다. 윤석열 후보는 “전직 대통령이라 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가 별도 입장문을 통해 조문을 않겠다고 정정했다. 국민의힘은 전 대통령 호칭을 사용하면서도 메시지 수위를 고민한 듯 논평을 내지 않았다.

 

정의당 여영국 대표는 “역사적 심판과 사법적 심판이 끝나기 전에 사망했다. 죽음조차 유죄”라고 했다. 심상정 대선 후보는 전씨라고 부르며 “성찰 없는 죽음은 그조차 유죄”라고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명복을 빈다”면서도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한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

 

주요 외신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독재자’로 소개하며 사망 소식을 전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중·한 수교 후 전 전 대통령은 중국의 관련 부문, 단체와 교류가 있었다. 고인의 가족에 진심으로 위로를 표한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국에서 가장 비난받는 군사 독재자”라며 “1980년대 내내 국가를 철권 통치했다”고 했다. 일본 언론은 독재정치를 부각하면서도 ‘처음 일본을 공식 방문한 한국 대통령’이라는 인연을 부각했다. NHK는 1984년 한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일본을 방문해 히로히토 일왕과 회견했다고 소개했다.

23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에 부인 이순자씨가 들어서고 있다. 하상윤 기자

◆5일 가족장 유력… 유해 장지 결정 때까지 연희동 안치

 

전두환 전 대통령 장례는 5일 가족장으로 치러질 공산이 크다. 전 전 대통령은 생전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한 범죄자이고 사망 직전까지 어떠한 사죄를 표명하지 않은 데 대한 국민적 공분이 크기 때문이다.

 

전 전 대통령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장례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가족장으로 해서 화장한 후 (장지는 유언대로) 북녘땅이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 전 비서관은 “전방 고지라는 게 장지를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며 “장지가 결정될 때까지는 화장한 후 (유골을) 연희동에 모시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장례기간과 관련해선 “3남 가족들이 모인 후에 장례를 치러야 해서 삼일장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23일 서울 마포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앞 전광판에 전 전 대통령 사진이 보인다. 하상윤 기자

앞서 국가장(국장·국민장 포함) 대신 가족장으로 치른 전직 대통령은 이승만·윤보선 전 대통령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사망 사실을 확인한 직후 국가장 등 예우 대상이 될지 여부에 대해 검토 중”이라며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전 전 대통령 빈소가 차려지기 전 연희동 자택 주변은 취재진과 경찰·보건당국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고인과 인연이 있는 인사들이 사저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 장세동 전 안전기획부장, 오일랑 전 청와대 경호실 안전처장,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의 법률대리인 정주교 변호사 등이 사저를 방문했다.


광주=김동욱·한승하·한현묵 기자, 이종민·김현우 기자,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송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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