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회복되지 않는 ‘집회할 권리’… “불리한 목소리 듣지 않겠다는 정부”

입력 : 2021-11-21 23:00:00 수정 : 2021-11-21 20:45:3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지난 13일 서울 동대문 일대 도로를 점거한 채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벌이고 있다. 주최 측은 이날 대회에 조합원 2만여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1. 지난 13일 오후 2시30분 서울 동대문역 사거리. 1시간여 전부터 모인 인파가 십(十)자 형태로 도로를 점거했다. 전태일 열사 51주기를 맞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인파였다. 주최 측 추산 2만여명이 기습적으로 도로를 메우면서 차량 통행이 막히며 일대가 혼란을 빚었다. 집결 단계부터 차단을 예고하고도 집회를 막지 못한 경찰은 당일 “대규모 불법집회를 강행한 주최자와 주요 참가자들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2. 다음날인 14일 KT위즈와 두산베어스의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린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는 1만6200명 규모의 좌석이 모두 찼다. 전 좌석을 ‘백신 접종자 구역’으로 지정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자와 48시간 내 유전자증폭(PCR)검사 음성확인자 등만 입장할 수 있었다. 방역 지침상 육성 응원은 금지됐지만, 경기 도중 이따금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후 4차전까지 이어진 한국시리즈에는 매 경기 1만3000명 안팎의 인원이 입장했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들도 야구장을 방문해 선거유세를 펼치기도 했다.

 

이달 들어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이 도입됐지만 유독 집회·시위에 대해 차별적인 방역조치가 가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공중보건의 위기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집회·시위의 권리도 보장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도 과학적으로 타당한 방역지침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14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t wiz의 경기.KT 팬들이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야외 활동으로 인한 감염 확률은 희박”

 

2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단계적 일상회복 이행계획’을 보면 이달부터 집회와 행사에는 접종자·미접종자 구분 없이 최대 99명이 참여할 수 있다. 접종완료자와 PCR검사 음성확인자, 18세 이하 등으로만 참여할 땐 499명까지 가능하다. 100명 이상 접종완료자가 참여하는 집회를 열 땐 신고자가 참석자 전원의 접종 완료 여부를 확인하고, 접종 완료자 외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조치해야 한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인 최종연 변호사는 “중대본에서는 집회 관련 지침을 일반 행사와 함께 규제하고 있다”며 “집회·시위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위한 수단인데 일반 행사와 묶어서 판단한다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500명 미만’이라는 기준도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며 “(백신 접종 이후에도 감염되는) 돌파감염을 고려하더라도 야외인 점을 고려하면 접종자로 구성된 집회 인원 제한은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그러면서 집회 허용 기준을 집회 면적에 따른 거리두기 시 수용 가능 인원, 질서유지를 어떻게 할지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학계에서도 야외 활동으로 인한 코로나19 감염 확률을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한의학회 종합학술지인 JKMS(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에 실린 ‘의사 총파업에 참여한 학생과 수련의를 대상으로 한 추적 결과’를 보면, 9000여명에 달하는 참가자 전원이 1m 거리두기와 마스크 등 방역수칙을 준수한 결과, 야외 집회를 통한 전파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연구진은 “적절한 개인 보호 장비를 갖춘다면 개방된 공간에서의 대규모 모임은 감염 위험이 희박하다”고 밝혔다.

 

지난 5월 뉴욕타임스(NYT)에서도 코로나19 감염경로를 분석한 논문을 인용하며 야외 활동 시 코로나19 감염은 전체 감염의 1% 미만 또는 0.1% 미만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8월 영국의학저널에도 마스크를 쓴 상태로 장시간 접촉하며 소리치거나 노래를 하더라도 밀집도가 낮고 환기가 잘 되는 실외 상태라면 전파위험은 낮다고 분류했다.

 

◆코로나19 전후 집회금지 ‘1건’→‘3206건’ 폭증

 

그럼에도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후 집회·시위는 크게 제한돼 왔다. 정부는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집회를 제한했고 지자체 차원에서도 관련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서울 시내 집회에 대해 금지 통고한 사례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에는 1건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3867건, 올해 8월 말까지 3206건으로 크게 늘었다. 감염병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다중이 한 공간에 모이는 집회가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는 취지였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런 금지 조치가 약자의 목소리를 차단한다고 비판한다. 공권력감시대응팀 등 단체는 지난달 29일 정부의 집회·시위 정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인원을 기준으로 일률적인 제한을 하는 것은 집회를 문제시하는 기존의 시각에서 나아가지 못한 것”이라며 “코로나19 시기 삶의 위기를 겪는 노동자, 자영업자,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공론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기 위한 가능성을 차단했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행동의 유흥희 집행위원장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로 내몰렸기 때문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며 “집회·시위를 막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불리한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K-방역’의 진실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난 14일 2022 대선대응청년행동 소속단체 회원들이 서울 중구 한빛광장에서 열린 분노의 깃발행동 집회를 마친 뒤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회 전후 모임은 경계해야”

 

전문가들도 야외 감염의 위험성이 낮은 만큼 집회 제한 기준의 재조정 필요성을 인정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개방된 공간에서는 공기 흐름이 자유롭기 때문에 야외 집회를 통한 감염 위험은 낮다”며 “야구 경기장같이 환기가 어려운 곳에 있기보다 오히려 야외로 나가라고 권장해야 할 형국이다. 일상으로 가자고 하면서 집회·시위는 제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집회를 계기로 또다른 모임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야외 집회 자체는 괜찮을 수 있지만, 집회 전후로 모임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대규모 집회를 꼭 해야 한다면 잠복기를 고려해 최소한 일주일 이내에는 참가자 모두 PCR 검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