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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미·중관계사] ‘산둥 반환’의 외침과 시진핑의 대만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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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21 23:02:29 수정 : 2021-11-21 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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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첫 화상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고 ‘하나의 중국’ 정책을 유지하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에 시 주석은 완전한 통일이 중국 민족의 공통의 염원이라며 ‘불장난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탄다’고 엄포했다.

중국 근·현대사에서 서구에 대한 중국의 불신은 서구가 중국의 영토주권을 손상시킬 때 촉발됐다. 지금의 미·중관계가 가뜩이나 전략적 불신에 빠져 있는데 대만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 상승은 이런 불신관계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5·4운동 광경. 출처:‘라 치빌타 가톨리카’

1919년 6월에 개최될 베르사유조약이 중국의 산둥 반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중국에 급히 타전됐다. 그러자 5월 4일 ‘산둥 반환’을 외치는 중국 학생들의 구호가 베이징 톈안먼광장을 뒤덮었다. 전국 13개 대학에서 3000여명의 학생들이 모인 ‘5·4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함성이었다. 중국인이 서구에 영토 반환을 요구하는 첫 시위였다.

1차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미국을 줄곧 우방으로 여겼다. 그런 미국이 중국의 염원을 관철시키지 못하자 중국은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미국에 대한 중국의 불신이 싹트는 계기가 됐다. 중국인의 불신은 거침없이 확산됐다. 미국을 신뢰하고 찬양하던 중국 지도자들마저 등을 돌렸다. 대표적으로 쉬스창, 량치차오, 천두슈에 이어 리다자오와 마오쩌둥까지 그랬다.

특히, 당시 25세의 열혈 청년이던 마오쩌둥은 미국에 우호적이었다. 일찍부터 마오쩌둥은 벤저민 프랭클린 대통령의 과학에 대한 기여에 매료됐고,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팬으로 성장했다. 매일 아침 영어를 공부할 정도였다. 그러나 미국에 대해 불신이 싹트게 되자, 그마저도 미국에 대한 배신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대만문제를 둘러싸고 중국인들이 아직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대만 반환을 요구하고 나서면 그 화살은 당연히 서구에 대한 반감으로 향할 것이고, 미국에 대한 불신의 늪은 ‘5·4운동’ 때처럼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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