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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이재명이 답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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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19 22:38:06 수정 : 2021-11-19 22: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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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 주셔야 합니다. (중략) 그렇게만 하신다고 약속해 주시면 정말 영혼 갈아서 기쁜 마음으로 웃으면서 찍고 동네방네 이재명 찍었다고 자랑하고 다니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한 ‘홍카단’(국민의힘 홍준표 의원 지지자) 일원의 글이다. 이 후보는 지난 8일 당 선거대책위원들에게 ‘2030 남성이 홍준표 의원을 지지한 이유’라는 제목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함께 보자고 권유했다. 해당 글은 민주당의 페미니즘 정책 탓에 2030 남성이 떠나갔고, 그나마 자신의 말을 들어준 홍 의원을 지지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페미니즘과 거리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현우 정치부 기자

‘페미니즘이 사라지면 청년의 삶이 더 나아질까’라는 의문은 차치하더라도, 이 후보가 그 글을 공유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정말로 떠나간 2030 남성 민심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였을까. 누군가를 배제해야 이길 수 있다는 ‘선거전략’을 대선 후보가 직접 공개적으로 공유한 사례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실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용서’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동서 화합’으로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지난 11일, 이 후보는 가상자산업계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로부터 “전날 공유한 커뮤니티 글이 청년 갈라치기라는 비판이 나오는데 이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5년 전에는 ‘82년생 김지영’을 공유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 후보는 아무런 답변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기자 역시 ‘2030세대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던 이 후보를 향해 “여기 있는 기자들도 2030입니다”라고 외쳤지만, 이 후보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이 후보가 질문을 피하는 이유는 측근들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다. 후보와 가장 지근거리에서 움직이는 한준호 수행실장은 “메시지에 혼선이 온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대선 후보의 메시지 전달 실패는 전략의 실패이지, 받아들이는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실제로 그동안 이 후보의 “확 끄는데” 발언이나 “공공이 정한 규칙도 어길 수 있다”라는 말은 이 후보가 스스로 자초한 논란이다. 혼선이 우려된다고 소통을 자제하는 것은 ‘무오류’라는 불가능을 고집하는 것과 다름없다.

최근 이 후보의 ‘소통’ 행보를 보면 ‘선전 수준’이라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미리 선정된 간담회 참석자와 미리 정해진 범위의 시간 내에서, 후보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대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후보에게 반박이나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자신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기자들의 질문은 차단하고, 지지자들에게 “우리가 언론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청년에 구애하는 이 후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페미니즘과의 거리두기’가 아니다. 자신을 향한 기자들의 불편한 질문과, 2030세대의 불편한 의문도 거리낌 없이 수용하고 때로는 반박하는, 소통을 넘어 ‘공명할 줄 아는 대선 후보’로의 변화다. 매머드급 선대위에 “밭을 탓하는 농부는 농사를 망친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녕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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