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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시청자들 빵 터지네

입력 : 2021-11-16 19:49:55 수정 : 2021-11-16 19:4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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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현실, 코믹하게 꼬집어
발로 뛰는 사전조사로 생생함 더해
장관 된 왕년 스포츠 스타역 김성령
백현진은 허세 가득한 지식인 변신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웃음꽃 만발
웨이브 제공
#1. 대통령 임기를 1년 남기고 임명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사청문회 현장. 부동산 문제를 책임지라는 야당과 여당 간 공방은 몸싸움으로 치닫는다. 이를 말리는 위원장에게 한 청문위원이 소리친다. “발언권을 달라고요!” 위원장이 더 큰 소리로 외친다. “드렸잖아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온 대답 “양보하겠습니다!”

쇼가 진정되고 장관 후보자는 이제야 ‘문화예술체육계 범죄 전담 수사처’, 일명 ‘체수처’ 운영계획을 설명하나 싶었는데, 운을 떼자마자 위원장은 장관의 발언을 중단시킨다.

“어제 여의도 생고기에서 회식 참여하신 분 계십니까? 추민우 의원님께서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지금부터 영등포보건소 지휘에 따라주세요.” 이정은 장관은 역대 최단시간으로 청문회를 통과한다.

#2. 1년짜리 시간 때우기용으로 임명된 장관이지만, 그는 뉴스의 중심에서 내려오질 않는다.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것도 모자라 대선 후보 지지율까지 높다. 장관이 결국 직접 기자들 앞에 나선다. 한산하던 세종시 정부청사 브리핑장에 이례적으로 취재진이 빽빽하게 들어선다.

비좁아진 브리핑장 구석을 비집고 서 있는 쾡한 얼굴을 한 어느 육신. 벽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옴짝달싹 않고 종잇장처럼 서 있는 그는 이 부처의 기조실장이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있지만, 그의 영혼은 절규한다. “법무부도, 외교부도 아닌 우리 문체부가 왜!”


독립영화부터 드라마까지 활동반경을 넓혀온 윤성호 감독의 신작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가 OTT 서비스 웨이브에서 지난 12일 공개됐다.

웨이브 제공

드라마는 신임 문체부 장관이 ‘문화예술체육계 범죄전담수사처 설립 준비단 추진을 위한 자문단 위촉식’이 있던 날, 명연설로 대선 잠룡 반열에 오르고, 동시에 장관의 남편이 괴한에 납치됐다 돌아오기까지 일주일간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다.드라마의 등장인물과 배경은 실명과 가명, 현실과 창작을 오간다. 리얼하게 현실을 풍자하면서도 있음직한 이야기를 상상으로 풀어간다. 주 배경은 문체부다. 드라마 미술팀이 세종시 청사 내 실제 문체부를 방문해 내부 디테일과 조직도 등을 조사했고, 이를 재현한 거대한 세트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현실감과 코믹함 결합된 캐릭터

등장인물 설정부터 현실을 꼬집으면서도 코믹한 캐릭터들이다.

‘80년대 김연아’로 불리는 왕년의 스포츠스타,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이정은(배우 김성령) 전 선수는 보수야당 비례대표로 화려하게 국회에 입성해 체육계 폭력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으나, 그의 노력은 다음 공천을 받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백수가 돼 있는 사이, 이정은을 눈여겨본 청와대 정무수석 발탁으로 문체부 장관이 된다.

남편은 ‘나꼼수’에도 몇번 출연하고, 진중권과도 호형호제하는 진보성향 시사평론가 김성남(배우 백현진). ‘시사온’ 구독자쯤 되면 자신을 알아보지만, ‘나PD’가 만드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급은 되지 못하는 논객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우연히 눈이 마주치는 2030 여성이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도끼병 증세도 있다.

웨이브 제공

장관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수행비서이자 장관정책보좌관 대행 김수진(배우 이학주)은 과거가 베일에 싸여 있는 여의도 에이스 출신이다. 그는 겉으로는 조용하나 온갖 리스크를 떠올리느라 쉬지 않고 머리를 쓰고 속사포로 혼잣말을 하고 있다.

코믹한 설정을 진지하게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웃음 포인트다. 눈치와 약삭함은 부족해도 순수함이 강점인 이정은 역을 맡은 김성령의 연기는 천연덕스럽다. “체수처가 피해자의 총이 되어 드리겠다”며 명연설을 하는 김성령의 눈빛에는 진심이 역력하다.

백현진은 답답해 죽겠는 세상에 내뱉는 허세스러운 지식인의 언행을 맛깔나게 전달한다. “기록만이 살길”이라며 침대 위에서도 노트북을 켜고 열의를 불태우는가 하면, “이 나라 남자들은 단체로 구강기에 트라우마를 겪었나!” 하고 열불이 터진다.

생각이 너무 많은 엘리트 보좌관 대행 역의 이학주는 불과 얼마 전까지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네임’에서의 동천파 2인자 카리스마를 쏙 빼내고 귀여운 비서로 변신했다. 특히 이학주와 청와대에서 파견온 경호원 고지섭 역할을 맡은 배우 김경일이 장관 보좌를 두고 벌이는 티키타카도 소소한 웃음을 준다. 배해선은 여의도 정치판 내공 깊은 야당 중진 차정원 역할을 더 없이 여유롭게 소화한다.

웨이브 제공

◆진지한 고민을 가볍게 다루는 감독

드라마는 무거운 소재, 진지한 고민을 해학적으로 다루는 감독 특유의 능력이 발휘됐다. 두 시간 남짓인 영화로는 아쉬운 코믹함, 시트콤에 다 담기지 않는 스토리라인이 매회 30분, 총 12회 분량이라는 새로운 그릇에 딱 맞게 담겼다. 매회 ‘풉’하고 터지는 웃음과 키득거림 속에 30분이 훌쩍 지난다.

리얼하면서도 동시에 비현실적 요소들도 재미의 중심이 되는 관전 포인트다.

드라마는 풍부한 사전 조사로 생생한 현실을 바탕에 깐다. “장관 띄엄띄엄 보는 건 형이랑 나면 충분해”라는 기재부 출신 야망 ‘늘공’ 정책보좌관과 문체부 기조실장의 대사나, 남북경협을 하려는 포털회사 ‘엔코어’ 의장이 타 부처가 아닌 공보기능을 가진 문체부를 끼고 가겠다며 계산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제작진의 사전 조사가 간단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야당의 2030 대표 주자인 위대남이 인셀 범죄를 암시하는가 하면, 사회병리현상을 진단해야 할 언론, 해결해야 할 정치가 이미 병리현상의 일부가 돼 있는 현실을 직설적이면서도 코믹하게 꼬집는다.

윤성호 감독은 세계일보 질의에 “정치부 생활을 한 기자 몇 분과 심층면담을 했고, 주로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익명으로 참여하는 ‘여의도 대나무숲’ 페이스북 등의 계정, 문체부뿐 아니라 세종시 웬만한 부처 홍보용 브이로그 계정들도 다 팔로업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잘 모르는 분야는 공개된 관련 행정문서를 몇 페이지건 다 다운받아서 읽었고, 개연성을 고려한 뒤에 집필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어딘가 살짝 모자라게 다룬 척 넘어가는 대목들, 웃음을 주는 엉뚱한 전개와 황당한 사건사고들이 어디까지나 상상과 창작임을 강조한다.

윤 감독은 “그 외 대부분의 에피소드나 디테일은 순전히 허구의 상상에 의한 것으로, 대본이나 촬영된 그림이 그렇게 리얼리티가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청와대 수석회의, 대통령과의 독대, 북한과의 비공식 소통방식은 다 웃자고 만들고 짜낸 상상의 소산”이라고 강조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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