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서열화 조장 ‘입시전문기관’ 오명
2021학년도 서울대 신입생 43% 차지
고액 학비도 논란… 1년 평균 731만원
민사고 학생 충원 이유 폐교까지 거론
학교법인 24곳 헌법소원… 존폐 변수
일각 “전면 폐지 땐 유학 열풍 불수도”

2025년 3월,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가 사라진다. 자사고는 획일화된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교육을 지향하며 출범했지만, 입시전문기관이라는 오명도 씌워지고 있다. 고교서열화 문제를 재점화시켰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자사고는 학령인구 감소와 고교학점제 도입 등의 시대적, 정책적 변화의 흐름에 맞춰 폐지된다.
19일 교육계에 따르면 정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자사고를 비롯한 국제고와 외국어고는 2025년 3월 전면 폐지된다. 지금의 초등학교 6학년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시점부터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자사고 등이) 고교서열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만큼 폐지를 확정했다”며 “1970년대 지역별 명문고가 사라진 뒤 엘리트 교육을 수행한 학교가 일반고로 모두 전환되면 사실상의 ‘완전 고교 평준화’가 실현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고교평준화 도입…대안이 된 자사고
자사고는 1995년 ‘5·31교육개혁’ 당시 교육개혁위원회의 제안으로 처음 등장했다. 1970년대 명문고를 가기 위한 입시 과열로 고교평준화제도가 등장한 이후 교육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으면서 자사고 필요성이 대두됐다. 단, 자사고 도입에 앞서 조건이 붙었다. ‘사회적으로 입시 위주의 인류대학 선호에 대한 인식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의견에 자사고 도입은 유보됐다.

하지만 국민의정부 출범 이후인 2000년 새교육공동체위원회는 교육정책보고를 통해 선택권 보장 등의 이유로 자사고 시범 도입 의견을 냈고, 전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는 시범운영을 결정했다. 2001년 민족사관고(민사고)와 광양제철고, 포항제철고를 시작으로 2002년 해운대고, 현대청운고, 상산고가 자사고로 지정됐다. 이 6개 고교는 자사고로 임시운영됐다. 팽팽한 찬반 속에 시범운영 기간은 2010년까지 연장됐고, 자사고는 추가로 지정돼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자사고가 사회와 교육에 줄 영향에 대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 시점에 등장한 이명박정부는 자사고 운영을 시작했고 자사고는 2011년 51개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자사고는 2017년 들어선 문재인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폐시가 논의됐다. 교육 당국은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교육과 창의적인 인재양성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자사고가 입시에 초점을 맞춘 기관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2021학년도 기준 서울대 신입생 중 자사고 출신이 42.7%에 달할 정도였다.
자사고의 학비도 논란이 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38개 자사고 평균 학비는 731만원에 달했다. 민사고가 2657만원으로 가장 비쌌고, 하나고와 용인외대부고의 학비는 1000만원이 넘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2005년 시범운영된 자사고 평가 당시에도 서열화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냉정한 평가를 위해 시범운영 기간이 5년 늘었던 것”이라며 “진학을 목적으로 자사고에 입학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자사고가 사라진 고교서열화를 부활시켰다”고 지적했다.

◆자사고 폐지…남은 과제는?
자사고였던 학교에 입학하는 2025학년도 신입생은 일반고등학교의 커리큘럼에 맞춘 수업을 듣게 된다. 수업료 역시 일반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낮아진다. 이때 교원들의 급여가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반고로 전환되는 자사고에 정부가 교원들의 급여 등을 일정기간 지원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자사고의 수업료 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숙사 등의 비용도 제외하면 등록금이 크게 낮아진다”고 말했다.
일부 자사고의 경우 일반고 전환 이후 학생 충원 등의 문제로 폐교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횡성에 위치한 민사고가 그렇다. 민사고는 대안교육 특성화고 지정을 희망했다. 대안교육 특성화고는 자사고처럼 교과 편성과 교원, 또 학생의 선발 권한을 갖고 있다. 교육 당국은 난색을 보였다. 형평성 문제다. 교육 당국 관계자는 “민사고의 건의를 수용할 경우 다른 자사고에서도 같은 요구를 하게 될 것”이라며 “이 경우 자사고 폐지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소원은 자사고 존폐의 변수다. 교육 당국이 자사고 폐지를 결정하자 자사고 등을 운영하는 25개 학교법인 24곳은 지난해 5월 헌법소원을 냈다.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헌법상 보장된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판단하면 정부의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정부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교육 당국 관계자는 “헌법재판소가 1974년 고교평준화 정책 도입이 취소돼야 한다는 헌법소원을 기각한 바 있다”며 “교육부 역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만큼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자사고 포기하는 학교…유학 열풍 부나
자사고의 시한부 통보에 인기는 시들었다. 정부의 정책보다 앞서 일반고 전환을 추진하는 곳도 등장했다. 올해 들어 한가람고와 숭문고, 동성고가 일반고 전환을 선언했다. 이들 셋을 제외하면 자사고는 35개가 남게 된다. 조영관 동성고 교장은 “학부모들은 엄격한 학업관리를 통해 대입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을 최우선 교육 목표로 삼았다”며 “동성고가 추구하는 교육과 괴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자사고를 포기한 아이들이 일반고로 방향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정부가 2025년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시점을 못 박아 압력을 가하는 상황이어서 자사고 인기는 낮아지고 있다”며 “자사고가 폐지되면 소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일반고가 아닌 유학 등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자사고 폐지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대권 명지대 청소년교육학과 교수는 “과학과 체육계에서는 엘리트를 키워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인문계는 그와 반대로 가고 있다”며 “부작용을 이유로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의 노력이 투입된 학교를 한순간에 문 닫게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강남 아파트 가격 상승 다시 부추기나
학군에 민감한 우리나라에서 자사고 폐지는 부동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교육계와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자사고 폐지는 인근 지역 부동산에는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고, 우수학교가 모인 강남의 부동산은 가격 상승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서울의 부동산은 교육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분석한다. 종로구에 있던 경기고와 서울고, 휘문고 등이 1970년대 후반부터 강남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강남 8학군’이 형성됐고, 고교평준화로 이 학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지역의 부동산도 상승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위장전입 등 각종 사회문제가 발생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자사고의 등장은 이 같은 부동산 열기를 완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학생선발의 자율권을 가진 자사고가 전국 또는 시도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면서 강남에 살지 않아도 우수한 학교에 자녀를 보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5년부터 자사고 폐지되면 그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 외에 명문고에 진학할 방법이 없어지게 된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자사고가 도입되던 2010년에는 강남지역 전입생이 줄면서 강남 쏠림현상을 완화해 주는 효과가 일부 발생했다”며 “자사고 폐지로 강남 8학군으로 학생들이 몰리기 시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도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일반 학교가 자사고 수준의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면 부동산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 강남 쏠림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교육 환경과 학군은 부동산 시장과 뗄 수 없는 관계여서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자사고 폐지 후 대안이 있다고 한다면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강남 수요가 높아져 부동산 가치도 상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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