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해 전 서울대가 교양국어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자어 기초실력을 평가한 결과 학생들 절반 이상이 교양·논문·통일 등의 단어를 한자로 옮기지 못했고, 일부 학생은 학과(學科)의 독음을 학교라고 적었다. 문화(文化)의 화를 ‘꽃 화(花)’로 쓰거나 각고(刻苦)를 해고나 수고로 옮긴 경우도 있었고, 배수진(背水陣)을 북수진·북수차로 읽기도 했다. 한자 문맹(文盲)인 젊은이들이 늘어나며 벌어진 웃지 못할 일이다.
우리말 어휘의 70% 이상은 한자어로 돼 있다. 학술용어는 90%가 넘는다. 한글은 소리를 적는 표음문자이고, 한자는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다. 소리글자인 한글로만 표기해서는 뜻을 완전히 알기 어렵다. ‘사기’를 예로 들면 나쁜 꾀로 남을 속인다는 의미의 ‘詐欺’, 자신감·의욕 등을 뜻하는 ‘士氣’, 그릇의 종류인 ‘沙器’ 등 20개가 넘는 뜻이 있어 한글로 ‘사기’라고만 표현했을 때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1970년도에 각급 학교에서 한글전용이 시작됐다. 그러다가 한자병용 교육이 실시되는 등 한자 정책이 수차례에 걸쳐 바뀌었다. 한자 경시 풍조는 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부터 이미 한자 교육이 소홀히 다뤄졌다. 2000년부터 적용한 ‘제7차 교육과정’에서도 한문이 필수과목에서 빠졌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한국 학생들의 문해율(文解率: 글을 읽고 뜻을 이해하는 비율)이 25%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을 정도로 한자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늘어났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안 대표에게 “무운을 빕니다”라고 했다. ‘무운(武運)’이 ‘전쟁 등에서 이기고 지는 운수’라는 뜻이니 ‘무운을 빕니다’라는 말은 ‘선거에서 승리하라’는 의미의 덕담이 되겠다. 그런데 한 방송사 기자는 이를 “운이 없기를 바란다”고 잘못 해석했다. 그 기자는 ‘무운(無運)’으로 이해한 모양이다. 한자어는 다른 나라 말이 아니라 엄연한 한국어다. 우리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구사하려면 한자 습득은 반드시 필요하다. 영어 조기교육도 중요하지만 한자 교육 역시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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