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궁지로 몰며 승점 1점 만들어

이란은 아시아 축구 최강자 자리를 노리는 한국축구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상대다. 특히, 이란 대표팀의 홈구장 아자디스타디움에서의 경기는 더 부담이 컸다. 이곳에서 한국은 2무5패를 기록하며 단 한번도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득점은 1977년 이영무의 멀티골과 2009년 박지성의 한골 등 3골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아자디 원정은 한국 선수들에게 부담을 넘어선 공포로 다가왔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10만여 관중의 함성이 끝없는 좌절의 역사와 맞물려 선수들을 위축시켰다.
그러나 12일 이란 테헤란의 아자디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과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4차전에서 한국 선수들은 조금 달랐다. 초반부터 위축되지 않고 강하게 상대와 맞붙어나간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영향 속에 무관중으로 경기가 진행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다만, 이런 외부요인이 전부가 아니었다.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울버햄프턴), 김민재(페네르바체) 등 세계 무대 속에서 당당히 싸워온 선수들은 아자디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감 있게 움직였다.
아쉽게도 한국은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이날 경기를 승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지옥’으로까지 불렸던 상대의 홈구장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며 이란을 궁지로 몰았다.
초반부터 한국은 경기를 주도했다. 두터운 수비벽을 쌓고 역습에 주력하는 이란을 상대로 활발한 측면전환뿐 아니라 중앙 돌파까지 섞으며 밀어붙였다. 이란이 한국의 패스를 끊어 위협적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이런 저돌성이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후반 3분 전방으로 튀어나가는 손흥민에게 이재성(마인츠)이 절묘한 스루패스를 날렸고, 손흥민은 질주 후 전방을 향해 달려나오는 골키퍼를 보고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을 터트렸다. 이란의 이번 최종예선 첫 실점이자 한국이 아자디스타디움에서 12년 만에 만든 득점이었다. 2년여 가까이 대표팀에서 필드골을 생산하지 못해 팬들의 애를 태웠던 에이스 손흥민은 지난 7일 시리아전 극적인 결승골에 이어 이번 득점까지 한국 축구사에 남을 중요한 골을 연이어 터뜨렸다.

하지만, 한국은 이 리드를 마지막까지 지키지 못했다. 선제골 이후 이란 수비가 흔들리며 후반 8분 황인범(루빈 카잔)의 슈팅과 후반 13분 손흥민의 중거리 슈팅 등 좋은 장면이 나왔지만 추가골로 연결되지 않았다. 여기에 후반 중반 이후로는 경기장이 위치한 1200m 해발고도의 영향 속에 체력적인 어려움까지 찾아왔다. 결국, 발이 얼어붙은 한국은 후반 중반 이후로 이란의 파상공세에 시달렸고, 후반 22분 사에이드 에자톨라히(바힐레)의 중거리 슈팅이 골대를 맞추는 아찔한 순간까지 겪어야만 했다. 여기에 결국 후반 31분 동점골을 내줬다. 골 지역 오른쪽에서 사르다르 아즈문(제니트)이 올린 크로스를 알리레자 자한바흐시(페예노르트)가 골문 정면에서 머리로 받아 넣어 균형을 맞췄다. 이란은 더욱 공격의 고삐를 쥐었다. 후반 33분에는 메흐디 타레미(포르투)가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날린 오른발 슈팅이 다시 골대를 맞고 나오기도 했다.
한국도 다시 달아날 기회는 있었다.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의 돌파 이후 나상호(FC서울)에게 결정적 기회가 나왔으나 슈팅이 골키퍼 선방에 걸렸다.
결국, 이날 경기는 두 팀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하고 무승부로 마감됐다. 한국은 아자디스타디움에서 통산 3무5패로 또 한번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이란과의 통산 상대 전적은 9승 10무 13패가 됐다. 조 순위도 2승 2무(승점 8)로 이란(3승 1무·승점 10)에 여전히 조 2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많은 수확을 얻은 것으로 기억될만한 경기였다. 최종예선 고비로 꼽히던 이란과의 원정경기에서 만든 승점 1은 여타 경기의 승점 3에 비견될만한 성과다. 무엇보다 아자디스타디움에서 이란을 궁지로 몰며 향후 우리 홈구장에서의 맞대결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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