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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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추위와 허기에 지친 성냥팔이 소녀가 팔다 남은 성냥을 하나하나 켜면서 잠시나마 그 열기로 추위를 녹이다가 결국 쓰러져 사랑하는 할머니가 있는 하늘나라의 천사가 된다는 이야기다. 허기지고 지친 눈빛, 검붉게 얼어 있는 맨발, 머리 위에 소복이 쌓인 하얀 눈 등 매서운 겨울바람에 그대로 방치돼 있는 소녀를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바라보았다면 틀림없이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영화 ‘코다’의 한 장면 중 청각장애인인 가족은 유일하게 들을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는 딸 루비가 자신의 꿈을 위해서 오디션에 참가하려는 걸 막는다. 루비가 없으면 세상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는 딸에게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한다. 루비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아버지는 그저 딸의 얼굴을 바라본다. 비로소 아버지는 딸의 간절한 소망을 알아챈다. 노래는 들을 수 없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 후 가족은 루비의 꿈을 적극 응원한다.

인물 묘사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프레데리크 바지유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의대생이다. 그는 모네, 르누아르와 함께 화실을 다니며 우정을 쌓는다,

어느 날 모네가 바지유의 아틀리에로 놀러 온다. 아무 말 없이 차를 마시는 모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그날 당장 모네에게 자신의 아틀리에를 내어주고 물감도 쓸 수 있게 해준다. 그 당시 인정받지 못하고 힘든 예술의 길을 걷는 친구의 고단함을 알아챈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모네가 그린 ‘정원의 여인들’을 할부로 매달 50프랑씩 내고 구매해 모네가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게 도와준다. 바지유는 매달 그림 값 50프랑을 건넬 때마다 “이 훌륭한 그림에 이 돈밖에 못 주어서 미안하네”라며 모네가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눈부신 찬사도 함께 전달한다. 이렇게 위대한 화가 모네의 탄생에 그의 우정도 일조한다.

‘바라보다’는 ‘사랑한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바라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상대방이 말을 하지 않아도 지금 기분 상태가 어떤지, 무엇을 원하는지, 걷고 싶은지, 뛰고 싶은지, 주저앉고 싶은지 그냥 알게 된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바라봐 주기를 원한다. 외롭고 힘들고 지친 날일수록 그 마음은 더욱 간절하다. 결코 많은 사람이 필요치 않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런데 그 한 사람이 없어서 화가 나기도 하고 세상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왜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거야?” 소리지르며 울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그 한 사람이 먼저 돼 줄 수는 없는 걸까? 누군가를 바라봐 주는 그 한 사람이 내가 돼 준다면 어쩌면 내가 원하는 나를 바라봐 주는 그 한 사람도 나타날지 모른다. 세상 이치는 그렇게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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