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상 전동킥보드 등 주행 가능
시속 25㎞ 제한 불구 일부 어겨
도로폭 1.5m인데 위험천만 추월
보행로도 붙어있어 불안감도 커
전문가 “별도 법으로 관리 세분화”
자전거전용도로 확충 등도 숙제

“잠시 지나갈게요.”
한글날인 9일 낮 12시쯤 서울 송파구 잠실한강공원의 자전거도로에서 “따릉” 하는 벨소리를 내며 자전거를 추월하는 전동킥보드 이용자가 소리쳤다. 폭이 1.5m 정도 되는 자전거도로 위로 전동킥보드가 자전거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얼마 안 가 같은 구간에서 서행하는 공유자전거 따릉이 이용자를 제치려는 다른 자전거가 위태롭게 자전거도로 경계를 타며 속도를 냈다.
이날 잠실한강공원 자전거도로는 주말 연휴를 맞아 선선한 가을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나온 자전거·개인형이동장치(PM) 이용자로 붐비면서 위험천만한 모습이 여럿 눈에 띄었다. 서로 섞여 운행하는 자전거·PM 이용자가 좁은 도로 탓에 다른 이용자를 추월할 때마다 거의 붙다시피 했다.
자전거도로와 나란히 한 보행로를 산책하는 시민들도 자주 뒤를 돌아보며 불안해했다. 실제 전동킥보드가 방금 옆을 스쳐 지나가 놀랐다는 이모(41)씨는 “예전에는 자전거만 있었다면 요즘은 전동킥보드까지 자전거도로를 오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좁은 길로 다니다 보니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자전거와 전동킥보드 때문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부딪히는 것이 걱정돼 자주 돌아보게 된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박모(32)씨는 “요즘에는 무선이어폰을 착용한 보행자가 늘면서 자전거 벨을 울려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사고 위험성을 우려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로 갑갑한 일상도 벗어나고 가을 날씨를 만끽하고 싶어 자전거·PM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들이 함께 달리는 자전거도로 내 사고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애초에 속도가 다른 이동장치를 좁은 자전거도로에 함께 달리도록 한 현행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자전거도로에는 일반자전거를 비롯해 전기자전거와 전동킥보드가 모두 달릴 수 있다. 전기자전거와 전동킥보드의 경우 속도를 시속 25㎞로 제한하고 있지만 일반자전거 이용자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속도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 공유자전거인 따릉이의 경우 평균 속도는 시속 10∼15㎞ 남짓이다.
속도 차이가 나는 이동장치가 함께 달리기엔 현재 자전거도로 환경이 열악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규정상 자전거도로 폭 최소 기준이 1.5m에 불과해 안전하게 추월할 여건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지난해 기준 서울시의 자전거도로 1258.8㎞ 중 ‘자전거 전용’인 구간은 257㎞에 그쳤고, 나머지는 차량이 통행하는 도로 등에 설치됐다.
최근에는 전기자전거나 전동킥보드를 튜닝해 속도 제한을 어기며 운행하는 이용자도 늘고 있지만, 현장의 관리·감독은 사실상 전무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는 자전거도로와 관련해 시민들에게 정책을 홍보하고 계도하는 역할만 하고 있다”며 “단속은 경찰이 맡아서 한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자전거도로에서의 단속을 집계한 통계조차 없다.
이에 서울시는 2023년까지 한강 자전거도로 총 78㎞ 구간에 대해 레저용·교통용 등 기능에 따라 나누고 구간별로 제한속도를 세분화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8월 내놨다. 현재 자전거도로에 붙어 있는 보행로도 완전히 분리해 보행자 안전 또한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일부 시설 개선뿐 아니라 자전거와 PM의 특성을 고려한 법체계 정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애초에 일반자전거와 전기자전거, PM을 같은 도로 위에 달리도록 한 법체계가 잘못돼 있다”며 “전기자전거와 PM은 별도의 법으로 관리를 세분화하고, 이들의 속도 제한을 더 낮추는 식으로 안전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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