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퀀텀 리얼리티/짐 배것/배지은 옮김/반니/2만8000원
‘달은 쳐다보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다.’
이 명제의 요점은 결국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체는 보는 이의 경험적 관측이나 측정 능력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 과학의 역할이라지만, 모든 실체가 분명하게 정립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규명이 실체를 존재하게 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을 수학적 이론으로 접근하는 양자역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양자역학은 대상을 엄격한 수학의 언어로 서술하지만 이내 직관에서 어긋나는 상황에 직면한다.
신간 ‘퀀텀 리얼리티’는 양자역학을 둘러싼 난해한 해석과 논리를 흥미로운 사례들로 짚어보는 책이다. 앞서 ‘퀀텀스토리’, ‘퀀텀 스페이스’를 집필한 과학저술가 짐 배것의 ‘퀀텀시리즈’ 완결편이다. 저자는 양자역학에 대한 해석이 본질적으로 과학보다 철학에 가까울 수 있다는 전제를 제시한다.
물리학은 양자역학 등장을 기점으로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으로 나뉜다.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고전역학을 지탱하던 ‘결정론적 세계관’이 ‘확률론적 세계관’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답은 명확하지 않다. 양자전기역학에 대한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도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을 정도다.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차이는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 확률에 대한 해석에서 드러난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확률이 50%라는 것은 동전에 앞면과 뒷면이 있고 어느 면이 나올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러한 고전 확률은 동전의 운동에 대한 세부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지에 가깝다고 본다.
반면 양자확률은 동전을 던질 때 동전의 운동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까지 알 수 있다. 다만 앞면과 뒷면의 존재를 가정할 수 없고 떨어진 뒤에야 결과를 보게 된다.
저자는 양자역학에 대한 해석이 본질적으로 철학적인 문제임을 강조한다. 실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냐에 따라 양자역학은 완벽하거나 불완전하며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이 과학인가. 저자는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철학은 분명 발전했지만 과학에서 기대하는 그런 발전이 아니다. 철학은 과학이론을 개발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면, 형이상학 없이는 그 어떤 과학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형이상학은 증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가정이다. 형이상학과 과학의 관계를 인정하는 순간, 철학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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