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하지만 궁상맞지 않고
언제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
할머니 열풍의 이유 아닐까
할머니가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돌아온 지 꽤 됐다. 유튜브의 마법이라고 할까. 치매 위험 진단을 받고 손녀와 함께 70대 유튜버에 도전한 박막례 할머니의 구독자 수는 일찌감치 130만명을 넘어섰고, ‘밀라논나’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한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장명숙 할머니는 유튜브를 넘어 공중파 방송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셀럽’이 됐다. 바야흐로 할머니 전성시대다.
우리 사회가 할머니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코로나19로 인한 고립과 불안정의 상태를 할머니가 표상하는 정서적인 위안을 통해 덜고자 하는 심리를 지적하기도 한다. ‘할매니얼’이라는 신조어로 할머니에 관한 애정을 표방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생각하면 아주 어긋난 진단 같지는 않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라면 최근 여러 문화 콘텐츠에서 포착할 수 있는 이 할머니들의 주체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설명하기 어려울 듯하다.

어쩌면 영화 ‘미나리’에서 욕설을 섞어가며 화투를 가르쳐 주는 윤여정 할머니에게 손자 앨런 킴이 하는 말,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는 대사에 답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열광하고 있는 할머니는 바로 이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이 든 여성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나이 든 여성이 저럴 수도 있어?’라는 놀람과 환호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얼마 전 방영된 ‘세 할머니의 유쾌한 동거’는 68세 동갑내기 할머니 세 분이 여주시 금산면의 한 집에서 같이 사는 모습을 담아냈다. 할머니들은 집안일을 둘러싸고 간혹 다투기도 하고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만 각자 주어진 몫을 제대로 해내려 노력한다. 소위 ‘산업역군’으로 평생 일해온 이혜옥 할머니와 같은 공장 ‘관리 이사’로 만나 50년 지기로 지내오다 노후를 함께하게 됐다는 심재식 할머니는 비혼이다. 4년 전 이들과 살림을 합쳤다는 이혜옥 할머니는 사별한 남편과 아들들이 있지만, 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택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마을 할머니들의 배움터로 제공하며 세 친구의 동거를 넘어 우리 시대 돌봄에 관한 새로운 화두를 던지기도 한다.
이 할머니들의 삶을 ‘복고적인 노스탤지어’로만 조망할 수 있을까. 오히려 여기엔 ‘미래에 대한 대안’이 함께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들이 하루 내내 여기저기에서 소녀들처럼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깔깔거리는 장면을 보며 문득 여성 4대에 걸친 우정의 연대기를 들려주는 최은영의 장편소설 ‘밝은 밤’을 떠올렸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뒤 서울을 떠나 바닷가 마을 ‘희령’으로 전근 온 30대 여성화자 ‘나’는 그곳에서 우연히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할머니(외할머니)를 만나고 그녀로부터 그녀의 엄마, 즉 증조모의 이야기를 듣는다. 평생 백정의 딸이라는 신분상의 제약에 시달려온 증조모 ‘심천’은 동년배의 친구 ‘새비’와의 우정에 기대 서로를 돌보며 삶이 마련해 놓은 온갖 역경을 통과한다.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본처가 있음을 말하지 않고 중혼을 감행한 남편 탓에 딸을 호적에 올리지도 못한 채 딸과 소원하게 지내야만 했던 할머니는 새비 아주머니의 딸 ‘희자’와의 우정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 할머니들의 삶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적인 역사의 저편이라고 할 만하다. 어떤 역사에서도 이들을 사로잡고 있던 내밀한 마음의 역사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최은영은 ‘밝은 밤’을 통해 어떤 전쟁 이야기도, 어떤 영웅담도 들려주지 않던 할머니들의 진짜 이야기를 복원해냈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의 역할을 맡게 된 우리의 할머니들은 절실하지만 궁상맞지 않고, 궁상맞지 않지만 언제나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안다.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가 여기에도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래 할머니들을 오해해 왔는지도 모른다. 진짜 할머니는 바로 이들 아닐까. 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니다, 할머니는 할머니다! 이즈음의 할머니 열풍이 말하는 바는 바로 이 동어반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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